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디다 회퍼, 매체를 통해 공간과 인간을 사유...'Spaces of Enlightenment'
칸디다 회퍼, 매체를 통해 공간과 인간을 사유...'Spaces of Enlightenment'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8.08.2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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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국제갤러리는 현대 사진의 지평을 넓혀온 세계적인 작가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74)의 개인전 ‘Spaces of Enlightenment’를  8월 26일까지 개최한다. 

칸디다 회퍼, ’Van Abbemuseum Eindhoven VI’. 103.8 x 88 cm, C-print, 2003. (사진= 국제갤러리)
칸디다 회퍼, ’Van Abbemuseum Eindhoven VI’. 103.8 x 88 cm, C-print, 2003. (사진= 국제갤러리)

국내에서 네 번째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지난 50여 년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공간과 인간을 사유해 온 칸디다 회퍼의 작품들 중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근래까지 촬영된 ‘공연장(Theatre, Opera House)’, ‘도서관(Library)’, ‘미술관(Museum, Collection)’ 등 특정 기관의 공간에 주목해 작업했다. 

이번 ‘Spaces of Enlightenment’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의 내부 공간은 다양한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동시에 모두 인간의 ‘깨달음(Enlightenment)’을 가능하게 한 장소이다.

한편 근대 철학, 정치, 문학, 건축, 예술 등 사회 전반에 폭 넓은 영향을 미친 계몽 사상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힘, 즉 이성의 빛에서 출발한다.

칸디다 회퍼, ‘BNF Paris VI’. 88 x 88 cm, C-print, 1998. (사진=국제갤러리)
칸디다 회퍼, ‘BNF Paris VI’. 88 x 88 cm, C-print, 1998. (사진=국제갤러리)

‘Enlightened (깨우친, 계몽된, 개화된)’라는 단어의 의미와 더불어 불교의 돈오(頓悟)로 해석되거나 빛으로 도상화되기도 하는 ‘깨달음’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에서 비롯되기 보다 연역적 사고와 경험을 통한 인식의 변화, 일종의 ‘깨어나기’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 속 공간은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고 인식의 변화를 일깨운 사회적 장소들로 읽힌다. 

국제갤러리 K2 의 1 층은 뒤셀도르프 시립극장(Düsseldorf Schauspielhaus)을 시작으로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르헨티나의 극장과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 공간을 담은 작품으로 구성했다. 

이들 공간은 다양한 건축 양식은 물론 시대적, 사회적 변화를 가늠하게 한다. 예컨대 명문가의 사유지에 마련됐던 개인 극장(Teatro di Villa Aldrovandi Mazzacorati, Bologna), 닫힌 공간을 더 넓고 깊게 보이도록 원근법을 이용한 설계 방식(Teatro Olimpico Vicenza), 공공 기금을 통해 건립되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설 극장(Teatro Communale di Bologna)은 이전 왕족과 귀족에 국한됐던 음악과 청중의 존재가 계몽시대 중간계급의 부상과 맞물려 확대되고, 공적 기관의 설립 및 대중화로 이어진 일련의 역사를 대변한다. 

칸디다 회퍼, 'Teatro Cervantes Buenos Aires I'. 184× 244cm, C-print, 2006.(사진=국제갤러리)
칸디다 회퍼, 'Teatro Cervantes Buenos Aires I'. 184× 244cm, C-print, 2006.(사진=국제갤러리)

K2 2 층에는 인간의 지적, 심미적 추구의 장으로 한데 묶일 수 있는 도서관과 미술관의 공간들이 소개된다. 특권계층을 위한 곳에서 민주화된 문화의 장소로 바뀌게 된 이러한 공간들은 무수히 많은 예술가, 역사학자, 철학자들이 청중, 관객과 교류하였고 이 과정에서 생긴 인식의 변화는 깨달음으로, 더 나아가 예술 창작의 위대한 순간으로 이어졌음을 시사한다. 

칸디다 회퍼는 이 모든 것이 축적된 공간들을 그만의 긴 기다림과 호흡으로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또한 사진 속 공간들은 인간의 자취를 담고 있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 동물원,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과 같은 ‘공적 공간’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이는 인간의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고 그 산물로 존재하는,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형성된 공간이다.

칸디다 회퍼, 'Teatro Olimpico Vicenza I'. 184× 222cm, C-print, 2010.(사진=국제갤러리)
칸디다 회퍼, 'Teatro Olimpico Vicenza I'. 184× 222cm, C-print, 2010.(사진=국제갤러리)

그는 주어진 시간 내에 장소 자체에 깃든 자연광과 인공 조명으로만 작업하며 추가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작가는 공간을 탐색하고 구도를 잡은 뒤 셔터를 누르고, 여러 차례의 인화와 선별 작업을 거쳐 최종 프린트를 선정한다.

이 프린트의 촬영이 이루어진 지명, 기관, 년도, 동일 장소일 경우 ‘로마자’로 그 순서만을 표기하는 등 최소한으로 기입한다. 또한 이미지와 프레임 사이에 여백을 넣어 현재 공간과 유리 너머의 공간을 분리시키는 동시에 서로를 연결시킴으로써 관객은 인간, 시간, 역사가 함께 호흡하는 공간의 초상을 마주하게 된다. 

칸디다 회퍼(Candida Hofer), 'Dusseldorfer Schauspielhaus I'. 48.2×47cm, C-print, 1997.(사진=국제갤러리)
칸디다 회퍼(Candida Hofer), 'Dusseldorfer Schauspielhaus I'. 48.2×47cm, C-print, 1997.(사진=국제갤러리)

칸디다 회퍼는 전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선보였고, 2003년 제 50 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마틴 키펜베르거(Martin Kippenberger)와 공동으로 독일관을 대표했으며, 2018년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의 사진공로상(Outstanding Contribution to Photography)을 수상했다. 작가는 현재 쾰른에 거주하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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