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5 '김선진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5 '김선진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8.07.05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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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H]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의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형상화하는 김선진 작가의 백조 이야기'

온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알지만, 실제로 미운 것이다. 모두가 착한 것을 착한 것으로 알지만, 실제로 착하지 않은 것이다.

김선진(金善珍), 'SWAN 1-6'. 38x18x20cm, 한백옥, 2017.
김선진(金善珍), 'SWAN 1-6'. 38x18x20cm, 한백옥, 2017.

그렇기 때문에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며, 길고 짧음은 서로 견주어지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어지고, 소리와 음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도덕경 2장)

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이성의 발달로 인하여, 분별하는 마음이 생기고, 더 나아가서 차별하는 마음에 이르기도 한다. 크고 작고, 길고 짧고, 아름답고 추하고, 선하고 악하고, 좋고 싫고, 부유하고 가난하고, 등등. 모든 상대적인 것들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면서,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길이 10센티 물건은 20센티보다는 작지만, 5센티보다는 큰 것이다. 못생겨 보이는 식물이나 징그러운 벌레는 인간의 관점에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반대로 벌레 입장에서 인간의 모습이 추해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상대적인 것들을 절대적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인간의 주관적 관점에 기인한 것이다.

김선진 작가는 중국 동북사범 대학원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조소과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여성 조각가다. 작가는 유학 초기 중국어도 서툴고, 중국이라는 외국에서 남자들이 지배하는 석 조각 작업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날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멍하니 하늘의 구름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무심결 보았던 구름이 다양한 모습으로 작가에게 말을 걸어왔다.

​단순한 구름이 보는 각도에 따라서, 백조의 모습도 되고, 토끼의 모습도 되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놀이처럼, 구름 속에 숨겨진 형상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처럼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자연의 모습도 주관자의 관점이나 시각에 따라서 다양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 후에는 주변에 의미 없이 버려지는 사소한 것들에도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한다. 잠깐 사용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구겨진 종이나 비닐이 작가의 눈에는 아름다운 백조처럼 보였다.

이 순간부터 주변의 모든 사소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이나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추함의 반대로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김선진(金善珍), 'SWAN 1-2'.
김선진(金善珍), 'SWAN 1-2'.

실수로 커피를 흘렸을 때 생기는 얼룩, 잉크가 물에 번져 퍼지는 찰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미지, 손을 닦을 때 생기는 거품 등,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순간의 사소한 일상에서 매 순간 같은 듯 다른 느낌의 이미지들을 작가는 머릿속에 기억한다. 그 후에 순간적으로 만났던 이미지들을 형상화해서 조각 작품으로 만든다. 작가가 보고 느낀 생각을 조형언어로 보여주는 것이다.

위 사진 이미지는 한백옥이라는 백옥처럼 흰 돌을 깎아서, 백조처럼 보이도록 만든 반구상 작품이다. 한백옥은 명나라와 청나라 양대 황궁과 황릉 건설에 쓰였던 하얗고 밀도가 조밀한 돌이다.

조형적인 관점에서, 작가는 흰색 백조를 표현하기 위해서 한백옥이라는 유난히 흰 돌을 선택한 것이다. 비닐이나 종이를 구겨서 백조를 만든 느낌을 돌로 표현한 기법 자체도 재미있다.

​백조와 똑같은 형상의 작품을 만드는 대신, 백조라는 느낌을 갖도록 비슷하게 만든 것이 예술적으로 더 의미 있어 보인다. 관람자에게는 가벼운 백조 같은 느낌을 주지만, 실제 작품은 돌이라서 그다지 가볍지 않다. 예술 작품이 주는 매력 중 하나는 관람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유발해 시각적으로 착각하게 만드는데 있다.  

​작가는 동일한 사물도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쓸모 있을 수도, 쓸모없을 수도 있는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중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찮게 여겨질 수 있는데, 이러한 가치 판단의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해 놓은 것일까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제기한다.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함께하는데, 그 없음에 해당하는 것에 수레의 쓰임이 있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없음에 해당하는 것에 그릇의 쓰임이 있다... 있음으로써 이익을 삼고, 없음으로써 쓰임을 삼는다. (도덕경 11장). 노자가 말했듯이 쓸모없음이라고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쓸모 있는지도 모른다.

​김선진 작가는 별것 아니고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가치 있는 것들뿐이라고 말한다.

오늘도 작가는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찾아내서 의미를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덧 입혀, 새로운 조각 작품으로 탄생시키려고 열심히 돌을 깎는다. 김선진 작가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중국 대륙에서 한국 여성 조각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질 날이 그다지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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