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적 무대로 재연한 3층 구조의 에고...윤상윤 '시네 케라'展
연극적 무대로 재연한 3층 구조의 에고...윤상윤 '시네 케라'展
  • 왕진오
  • 승인 2018.06.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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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왕진오 기자] 그림을 너무 잘 그린다는 주위의 말에 일부러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 윤상윤(41)이 'Sine cera(시네 케라)'란 타이틀의 전시를 5월 25일부터 종로구 북촌로 갤러리조선에서 진행한다.

'갤러리 조선에 설치된 작품과 함께한 윤상윤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갤러리 조선에 설치된 작품과 함께한 윤상윤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그의 작업은 어디선가 본 듯한 명화의 이미지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구성하고, 지인들을 동원해 재연한 뒤에 회색조로 밑바탕을 완성한 뒤 색채를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는 '글레이징(glazing)'방식으로 작업을 완성했다.

윤 작가의 이런 기법은 특히 'into the trance', 'Sunday'등의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작가 특유의 바닥에서 일렁이는 물은 여전하지만, 동시에 색채는 차분하면서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 또한 즉흥적이고 감성적으로 그려낸 왼손 드로잉들 역시 이전 작업보다 차분한 색채를 띠고 있다.

전시명인 'Sine cera'는 라틴어로 'without wax'라는 의미이다. 고대 로마시기, 얇고 가벼운 도기를 만들고자 했으나 기술력의 부족으로 균열이 있는 자기를 만들었을 때 기만적인 도공들은 이 균열을 감추기 위해 도기에 왁스를 덧발랐다.

윤상윤, 'Four little words'. oil on canvas, 2018.(사진=갤러리조선)
윤상윤, 'Four little words'. oil on canvas, 2018.(사진=갤러리조선)

이에 반하는 진실한 도공들은 '왁스를 사용하지 않았다'라는 뜻의 'Sine cera '라는 문구를 사용해 완성도에 대한 진실성을 보증하고자 했다.

sine는 없다, cera는 왁스를 뜻한다. 이 cera는 밀랍으로 주조된 초상을 의미하고, 나아가 얼굴에 대한 비유적 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sine cera는 '왁스를 사용하지 않은(진심 어린, 진실된)'이자 '얼굴 없는'이라는 뜻이다.

윤 작가의 왼손 드로잉에는 얼굴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눈으로 구별할 수 있는 현실로 귀결되기를 보류하며, 시각의 틀을 벗어난 감각으로 인지되기를 원한다.

윤상윤, '맞선'. 29x41cm, oil on paper, 2017.(사진=갤러리조선)
윤상윤, '맞선'. 29x41cm, oil on paper, 2017.(사진=갤러리조선)

오른손으로 그린 그림들이 구체적인 얼굴을 드러내며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프로이트적 세계관의 이미지라면, 왼손으로 그려낸 드로잉들은 어떤 체계로 종속되거나 설명되지 않는 비가시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작품들은 3층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초자아, 자아, 무의식이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슈퍼에고, 에고, 이드 이런 단계로 구분해서 생각을 하고 작업을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윤상윤, 'into the trance3'. 162x130cm, oil on canvas, 2018.(사진=갤러리조선)
윤상윤, 'into the trance3'. 162x130cm, oil on canvas, 2018.(사진=갤러리조선)

이와 같은 작업 배경에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만이 책상위에 올라가 벌을 받으며 느꼈던 소외감, 고립감을 느끼며 바라봤던 풍경이 배어나온 것이라는 이유다.

또한, 왼손잡이로 태어난 작가가 사회적 인식 때문에 오른손을 사용하기를 강요받은 것에 대한 반감으로 오른손으로 작업할 때와 왼손으로 작업할 때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오른손으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그림을 그리고, 왼손은 그걸 벗어나서 더 자유롭게, 편하게, 생각나는 대로 그때그때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는 분출구가 됐다는 것이다.

윤상윤, 'Jade'. 259x193cm, oil on canvas, 2018.(사진=갤러리조선)
윤상윤, 'Jade'. 259x193cm, oil on canvas, 2018.(사진=갤러리조선)

윤 작가는 "내 작업에서 나오는 물이란 에고의 상징입니다. 그룹은 집단 에고에 사로잡혀 있으며, 물속은 잠재적 욕망인 이드이다. 책상위에서 바라보는 이는 슈퍼에고로 다른 이들의 영역에 자리 잡은 초월적 자아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고, 대상을 시각 정보에 의해 그리는 것과, 대화를 나누고 감정 교류가 됐던 사람을 그리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 작가가 실제로 경험하고 기억하는 대상을 그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6월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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