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9 '고봉수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9 '고봉수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8.08.0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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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H] '고전 작품을 해체와 조합시켜 재해석하는 고봉수 작가의 비재현적 재현 이야기'

옛 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만하다.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論語, 爲政, 11)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論語, 爲政, 15) 군자의 도는 멀리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고, 높이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다. (君子之道, 譬如行遠必自邇, 譬如登高必自邇. 中庸, 15)

고봉수, 'death life'. 300X200X450mm, Mixed Media, 2017.
고봉수, 'death life'. 300X200X450mm, Mixed Media, 2017.

고봉수 작품에 공자의 말을 적용해서 해석해본다면, 첫째, 동 서양의 고전 예술 작품을 차용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새로운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다.

둘째, 개념 없이 만들어진 작품은 장식품에 불과할 수 있다. 개념만 있고, 표현이 잘 되지 못 하면, 예술 작품이 아니다. 셋째, 예술은 천재들이 만든 작품의 이해와 모방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노력과 인내심을 바탕으로 천천히 완성되는 것이다.

고봉수 작가의 첫인상이 주는 느낌은 선비 그 자체다. 홍익대 조소과 교수인​ 작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예술가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과 달리, 자신이 세운 엄격한 규율로 스스로를 통제하는 성균관 유학자 같은 느낌이다. 고전학자 같은 외모지만, 조각 작업에서만큼은 전혀 두려움이 없는 듯하다.

작가는 스스로 말이 어눌하다고 한다. 공자의 말이 생각난다.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한다. (君子, 欲訥於言, 而敏於行, 論語, 里仁, 24장).

작가는 작업에서는 과감한 시도를 보여주지만, 평상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겸손한 듯하다. 사유는 깊게, 말은 적게 하여,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철학을 처음 배울 때는 동 서양의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의 책을 읽는다. 그러면서, 그들이 사유하는 방식을 습득한다. 철학의 내용과 형식을 갖추게 되면, 스스로 철학을 하기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독창적인 철학 사유를 구축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된다. 영국의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1861-1947)는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미 천재인 플라톤이 철학을 완성했다는 뜻이다.

​서양 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중국 철학은 공자와 노자, 인도 철학은 우파니샤드와 붓다가 인간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유를 오래전에 발표해버렸다. 후대 철학자들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예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봉수 작가는 고대의 사람들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미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였다고 외친다. 역사적으로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예술 작품들은 천재들의 뛰어난 상상력의 산물이란다.

하지만 작가는 예술가로서 스스로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래서 상상력의 부재를 반성한다. 솔로몬은 말한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모든 현대 예술가들의 고민이다.

​작가에게 재현의 비재현의 의미는 모방과 재현의 과정을 통해 상상력의 기원은 무엇인가를 되묻고자 함이며, 재현하는 듯 보이지만,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오히려 비재현을 통해서 새로운 작품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재현의 비재현을 통한 비재현적 재현인 것이다.

위 이미지의 두 작품은 흙으로 틀을 만들고, FRP로 완성한 후에, 표면에 얇은 알루미늄 포일로 감싼 것이다. 작품을 만드는데 드는 재료 구입 비용을 최소화 한 것이다. 모든 작품을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마블로 만들고 싶지만, 빠듯한 교수 월급으로는 재료비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고봉수, '니케의 머리 비너스의 꿈 1'. 4200X1600X1600mm, ,Mixed Media, 2017.
고봉수, '니케의 머리 비너스의 꿈 1'. 4200X1600X1600mm, ,Mixed Media, 2017.

첫 번째 이미지는 니케의 머리와 비너스의 꿈이라는 작품이다. 머리 없는 사모트라케의 니케의 조각 위에 거꾸로 세워진 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를 결합시킨 작품이다.

관람자의 마음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든다. 이것이 작가가 원하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고정된 관념이나 관습을 파괴시킨다. 심지어는 종교적인 성스러움도 파괴시키려는 듯하다. 작품을 통해서, 관람자에게 다르게 생각하기와 발상의 전환을 주문하는 것 같다.

두 번째 이미지는 Death & Life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사람의 흉상을 반으로 나누어, 반은 살아 있는 모습이고, 반은 해골의 모습이다. 그 위에 불교의 반가사유상이 올려져 있다.

삶과 죽음, 현세와 극락세계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라는 사유를 보여주는 듯하다. 삶의 끝은 죽음이다. 하지만 죽음의 끝이 또 다른 삶의 시작일지 모른다. 마치 우리가 매일 깨어나고, 매일 잠드는 것처럼. 

​중국 철학자 주희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주석을 달면서 학문을 시작했지만, 마침내 독창적인 주자학이라는 학문을 성립시켰다. 고봉수 작가도 위대한 조각품들을 모방하고 재해석하면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완성하려 하고 있다.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탄생한 고봉수라는 이름을 단 세계적인 조각품이 우리 앞에 등장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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