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약한 식물들이 창출하는 생성의 여백, 김진관 '텅 빈 충만' 展
유약한 식물들이 창출하는 생성의 여백, 김진관 '텅 빈 충만' 展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8.06.06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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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갤러리 그림손에서 6월 6일부터 김진관(64) 작가의 '텅 빈 충만'展이 진행된다.

김진관, '가을', 130 x 150 cm, 한지에 채색,2012.
김진관, '가을', 130 x 150 cm, 한지에 채색,2012.

전시에는 작은 씨앗들과 풀잎들이, 그것도 수분을 잃고 자신의 생기를 자연의 바람 속에 내어 준 채 말라비틀어진 자연의 미물들이 우리의 인생을 은유하는 주제로 작품 속에 깊이 배어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의 작품은 보다 개념적인 회화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즉 ‘순환하는 자연’이란 개념과 연동되는 여백(餘白)의 공간을 전면에 내세우는 회화로 자리하게 됐다.

김진관, '관계', 185 x 127 cm, 한지에 채색, 2018.
김진관, '관계', 185 x 127 cm, 한지에 채색, 2018.

여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유한한 공간 속에서 무엇인가 행하고 난 뒤 남겨진 공간이다. 그의 회화에는 ‘그려진 것’보다 더 커다란 ‘그려지지 않은 공간’, 즉 넓은 여백이 자리한다.

그 안에 작디작은 씨앗, 얇디 얇은 풀잎과 같은 유약한 자연물이 하나 둘 자리한다. 아니 자란다. 그것은 마치 점이나 선의 군집처럼 보이거나, 점과 선 사이를 오가는 확정할 수 없는 자유분방한 서체(書體)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진관, '붉은잎과 벌', 97x69 cm, 한지에 채색, 2018.
김진관, '붉은잎과 벌', 97x69 cm, 한지에 채색, 2018.

대략 2010년대 이전에는 씨앗과 같은 미시적인 ‘점’의 공간으로 응축했고, 이후에는 풀잎과 같은 유려한 ‘선’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횡단이 자연스럽게 화폭 속에서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텅 빈 충만’ 전에 선보인 작가 김진관의 작품 세계는 비움 옆에 채움을, 소우주 옆에 대우주를 연결하면서, 타자와 연결해 주체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피아(彼我)의 세계관으로 가득하다.

‘피아’란 사전적 의미로 “그와 나 또는 저편과 이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내 손은 내 몸으로 연결되는 소우주이고, 내 몸은 대우주로 연장되는 소우주이다.

김진관, '우리들의 봄', 190 x 150cm, 한지에 채색, 2018.
김진관, '우리들의 봄', 190 x 150cm, 한지에 채색, 2018.

그렇듯이, 작가 자신의 작품 속에 드러내는 피아의 세계관은 언제나 자연의 미물들이라는 소우주가 공기, 빛, 대자연이라는 타자의 세계와 교류하면서 ‘텅 빈 여백의 공간’ 속에 자연의 근원적 고향인 대우주를 넉넉히 품어낸다.

2008년은 김진관에게 있어 작업 세계의 변곡점이었다. 당시 일상 속 한 사건이 그로 하여금 “아내의 병간호와 더불어 자연의 작은 열매나 하찮은 풀 한 포기라도 그 외형 이전에 존재하는 생명의 근원을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진관, '움직임', 185 x 127 cm, 한지에 채색, 2018.
김진관, '움직임', 185 x 127 cm, 한지에 채색, 2018.

김작가는 당시를 회상하며 “재작년 늦가을 서울 근교로 스케치를 다녀왔다. 오후 바짝 마른 잡풀들을 밟는 순간 바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러 들풀들의 씨앗들이 튀겨 나갔다. 자세히 보니 짙은 갈색과 붉고 다양한 씨들이 앞 다투어 터뜨려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소리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이는 마치 동양화 화선지 위에 긴 호흡을 한 후 필연적인 점들을 찍는 것 같았다. 퍼져가는 공간의 선과 점이며 시점이었다” 고 설명했다. 전시는 6월 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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