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1 '이혜선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1 '이혜선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8.08.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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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H] '잊혀가는 옛 것에 새로운 가치를 담는 이혜선 작가의 공간과 가치 이야기'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을 주장했던 우현 고유섭은 아름다움이라는 우리말에는 미의 본질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아름이라는 것은 안다의 동명사로서 미의 이해 작용을 표상하고, 다움이란 것은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다움이 인간적 가치인 인격을 말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은 지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이혜선 작.
이혜선 작.

아름다움은 종합적 생활 감정의 이해 작용이다. 그러나 생활 감정은 시대를 따라 변화되는 것이다. 이곳에 미의 변화 상이 있는 것이요, 미의 사적(史的) 관찰이 성립되는 것이다. 미술 공예라는 것은 이러한 종합적 생활 감정이 가장 풍부하게 담겨 있는 예술의 일부분이다. (고유섭, 우리의 미술과 공예)

1909년부터 20년 동안 한국에 체류하면서, 1929년에 한국미술사를 집필한 독일인 안드레아스 에카르트는 진정한 예술의 의미는 삶의 예술에 기반을 두는 것이어서, 그것은 모든 대상으로 연장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독일에서 유학을 한 이혜선 작가는 한국을 벗어나서야 비로소, 한국에서는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던 생활 공예품들에서, 숨겨져 있던 소박한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너무 흔해서 주목하지 않았던 사물에서, 주관적 편견을 제거하고, 타자화와 객관화를 시켰더니, 무기교의 기교로 탄생된 아름다움과 미적 가치가 발견된 것이다.

한국의 주거 문화가 한옥에서 서양식 주택으로, 그리고 주택에서 다시 아파트로 바뀌면서, 미적 요소를 담고 있던 전통적인 아름다운 문이나 창문은 미적 가치를 상실한 체, 안전성과 기능적 요소만 남게 되었다.

​이혜선 작가는  전통적인 문에는 복을 기원하는 선조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사라져 가는 전통적 문에 담겨 있던 아름다운 기하학적 문양들을 작품에 응용한다. 작가에게 문은 하나의 공간을 규정지어 주고,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소통의 통로인 것이다.

어릴 적에는 대부분의 가정에 전기밥솥이 없었다. 어머니는 부뚜막 가마솥에 한가득 밥을 지어, 뚜껑이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 밥그릇에 담았다.

늦게 귀가하는 식구를 위해, 아랫목 따뜻한 곳 이불 속에 밥그릇을 넣어 식지 않도록 했다.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 밥그릇 뚜껑 위에, 전통 문에 담겨 있던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들을 새겨 넣고, 고운 옥색을 입힌다.​

'이혜선 작'.
'이혜선 작'.

타지에 있는 가족을 위해서, 매일 밥을 퍼서 놓거나, 정화수를 떠놓고 안녕을 비는 한국의 어머니들의 따뜻한 마음을 담은 작품이 바로 Space, there 작품이다. 동일하게 보이는 밥그릇이지만, 각기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다. 예술적 가치가 부여된 생활 공예품인 밥그릇은 이제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 밥그릇들은 검은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체스판 또는 바둑판 모양의 네모난 아크릴 판위에 놓인다. 정형화되어 있지만, 가변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증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흰색과 검은색은 음과 양으로 구성된 우주이자, 만다라인 것이다. 작가에게 공간은 가치가 부여된 순간, 공간 또한 총체적인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다. 공간 속에 전통과 추억이라는 가치를 담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밥그릇, 문창살, 보자기와 같은 오브제들에 한국의 전통적인 오방색과 기하학적 문양을 결합시켜,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서 조각하고 설치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녹아든 예술 작품을 작가의 인생이라고 말하는 이혜선 작가가 다음 전시에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오브제에, 어떤 가치를 담을지 궁금해진다. 

주관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 문화의 특징은 단절과 복원의 문화요, 망각과 회상의 문화인 듯 보인다. 전통이란 삶의 역사이자 흔적임에도, 우리는 늘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것만을 좋아한다. 예술계만이라도 전통이 주는 소중한 가치를 알고, 전통을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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