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초상, 문성식
풍경의 초상, 문성식
  • 김재현
  • 승인 2018.07.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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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김재현 기자] 주류 회화의 여백에서 작업 하면서 관념적 사실주의의 새로운 레퍼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문성식이 자신의 기억과 경험들, 주변의 풍경을 다소 고집스러워 보일 정도로 사실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작품을 2011년 2월24일부터 4월 7일까지 국제갤러리에 펼쳐보인다.

문성식, '무심한 교차'. 76 x 430 cm,  Acrylic on paper, 2008-2010.(사진=국제갤러리)
문성식, '무심한 교차'. 76 x 430 cm, Acrylic on paper, 2008-2010.(사진=국제갤러리)

그의 작품들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사들이 반복적인 세필이라는 극도로 세심한 방식으로 표현되는데, 이러한 작업은 우리가 늘 상 지나치는 보편적인 풍경에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비전을 부여한다.

작가는 이번 작품들에서도 주변의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삶의 표정을 마치 초상화 속 인물의 표정을 드러내듯 세심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전 작품들 보다 스케일이 더욱 커진 페인팅과 드로잉을 선보이는 그의 작업들에는 세필화 기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형상들이 무한한 눈동자처럼 빽빽하게 전시 공간을 채우고 있다.

페인팅 작품들은 기존의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무대나 정원을 떠올리는 닫힌 구성대신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 없는 긴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한정된 캔버스에 화면 대신 장지를 사용했다.

특히, ‘숲의 내부’ 에서는 무한히 계속되는 화면 맨 뒤 부분의 나뭇잎 한 잎 한 잎 까지도 세밀하게 표현되어있는데, 동일한 정성으로 그려진 작품의 전체를 바라보면 미미한 사물들에 대한 불교적 성찰 마저도 느낄 수 있다.

문성식, '숲의 내부'. 75 x 428 cm, Acrylic on paper, 2010-2011.(사진=국제갤러리)
문성식, '숲의 내부'. 75 x 428 cm, Acrylic on paper, 2010-2011.(사진=국제갤러리)

또 다른 작품 ‘밤의 질감’은 그가 작업실로 출퇴근 하면서 보았던 인왕산의 모습을 시간의간극에서 오는 풍경의 차이에 주목했다. 어둠이 깃들면서 산의 모습은 낯의 밝음 속에서 빛나던 모든 사건과 사물들을 암흑으로 압도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어둠의 숭고함을 표현하기로 작정하고 엄청난 시간과 노동을 화면 위의 어둠으로 물질화 시켜 놓는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가 변화된 계기는 ‘밤’ 이란 작품이라고 한다. 산에 대한 경험의 조각들을 모아 재조립된 풍경 안에는 올무에 걸린 고라니 울음소리와 부러진 나뭇가지 등의 사건들이 배치되어 있다.

문 작가는 다소 관념적이라고 할 수 있을 이러한 서사를 만들어 냄에 있어 사물의 배치가 아닌 경험들의 배치를 구사하는 노련함을 보여주고 있다.
경험들은 처음 화면 속에서 조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의 배치가 함축하는 것은 매무 오랜 감정들, 일종의 설명할 수 없는 노스탤지어 같은 것이다.

문성식, '별과 소쩍새 그리고 내 할머니'. 48.5 x 106 cm, Pencil on paper,2007.
문성식, '별과 소쩍새 그리고 내 할머니'. 48.5 x 106 cm, Pencil on paper,2007.

문성식의 드로잉 작품들은 페인팅에서 드러나지 않는 소소한 사건들을 좀 더 간결하게 기술하고 있다. 대표작인 '별과 소쩍새 그리고 내 할머니'는 어느 한 여름 날 병으로 고생하시던 작가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고향 김천 집에서 초상을 치른 작가의 경험을 담고 있다.

그날의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초상집의 분주함과 문상객들, 그리고 힘들던 하루가 지나 밤이 되어 그 하루의 경험의 모든 것이 작가에게 다가왔을 때의 심경이 한편의 시처럼 펼쳐져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저녁을 지나 밤이 되었고 암흑 속에 수많은 별들이 투명하게 빛나고, 낮에 보이던 앞산의 아기자기한 푸른 나무들은 이미 하나의 어둠으로 스러져 갔고, 그 안 어딘가에서 운치 있는 소쩍새 소리가 들려왔다. 까만 하늘과 반짝이는 별들, 먼산 소쩍새 소리, 그리고 낮에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 모두 다른 세계로부터 온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무심한 것들이 나에게 그날의 느낌이 되었다.”

'청춘을 돌려다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의 마지막 장면인, 주인공이 춤추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작품이다. 어릴 적 외갓집 잔치에서 경험했던 생경한 기억을 서술하고 있는 이 작품은 당시 잔치에서 춤추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어색하고 싫어서 그 장면이 어린 작가의 마음에 생생하게 각인됐다고 한다.

문성식, '밤'. 65 x 287cm, 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 2008.
문성식, '밤'. 65 x 287cm, 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 2008.

결혼한 마을청년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촌로들이 격렬하게 노래하고 춤추던 모습을 회상하며 어른이 된 작가는 거기에 존재하는 고단한 삶에 대한 슬픔을 느낀다.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카니발과 같은 장면을 작가는 마치 그들이 하늘에 나의 청춘을 돌려달라고 울부짖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문성식의 회화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감정의 기조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들의 살림살이와 몸부림에 대한 처연함과 가련함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에 따르면 삶과 죽음, 시간, 빛과 어둠, 자연의 섭리, 그리고 다양한 인간사 말고도 세상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어 우리는 그것을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 그는 다만 작은 한 인간으로서 그 카오스 같고 진창 같은 세상을 들여다 보고 그 안에서 결을 찾으며 그 결을 자신의 의식으로 정리한 결과물이 자신의 작업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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