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3, '심영철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3, '심영철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8.06.1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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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시공을 초월한 파라다이스 세상을 조각하는 심영철 작가의 춤추는 정원 이야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창세기 1장, 1절-4절).

'심영철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심영철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태초에는 드러내지 않은 자만 혼자 존재하였으며, 그로부터 존재들이 생겨났다. 그가 스스로의 모습을 형상화하였으니,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 부른다. (따이띠리야 우파니샤드 7편).

이름 붙혀지지 않은 것이 천지의 시작이요, 이름 붙혀진 것은 만물의 어머니다.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도덕경 1장). 도가 일을 낳고, 일은 이를 낳고, 이는 삼을 낳고, 삼은 만물을 낳았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덕경 42장).

우파니샤드 철학자들이나 노자는 태초의 시작을 일자(一者)로 본다. 기독교 사상의 출발점과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없음과 있음의 관계를 보면, 없음이란 우리의 감각기관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 뿐, 완벽한 없음은 아닐 것이다. 완벽한 없음에서 있음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있음의 일자에서, 우주 만물이 탄생한 것일까?

심영철 작가라는 이름만 듣고, 처음에는 남자 작가인 줄로 착각했다. 여성 설치미술가인 심 작가는 1974년 창립된 한국여류조각회 회장이며, 수원대 미대 교수이다. 작가와 전화 인터뷰를 해보았다. 전화기 속에서 우리 귀에 친숙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CCM 찬양 복음성가가 흘러나온다.

작가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전화기 저편에서 맑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통화를 하면서, 서서히 작가의 성격이 드러났다. 작가는 예의 바르고, 겸손하며, 상대를 존중해주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으로 종교와 예술은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유럽에서는 가톨릭 성당을 장식하면서, 조각과 회화가 발전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불교 예술이 발전했다.

'심영철 작가 작품'.
'심영철 작가 작품'.

심영철 작가는 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과 같은 상징체계를 통해서, 기독교의 기본 정신인 사랑의 메시지를 조각과 설치로 전달하려는 것이다. 메타포 방식으로 보여주는 종교 예술의 현대적이고 세련된 진화인지도 모른다.

플라톤은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는 그림자에 불과하고, 영원불변하는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플라톤에게 창조는 이데아라는 설계도와 재료라는 공간에 창조신 데미우르고스가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세계는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심영철 작가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대학원에서 유학하면서, 조각과 설치를 넘나들게 된다. 정지된 조각을 움직이고 싶어 하는 예술가들이 종국에는 설치 작업을 동반한다. 공간을 거대한 캔버스로 삼고, 조각물들을 배치한다. 그 후에 정지된 조각에 움직임을 부여한다.

​전통적으로 유럽 조각은 심오함에 중점을 둔 예술성을 추구하면서, 전통적인 제작 기법을 사용한다. 역사가 짧고, 유럽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사고를 중시하는 미국 조각은 화려한 색을 바탕으로 단순한 듯하면서도 모던하고 세련된 조형감각을 추구한다. 심영철 작가도 미국에서 예술을 심화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국식 조각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지혜의 나무 열매를 따서 먹은 죗값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된다. 최초 인간의 잘못으로 힘들게 살아가야만 하는  후손들의 억울한 삶을 원망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에덴동산 이야기에 숨겨진 철학을 분석해보기도 했다.

​선과 악이라는 이성적 판단에 의해 생긴 분별심을 넘어서, 분별과 차별이 없는 순진무구한 정신 상태의 회복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에덴동산은 실재하는 공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의식 상태를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은 아닐까?

​심영철 작가는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를 꿈꾼다. 작가는 공간에 다양한 재료로 이루어진 조각품들을 배열한다. 그리고 죽어있는 작품에 빛을 밝힘으로써 생명력을 부여한다.

기독교에서 빛은 신 존재의 드러냄이고, 모든 생명체에 내리는 신의 은총이다. 빛은 어둠과 추움을 걷어내고, 밝음과 따뜻함을 모든 이에게 골고루 내려준다.

​키네틱 조각이 모터에 의한 움직임이라면, 심영철 작가는 빛과 바람 그리고 소리로 조각이 살아 춤추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텅 빈 전시 공간 안에서 조각가 또한 창조자다.

창조주가 우주와 자연을 만들었다면, 조각가는 신이 만든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작가 자신이 재해석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달을 모방해서 물을 가득 담은 항아리에 빛을 쏘아 달의 형상을 만드는 것처럼.

​심 작가 작품들의 기본적인 철학은 자연에 존재하는 식물에서 모방한 인공적인 작품에 공학적 기술을 결합하여 완성시킨다. 판타지적 요소를 담고 있는 작품을 통해서, 관람자의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서양의 조각 작품이 관람자의 이성을 자극하려는 시도라면, 심 작가의 작품은 관람자의 감성과 마음을 두드리는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심 작가의 작품은 여성이 갖는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요소를 갖고 있다.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색들이 조화로움을 이룬다. 소재와 재료가 부딪치지 않는다. 한 재료와 한 주제에서 벗어나, 정원이 갖는 다양성과 생명을 불어 넣는 빛이 특징이다.

심영철, '가든시리즈'.
심영철, '가든시리즈'.

작가가 1990년 처음 시도했던 가든 시리즈 작품들은 에덴동산을 모티브로 시작했지만, 거의 2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새로운 파라다이스가 창조된 것이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다양한 재료와 소재를 실험하면서, 작품의 색감은 더 다양해졌고, 인공적인 요소와 첨단 테크놀로지 기술이 안정적으로 정착된 것 같다. 그래서 마침내 춤추는 정원이 탄생한 것이다.

새롭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진배없다는 생각이 심영철 작가의 예술 철학이다. 일신우일신(日新日新又日新)이라는 말처럼, 작가는 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모토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작가가 상상하는 천국을 보여주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닌가라고 추정해보았다. 하지만 작품에는 다분히 인도와 중국철학 시각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요소들도 담고 있다.

​다양한 시각적 매체를 활용하여 보여줌으로써,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려는 것이 작가의 숨겨진 의도일지 모른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는 앞으로도 더욱 새롭게 진화 발전할 것이다. 다음 전시에서는 또다시 어떻게 변신할지 기대가 되는 심영철 작가의 뜨거운 열정과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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