[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2 '한국 예술의 정체성에 관한 답을 전뢰진 조각에서 찾다'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2 '한국 예술의 정체성에 관한 답을 전뢰진 조각에서 찾다'
  • 권도균
  • 승인 2018.06.0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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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순간부터, 한국 철학의 정체성은 화두가 되었다. 특히 런던에서 한국 철학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인도 또는 중국 불교와 한국 불교의 차이, 중국 성리학과 한국 성리학의 미묘한 차이를 영어로 설명하면서, 무척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한국인의 고유성이 담긴 진정한 한국 철학은 존재하는 것일까?

전뢰진, '아이 얼굴'.
전뢰진, '아이 얼굴'.

갤러리스트를 하면서 한국 예술의 정체성에 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 예술은 정체성을 상실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는 듯 보인다. 전뢰진 작품의 이미지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전뢰진 작가보다 10년에서 15년 앞서 태어나 동시대에 활동했던 회화 작가들이 떠올랐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최영림, 장욱진.

전뢰진 작가와 이미 작고한 서양화 작가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가들은 모두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경험하고, 남북전쟁과 피난, 그리고 분단과 폐허 복구를 경험한 작가들이다.

작품은 예술가의 내면의 마음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힘든 시대를 살았던 이 작가들의 생각과 마음이 고스란히 그들의 작품 속에 녹아들어있다. 짧은 인생에서 너무 슬프고 괴로운 시대를 살았던 작가들이다. 이들의 작품들 속에서 한국 예술의 정체성이 발견된다.

전뢰진 조각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아이들과 어머니의 얼굴은 작가의 젊은 시절 한국인들의 평범한 얼굴이었을 것 같다. 둥글 넓적하지만 따뜻하고 단아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 말이다.

이러한 얼굴의 느낌은 이중섭이나 최영림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한국인의 소박한 얼굴을 표현한 작품이 우리 예술의 고유성이라고 생각한다.

김환기의 뉴욕 시대에 그려진 추상화, 이우환의 추상화, 서양 테크놀로지를 예술에 도입한 백남준의 작품을 한국 예술의 고유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미술 시장에서 고공행진을 했던 단색화 작품은 정말로 우리의 고유한 예술일까? 추상이 아닌, 구상 작품이 진정한 우리 예술의 정체성은 아닐까?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인의 특징은 외국의 새로운 문명과 문화에 대한 동경이었다. 전통을 낡은 것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오직 새것만을 추구하는 경향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인의 특징은 단절과 복원의 문화인 것 같다. 우리는 전통을 단절시킨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참 후에 다시 복원하고 싶어 한다. 반복되는 단절과 복원을 통해서, 독특한 한국 문화와 예술이 만들어졌다.   

​전뢰진 작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들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마음씨를 예술 작품으로 보여준다. 천진난만한 동심과 모성애를 표현한 전뢰진 작가의 작품을 보면, 누구나 쉽게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한국인들의 감성과 전뢰진 작품이 잘 어울린다. 전뢰진 작품의 특징은 인체를 우리나라 산하의 부드러움으로 표현하고, 단순한 선 몇 개로 간결하게 표현한 얼굴 미소를 통해서, 따뜻함과 인자함을 드러낸다.

한국인의 얼굴을 표현한 작품이 담고 있는 간결한 미소의 전통은 석굴암이나 반가사유상의 얼굴 모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예술의 정체성은 소박하고 단순하게 표현된 단아한 얼굴과 잔잔한 미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예술의 특징은 한마디로 한국인이 가진 순수하고 따뜻한 정감의 표출이 아닐까?

전뢰진 작가는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면서, 제자인 김성복 교수에게 늘 동심을 유지하라고 한다. 전뢰진 작가에게 예술 작품과 나의 경계가 없다. 예술이 곧 나고, 내가 곧 예술이다. 전뢰진 작가에게 예술이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에게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따뜻한 마음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다.

한국인들의 마음은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이며, 불쌍한 사람을 측은하게 바라보고 함께 가슴 아파하는 마음이다. 남이 기쁠 때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슬플 때 진심으로 슬퍼해주는 마음을 가진 민족이다.

이러한 마음을 전뢰진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 얼굴에서 표현한다. 무에서 유가 나온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무형의 네모난 돌이 전뢰진 작가의 손을 거치면 유형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된다.

김성복 교수 덕분에 생존하는 최고의 석 조각가와 술 마시며 대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이고 행복이다. 런던 유학시절 서양미술사의 곰브리치 선생님도 뵈었고, 유럽 최고의 밀교 학자인 스넬그로브 교수님과 점심도 먹었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단어로 형용하기 힘든 맑은 얼굴이다. 전뢰진 작가의 실제 얼굴과 작품 속 얼굴에서 우리는 한국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읽는다.

평생 철학을 한 김형석 철학자, 평생 바둑만 둔 조훈현 기사, 치열한 수행의 삶을 살았던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 예수님 같은 삶을 살았던 함석헌 철학자, 김수환 추기경, 한경직 목사. 어떤 분야든지 최고의 정점에 오른 사람들이 풍기는 풍모는 모두 비슷비슷하다. 전뢰진 작가의 얼굴 또한 평생 돌과 씨름하면서 만들어진 수행의 결과물이다.

전뢰진은 소박하고, 단순하다. 아이 같지만, 열정적이다. 고통의 바다를 천진난만하게 유영하는 아이 같은 조각가이자,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노자 철학이 그대로 몸에 배어있는 조각가가 바로 전뢰진이다. 죽을 때까지 돌을 조각할 전뢰진 작가의 삶 자체가 그의 아름다운 조각 작품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러한 삶이 진정한 예술가의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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