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정 "돌아올 수 있기에 떠남이 즐거운 것 아닌가요?"
이헌정 "돌아올 수 있기에 떠남이 즐거운 것 아닌가요?"
  • 아트인포(artinfo)
  • 승인 2017.10.2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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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왕진오 기자] "내 작품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것이 가장 힘들고 하기 싫은 것 같아요. 이야기보다는 단어로 설명하는 것이 내가 창작을 하면서 얻는 즐거움이죠."

'작품을 설명하는 이헌정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작품을 설명하는 이헌정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팔방미인 작가 이헌정(50)이 '여행 2017(The Journey 2017)'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7월 14일부터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백화점 롯데갤러리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에 평면, 조각, 디자인 가구, 설치 등 50여 점의 작업을 선보이며 내놓은 속내다.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대형 오브제에는 장난감 기차가 나무 공을 드리블 하듯 레일 위를 몰며 달리고 있는 모습을 연출해 눈길을 모은다. 기차 앞에 달린 CCTV 카메라 렌즈에 비친 장면은 주변의 모습보다는 어디론가 속도를 내고 질주하는 오늘날 현대인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또한 컬러풀한 유약이 1300도가 넘는 가마에서 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내려 붓질의 그 어느 효과보다도 영롱한 색채를 드러낸 세라믹 작품들이 세려된 콘셉으로 구성된 거실에 들어온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헌정 에비뉴엘 아트홀 전시작품'.(사진=왕진오 기자)
'이헌정 에비뉴엘 아트홀 전시작품'.(사진=왕진오 기자)

특히 눈길을 모으는 '월 체어(Wall-Chair)'는 국내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총 12개의 판을 소성해 타일을 이어 맞추듯 구성된 이 작품은 작가의 계획과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가마 속에서 구워지며 우연과 직관에 의존해 흙과 불에 그 결과를 맡기는 감각적인 작품이다.

각각의 판 사이는 약간의 틈이 생겨 벌어지거나, 부분적으로 갈라져 있지만 작가는 이러한 과정의 흔적을 여과 업이 드러냈다. 또한 그 표면 위에 대담하게 발라진 유약이 불과 함께 이뤄내는 자연스러운 흔적은 한 폭의 산수화에서 느껴지는 시적인 자유로움, 여유로움을 드러낸다.

이헌정 작가는 "주제를 정해놓고 하는 전시는 국내에서는 처음인 듯 합니다. 3개의 섹션을 나누어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와 봤죠. 과거 흔적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자리가 될 것 같다"며 "한 동안 한국에서 디자인적 특징을 보여주는 전시를 못했는데, 이번 전시에 디자인이 가미된 아트퍼니처 성격의 작품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자리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아트 퍼니처의 경우 하나의 단일화된 오브제라기보다는 공간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오브제기 되기를 원합니다. 오브제가 하나의 환경을 주도할 수 있고, 내 작업이 환경 안에 숨겨질 수 있고, 공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랐죠'라며 "전시 타이틀을 '여행'이라 정한 것도 어딘가에 새로운 지점에 예기치 못한 것을 경험하면서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여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조그만 그릇을 만들지만 하나의 커다란 우주를 만드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헌정 '월체어' 전시작'.(사진=왕진오 기자)
'이헌정 '월체어' 전시작'.(사진=왕진오 기자)

그가 말한 여행은 특정 장르에 몰입해서 하나만 보여주기 보다는 경계를 없애면 만나는 접점이 생기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합칠 때 양쪽이 잘 보이게 되고 또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의지의 설명이다.

이 작가는 "도예는 매우 단순한 노동의 반복을 요구하는 과정의 특성이 있다. 반면 설치 작업은 냉철한 이성과 분석 그리고 논리력을 필요로 한다. 이 두 가지, 같이 할 수 없는 형질의 특성들 사이를 적당히 오가는 게임을 통해서 나는 자칫 잃기 쉬운 객관적 사고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에게 '여행'은 단순히 시공간의 이동이 아닌 삶에 있어서의 균형을 찾기 위한 정신적 여행이다. 이헌정은 예술에 대한 자유로운 사유의 여정을 통해 도예라는 한정된 울타리를 벗어난다.

'이헌정 에비뉴엘 아트홀 전시 모습'.(사진=왕진오 기자)
'이헌정 에비뉴엘 아트홀 전시 모습'.(사진=왕진오 기자)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고, 그 여정 가운데 전통과 현대, 감성과 이성, 직관과 논리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자 도예와 설치미술, 추상적인 오브제와 건축적 작업 등의 서로 다른 장르의 작업들을 꾸준히 병행했다.

이번 전시는 이헌정 특유의 다양한 작품세계의 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다. 결국 예술이란 우리의 일상적 삶의 연속 가운데 만들어지는 것임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여행은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떠났던 곳으로 돌아오는 '귀환'이 가능하기에 여행을 준비하면 설렘이 먼저 마음속에 드는 것 같다." 전시는 8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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