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내재된 여성과 노동을 모은 新 '오뜨 꾸뛰르' 컬렉션 '베틀, 배틀'
패션에 내재된 여성과 노동을 모은 新 '오뜨 꾸뛰르' 컬렉션 '베틀, 배틀'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8.08.0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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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2018년도 문화예술진흥기금 시각예술창작산실 전시지원 선정작인 ’베틀, 배틀(Looms&Battles)’전이 8월 8일부터 9월 9일까지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막을 올린다.   

조은지, '대통령은 사랑을 위하여'. 프로토타입 디자인 합성 이미지, 2018.(사진=토탈미술관)
조은지, '대통령은 사랑을 위하여'. 프로토타입 디자인 합성 이미지, 2018.(사진=토탈미술관)

전시 ‘베틀, 배틀’은 전통 길쌈과 식민지시기 방직산업부터 동시대 글로벌 패스트패션에 이르기까지, ‘베틀(Loom)로 상징되는 직조사와 의류생산에 내장된 착취적 노동사슬과 대륙간으로 전이되는 연쇄적 폐허의 풍경을 비추어 보고자 기획했다.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시 사전연구 프로그램에 선정된 이후, 두 해에 걸쳐 진행된 방대한 연구조사 과정과 국내외 작가, 디자이너들과의 창작 논의는 본 프로젝트가 2018년 ‘창작산실 시각예술’ 프로그램으로 연속 선정되면서, ‘베틀, 배틀’은 비로소 전시의 형태로 구체화 되는 동력을 얻게 됐다. 

현재 ‘베틀, 배틀’전을 공유지점으로 하여  동시대 가장 활발한 예술적 실천과 발언을 해나가는 작가들을 구심점으로, 연구자와 제작자 집단으로 결속된  9개의 브랜드와 일곱 연구자로 구성된 학술,출판 모임이 결성되었고 향후 지속적인 발전을 염두해 둔다. 

'알고리즘적 노동자를 위한 노동복'. 언메이크 랩, 2018.(사진=토탈미술관)
'알고리즘적 노동자를 위한 노동복'. 언메이크 랩, 2018.(사진=토탈미술관)

연구자와 창작자, 제작자들의 삼각 연대 속에서 탄생한 일종의 집합 브랜드인 ‘베틀, 배틀’을 플랫폼으로 해, 각 팀은 저마다의 시급한 사회적 쟁점과 예술적 제작론을 결합시켜, 새로운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를 전개해 나가는 일종의 ‘옷’ 만들기 ‘배틀’을 벌이게 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거의 모든 작업들은 새로운 레이블을 단 신작으로 발표되며, 마치 편집숍처럼 연출된 유서깊은 미술관 공간에서 관람객을 만나게 된다. 

‘르네상스’ 시기 한 사람을 위한 맞춤복 개념인 ‘오뜨 꾸뛰르’는 오늘날 하이엔드 패션의 세계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부르주아적 유산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오히려 소비지향의 시대에 쉽게 생산되고 버려지는 생산과 소비의 패턴, 이러한 소비를 가속화 시키는 패션 인더스트리의 행태, 시대와 장소, 그리고 착취 주체를 바꿔가며 반복 자행되는 국가 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 맞서는 정성스럽고, 개념적인 창작 의상에 대한 긍정적 용어로 전용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직물과 의류생산의 식민화에 대한 집념어린 리서치와 자신만의 오뜨 꾸뛰르 생산을 꾸준히 전개해 온 작가, 이네스 도우약의 장기 프로젝트 ’Loomshuttles/Warpaths’ 에 개념적, 실천적 빚을 지고 있다. 

이네스 도우약, '카드보드지로 제작한 로봇, 목걸이, 2018.(사진=토탈미술관)
이네스 도우약, '카드보드지로 제작한 로봇, 목걸이, 2018.(사진=토탈미술관)

다양한 ‘배틀’ 대상을 상정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예술가들의 창의적 실천과 협업 역량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으로 요구되었다. 

실에서 한 뼘의 스와치로, 한 척의 옷감에서 옷으로, 그리고 의류에서 패션 산업으로 끊임없이 생태계을 옮겨가는 동안 그 속에 내재된 억압과 울분, 저항과 싸움의 몸짓은 작가적 옷 만들기를 통해 다른 차원의 실천으로 이행하게 된다. 

기록과 고발, 역사연구 방법론이 흔해져 버린 사회적 미술의 문법을 조금씩 비껴가며, 오히려 패션이 안고 있는 여러 쌍의 모순과 역설의 구조를 적극적으로 차용함으로 작가들이 택한 옷짓기 배틀, 즉 ‘베틀, 배틀’은 새로운 미술-패션으로 재창안되고, 생경한 형태와 무늬, 이음매로 지어진 옷들로 육화되어 관객들의 소비를 기다리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지난 10년간 남미와 유럽 사이의 옷을 둘러싼 비대칭적 관계와 식민주의 담론 상의 쟁점들을 작품으로서 일갈해 온, 오스트리아 기반의 세계적 작가 이네스 도우약(Ines Doujak)의 신작 ‘신 중국 비단길(Chinese New Silkroad)’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기존처럼 새로운 의상 컬렉션 발표 대신, 최근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일대일로’ 물류 프로젝트의 문제를 전혀 다른 역사적 연대와 동떨어진 지정학적 예각에서 끌고 들어와, 글로벌 무역에서의 반복되는 물류 패권과 비가시적 힘, 제국주의 시대로의 역행에 대해 고발한다. 

흑표범, '선영, 미영, 미영'. 모델이 입고 있는 소복 사진, 인견에 프린트, 2018.(사진=토탈미술관)
흑표범, '선영, 미영, 미영'. 모델이 입고 있는 소복 사진, 인견에 프린트, 2018.(사진=토탈미술관)

동시대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노동 현실과 계급, 정치, 페미니즘 이슈에 대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작가적 대응을 해 나가고자 하는 참여 예술가들은 이번 전시에 참여하게 되면서 지난 일년 간의 작가 리서치와 제작 과정을 마무리하며, 디자인 협업자들과의 공동 프로젝트을 통해 탄생하게 된 각자의 브랜드 스토리와 개성있는 컬렉션의 발표를 앞두고 있다. 

전시를 제안한 조주리는 시각문화 분야의 연구자이자 독립 기획자로, 전시를 통해 창작자들과 함께 새로운 문화적, 지적 생산물들을 창안해 내는 프로듀서이자, ‘베틀-북/ 배틀-북’의 주요 저자 겸 에디터이기도 하다. 

리서치 기반의 전시 생산과 기관 협력 프로젝트로 동남 아시아지역의 의류와 직물의 역사를 소개하는 민속, 인류학 기반의 전시기획 경험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 작가인 이네스 도우약과의 협업 및 국내 작가들과의 장기리서치를 해 나가고 있다. 

알 X 스튜디오 에세이, 가운 형태의 원피스 7벌, 디자털 프린트 스카프 20여종, 여성 사회운동가들을 모델로 한 대형 그룹 사진.(사진=토탈미술관)
알 X 스튜디오 에세이, 가운 형태의 원피스 7벌, 디자털 프린트 스카프 20여종, 여성 사회운동가들을 모델로 한 대형 그룹 사진.(사진=토탈미술관)

‘베틀, 배틀’프로젝트는, 향후 여러 국가의 생산자들과 함께 리서치, 학술, 출판, 새로운 브랜드 제작을 병행해 나가는 온-고잉(On going) 프로젝트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고 이네스 도우약, Studio SOL, 이완, 언메이크 랩, 전소정, 조은지, 흑표범, 홍진훤, 신제현, 자유연구모임:외부입력(Ex/In) 등의 작가와 프로젝트팀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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