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7 '박형오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7 '박형오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8.07.22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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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꿈속에서 채집된 무의식을 조각화하는 박형오 작가의 실존 이야기'

​예술이란 인간에 내재해 있는 미의식을 예술가의 손을 빌려서 발현시키는 것이다. 예술의 외연을 확대해 보면, 예술이란 예술가가 사유하고 체험한 세계를 시각화하고, 형상화 시키는 작업이다. 따라서 예술이란 아름다움의 영역과는 별개로 예술가의 생각을 담은 시각언어이고, 조형언어이다.

'박형오 작품'.
'박형오 작품'.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말한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것은 죽은 자의 해골에 불과하다. 결국 죽음과 개인을 구별해주는 것은 시선이다.

​걷는다는 것은 실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시선 또한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자코메티의 예술은 친구인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한다.

플라톤의 철학이라면, 본질은 실존에 앞서는 것이다. 하지만 사르트르, 야스퍼스, 하이데거 같은 실존주의자들에게 인간은 다른 사물들과 달리, 존재 그 자체이다. 실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거기 있음이다.

​인간은 이 지구상에 내던져진 존재다. 혼자 태어나고, 혼자 세상을 떠나야만 하는 운명을 지닌 고독한 존재다. 시간의 틀안에 갇혀서 각자에게 부여된 시간을 소모하다가, 죽음 앞에 서야만 하는 운명이 불안으로 다가온다.

하이데거에게 불안은 인간에게서 존재자 전체가 사라져버리는 경험이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과 마주한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현존재는 시간 안에 어떤 종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한하게 실존한다는 뜻이다.

'박형오 작품'.
'박형오 작품'.

인체 작업을 주로 하는 박형오 작가는 별로 말이 없는 편이다. 무척 진지하다.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이 습관화된 듯 보인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인간 내면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담겨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인간 실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거의 매일 다양한 꿈을 꾼다고 한다. 신선이 나올 법한 무릉도원을 걷는 꿈, 무지개 색깔의 돌멩이가 등장하는 꿈, 물이나 수풀 위로 추락하는 꿈 등. 다양한 꿈의 근저에는 시골에서 살던 유년 시절, 자다 깨어보니 집안에 혼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생긴 불안감이 아직도 작가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이란 무의식이 표출된 것이다. 꿈에 대한 탐구는 무의식을 알아내는 지름길이다. 꿈은 억압된 소망의 충족이라고 한다.

박형오 작가는 꿈속에서 발견된 자신의 무의식을 조각이나 드로잉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감싸고 있는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것 같다. 자신 속에 내재하고 있는 불안과 고독을 작품으로 승화시켜서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것이 작업의 의도이다.

​두 장의 사진 이미지는 머리만 뎅그라니 있는 주름진 노인의 얼굴 조각과 손에서 식물이 돋아나는 형상의 조각이다. 얼굴 조각은 죽음이고, 손 조각은 탄생이다.

노인의 얼굴 조각은 작가 자신의 미래 자화상이면서, 실존의 끝이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서야 비로소 실존이 주는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난다. 어쩌면 삶이란 행복이 아니라, 고통과 불안을 경험하게 해주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손에서 식물의 줄기가 돋아나는 형상 조각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상징한다. 아마도 작가가 꿈에서 만난 이미지를 표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손과 식물이 결합된 형태는 일반인들에게는 불편한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의 신체와 식물의 결합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박형오 작가에게 예술가란 자신만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시각화하고, 사회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처와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영매자라고 정의한다.

'박형오 작품'.
'박형오 작품'.

꿈에서 접한 이미지와 어린 시절의 기억의 경계를 지워내는 형상화 작업을 통해서, 자신의 현존재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마음의 상처를 인식의 매개체 안에서 치유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시각화한다.   

심오함보다는 가벼움을,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을, 느림보다는 빠름을, 오랜 숙성의 기다림보다는 즉각적인 인스턴트를 즐기는 현재의 한국인들에게 멈춰 서서 생각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박형오 작품이 지금보다 더욱 깊이감과 무게감을 더한 예술 작품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전생이나 내세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라서 알 수 없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우리는 사유하고 있다. 실존하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유한한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잘 사는 삶일까? 도덕적인 삶, 인간적인 삶, 가치 있는 삶.

자신의 행복 추구가 의미 있는 삶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인과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박형오 작품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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