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뉴엘아트홀, 삶의 궤적을 '글자풍경'에 담는 홍인숙 개인전 개최
에비뉴엘아트홀, 삶의 궤적을 '글자풍경'에 담는 홍인숙 개인전 개최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8.07.09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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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아트홀에서 7월 5일부터 7월29일까지 마음의 여유와 위안을 ‘문장’과 ‘그림’으로 나누고자 홍인숙 작가의 ‘글자풍경’ 전시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는 시(詩) 같은 그림을 그리는(찍어내는) 글자그림 40여 점을 전시 한다. 

 

홍인숙,'명량한고통 ,후두둑' 210x150cm, 먹지로 그리고 종이로 찍음 ,2008.
홍인숙,'명량한고통 ,후두둑' 210x150cm, 먹지로 그리고 종이로 찍음 ,2008.

홍 작가는 드로잉이나 회화, 판화이기도 한 ‘먹지그림’, 즉 노동화(勞動畵)가 주는 진정성을 표현하고, 가장 독특한 동시대와 삶을 그리는 작가이다.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7년을 보냈다. 작가는 그간 쓰고, 정리하고 다스렸던 삶의 궤적을 이번 ‘글자풍경’전에 펼쳤다. 박제 된 글씨가 아닌 ‘살고 있는’ 글씨로 선보인다.

평소 글쓰기에 능한 작가는 일상의 사소한 생각과 메모, 낙서들을 기록한 뒤 그녀만의 기발한 문장으로 만든다. 그 문장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간결한 단문 시어(詩語)가 되고 결국엔 이미지가 된다.

마치 수천, 수만 개의 의미를 담았을 일상 언어의 수고로움에 감사의 꽃다발을 건네는 것처럼 글자들은 작가가 만든 면류관을 쓴다. 

홍인숙, 사랑,210x150cm,먹지로 그리고 종이로 찍음, 2006.
홍인숙, '後眞 사랑'. 210 x 150cm,먹지로 그리고 종이로 찍음, 2006.

“사랑 지나니 싸랑, 싸랑 지나니 썅 거룩한 썅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썅을 봤나 한 사람이 중요하듯이 이 한 글자면 충분했다. 박제 된 글씨가 아닌 살고 있는 글씨 십년 후에도 우린 사랑을 말하려나 사랑, 일상이었으면 좋겠다.”

작품 속의 작은 꽃다발들은, 밑그림을 그린 후. 그것을 먹지 위에 다시 눌러 검은 윤곽선으로 그린다. 이어 색깔 별로 판을 자르고, 롤러로 색을 칠하고, 그 색 판의 수만큼 프레스기를 돌려 판화라고는 하지만 에디션도 없는 그림을 완성한다.

작가가 이런 고된 작업들을 자처하며 작업하는 이유에 대해 성윤진 큐레이터는"‘홍인숙’ 다운 작품으로 태어나기 위한 밑작업이다. 요즘 같이 인스턴트 이미지가 수없이 많이 생산되는 시대에 홍인숙의 작업방식은 미련하다 못해 신선하다"고 설명했다. 

제작과정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렇게 묻는다. “왜 컴퓨터로 안 뽑으세요?” 하지만 홍 작가는 "이것은 가장 나다운 것을 찾다가 고안한 이 방식으로 드로잉처럼 빠르지도, 컴퓨터 작업처럼 매끈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홍인숙,'글자풍경', 전시 전경,(사진=에비뉴엘 아트홀)
홍인숙,'글자풍경', 전시 전경,(사진=에비뉴엘 아트홀)

느낌이 좋아 사용하기 시작한 한지 위에 먹지를 대고 눌러 그릴 때 손의 압력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검정색의 느낌은 손그림과는 다른 ‘힘 뺀 그림’이 된다. 

이번 전시는 홍인숙의 작은 회고전 같다. 가족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자의 가차문자를 갖고 노는 말장난 달인의 면모를 보였던 ‘後眞(후진사랑)’, ‘큰  잘못’, ‘무지개동산’ 등 이 그렇다.

홍 작가의 작품은 얼핏보면 추억의 만화가 떠오르고, 비례에 맞지 않는 커다란 눈에 꽃, 리본으로 장식한 소녀 등 작가의 독특한 회화 스타일은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도록 머리에 각인되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아버지의 낡은 책에서 발견된 어린 시절 자신의 낙서그림에서 비롯됐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로 시작된 가족그림은 작가에게는 슬픔과 결핍에 대한 지속적인 재확인이자 치유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 감정들은 작가를 끊임없이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해 마주하도록 만들었다. 일상을 읽고 사람을 사랑하고 주변을 애정하는 마음은 자기성찰과 반성으로 이어진다.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 홍인숙 작가'.(사진=이예진 기자)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 홍인숙 작가'.(사진=이예진 기자)

이어 작가가 선택하는 단어, 소재, 기법이 점점 하나의 목소리를 내게 했다.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확인 시켜준다. 그는 그림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에 일관된 시점과 태도를 잊지 않으려 차곡차곡 기록하는 것 같다. 

‘민화’를 가장 그럴듯한 팝아트라고 생각한다는 홍인숙의 작품은 이렇게 동시대의 삶, 마음, 언어를 담는다. 누구의 흉내도 아니고, 어눌하기 어눌한 이 그림을 우리가 ‘가장 한국적인, 어찌보면 가장 아름다운 팝아트’라고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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