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컬렉터란 누구인가? 2.'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컬렉터란 누구인가? 2.'
  • 아트인포(artinfo)
  • 승인 2017.10.24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아트스페이스 H] 며칠 전 읽었던 스위스 출신 사업가 울리 지그(Uli Sigg,71) 컬렉터의 인터뷰는 곰곰이 곱씹어 보아야 할 내용이 많았다.

2016년 3월 홍콩에서 열렸던 울리 지그 컬렉션 전시.(사진=왕진오 기자)
2016년 3월 홍콩에서 열렸던 울리 지그 컬렉션 전시.(사진=왕진오 기자)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그가 작품을 선별하는 관점과 진정한 컬렉터의 철학이 느껴졌다. 그분이 내 앞에 있다면 기사에 없는 궁금한 질문들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는 아주 멋진 컬렉터고,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실천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좋은 컬렉터는 자신만의 컬렉션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적 관점에서 컬렉터와 애호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애호가는 취미로 좋다고 생각되는 그림이나 조각 몇 점을 사는 사람이다. 컬렉터는 주관과 목표를 갖고 작품을 꾸준히 사 모으는 사람을 말한다.​

컬렉터는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을 한두 점 사는 대신, 시대별로 종류별로 사이즈별로 열 점이상을 사는 경우가 많다. 와인을 좋아하는 와인 마니아들은 단순히 고급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수 만종의 와인을 연구하고, 다양한 와인에 도전해본다. 이처럼 컬렉터도 작품을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을 꾸준히 지켜보고 연구해서 사는 사람이다.​

울리 지그는 스스로의 안목을 믿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시절에 중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사 모았다. 수 십 년을 꾸준히 모았다. 꾸준함이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만들어진다. 지금 그의 컬렉션 리스트를 보면, 세계적으로 성장한 중국 작가들의 이름이 모두 들어가 있는 듯하다. ​

그는 2012년 홍콩 M+뮤지엄에 자신의 컬렉션 중 1463점을 기증했다고 한다. 아이웨이웨이 작품 26점을 비롯해서, 쩡판쯔, 장샤오강, 위에민준 등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됐다고 한다. 당시 기증한 미술품을 돈으로 환산하면 1억 7000만 달러(한화 약 1946억 원)에 달한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보면, 스위스 작가나 유럽 작가의 작품을 사서 스위스에 기증했을 것이다. 중국 작가의 작품을 컬렉 한 것도 그렇고, 홍콩에 기증한 것을 봐도, 울리 지그는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지구인 컬렉터 같다. 중국 미술 작품은 중국에 존재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 같다. 참 멋있다.​

아주 오래전에 한국 유물을 천 점이상 모으시고, 사립 박물관을 운영하시던 아버지께 건의를 한 적이 있었다. 유물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마시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자고. 제2의 간송이 되신다면 아버지는 돌아가셔도 멋진 문화의 인물로 남으실 것이라고. 그리고 후손들에게는 큰 영광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내 의견을 웃으면서 지나쳐버리셨다. 만약 내 의견을 수용하셨더라면, 사업은 부도가 났어도 명예는 건지셨을 텐데. ​

울리 지그는 기부를 예정하고 컬렉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설립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의 컬렉션 철학은 예술 작품은 소수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멋 훗날까지 내다보고, 재정이 어려울 수도 있는 사립 미술관 대신 공공미술관에 기증했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