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았던 흑연을 비우니 오히려 자유로워지네요" 권순익 ‘積·硏(적·연) - 쌓고, 갈다’
"쌓았던 흑연을 비우니 오히려 자유로워지네요" 권순익 ‘積·硏(적·연) - 쌓고, 갈다’
  • 왕진오
  • 승인 2018.06.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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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반사된 흑연에 색상을 입혀 쌓는 여정, 마음의 거울 같은 무아의 세계 전달◆

[아트인포=왕진오 기자] "아직도 많이 버리지 못한 것 같아요. 제 생각으로는 버림의 끝은 안 그리는 것 아닐까요. 너무 많이 채우려다, 넣고 빼기를 반복했는데 결국은 욕심이 앞섰던 것 같아요."

'권순익 작가'.
'권순익 작가'.

'무아'라는 화두로 흑연을 이용해 화면을 완성하는 작가 권순익(KWON Soonik, 59)이 작업세계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강원도 문경 출신의 권 작가는 빛과 색을 주제로 한국적 추상을 이어가고 있으며, 다양한 평면·입체 공간 속에 독창적인 무한함을 펼쳐내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구상적 표현에서 추상적 표현으로, 유기적 형태가 기하학적 형태로 변모되어 가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다채로운 색채 표현을 지향하고 모노크롬이 지배적인 색채를 통해 내면적이면서 관념적인 인상을 자아내며 더욱 폭넓은 감정이 내재된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권순익, '신기루'. 설치, 2016.
권순익, '신기루'. 설치, 2016.

특히 권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흑연을 수 만 번 덧칠해 쌓고, 갈아내며 평면 위에 입체적 효과를 가미한다. 입체와 평면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독특한 방식의 작품으로 구성부터 완성 단계에 이르기까지 작위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채 흑연을 덧칠하는 작업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또한 평면 회화를 ‘공간’의 개념으로 확장시켜 기왓장 설치 작업으로도 이어나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내 속의 것들을 표출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내 작업의 독창성을 만들어 낸다."

권 작가는 "무아(無我)란 제목이 힘들더라고요. 작업에 의한 몰입에 의한 아무것도 없는 일상, 평범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 초기에 구상하고 스케치하고 나서는 그리기를 반복하죠. 원래 의도는 다른 생각 없는 상태에서 편안한 상태가 되기를 바라는데, 아직은 채우는 과정인 것 같다"며 "최근에는 색상을 올리며 쌓는 과정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순익, '무아-신기루(13-03)'. 162x132.3cm, Mixed media on canvas,2013.
권순익, '무아-신기루(13-03)'. 162x132.3cm, Mixed media on canvas,2013.

권 작가가 사용하는 흑연은 다름 아닌 빛이다. 문지르다 보니 쇠의 질감도 드러나고, 입체감도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매일 매일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옷, 컵 등 다양한 소재로 표현한다.

산천에서 뛰놀며 오감(五感)으로 흡수한 경험들은 감성적인 선과 형태, 세련된 색감의 표현의 밑바탕이 되었으며, 자연스레 착한 심성의 감수성 예민한 소년 권순익의 마음 속 깊이 숯, 빛, 원의 이미지가 드러난 것도 이 때이다.

권순익, '무아-신기루 (13-01)'. 90.9x72.7cm,Mixed media on canvas,2013.
권순익, '무아-신기루 (13-01)'. 90.9x72.7cm,Mixed media on canvas,2013.

또한 도예가로도 활동했던 작가의 경험은 그림의 표면에 두텁게 올라오는 마티에르에서 계속적으로 드러나는데, 이 마티에르를 다시 올리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어 결국 심연의 무아를 발견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계속적인 원의 배열과 기하학적인 형태들은 크루즈 디에즈로 대표되는 옵아트를 연상시키며 한국적 추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는 "저는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얽매이지 않는 것이죠. 가장 좋은 것은 규칙적으로 움직이면서 꾸준히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가장 권순익 다운 움직임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마다 몇 만 가지의 자기, 자아가 있는데 그날그날 닥치는 모든 것이 다르니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권순익, '무아-그림자'. 60 x 60cm, Mixed media on canvas, 2012.
권순익, '무아-그림자'. 60 x 60cm, Mixed media on canvas, 2012.

그런 그가 최근 작업에는 쌓고 밀어내는 과정을 거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쌓는 것도 반복, 미는 것도 반복, 반복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을 많이 했다는 작가는 예전에 잘 안보인 것을 색을 넣어 쌓는 느낌을 보여주어 두께를 강조한다.

권 작가의 또 다른 작업은 '기와'로 볼 수 있다. 기와는 마음의 거울이라는 '심경'(心鏡)이다. 한 장 한 장 마다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자신의 모습을 섬처럼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려는 의도다.

'권순익 작가 작품 디테일'.
'권순익 작가 작품 디테일'.

그의 오랜 기간 묵언 수행하듯 작업한 작품을 6월 30일부터 경기도 광주시 영은미술관에서 '積·硏(적·연) - 쌓고, 갈다'란 타이틀의 입주 작가 개인전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에는 서양의 재료를 기본으로 하나 한국적 색감이 잘 드러나 있는, 동서양의 면모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추상회화 장르를 선보인다. 전시는 7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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