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2' 김리현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2' 김리현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8.08.27 16: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아트스페이스H] '자본주의 욕망이 감추어진 소비문화를 조각으로 꼬집는 김리현 작가의 소비 풍경 이야기'

​"해방을 억제하고자 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시대에 뒤진 형태를 언제까지라도 영속시키는 물질적, 정신적 욕구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 넣는 것이다." (Herbert Marcuse, One-Dimensional Man)

"나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I Shop, Therefore I Am. (Barbara Kruger)

'작품과 함께한 김리현 작가'.(사진=artinfo photo.)
'작품과 함께한 김리현 작가'.(사진=artinfo photo.)

소비문화의 사전적 의미는 소비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의 행위 양식을 결정하게 되는 문화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현대인들은 소비와 소유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한다.

소비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새로운 자아를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이루어지고, 대중문화를 이용한 소비의 획일화와 극대화가 형성된다.

​한국인들의 소비문화는 이미 미국에서 오래전에 발생되었던 것이고, 소비문화에 대한 우려의 시각을 가진 미국의 사회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소비문화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글을 발표해왔다.

한국은 미국 자본주의의 지배하에 있고, 무의식중에 익숙해져 버린 소비를 통해서, 소수의 정치가들과 사업가들이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예속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리현 작가는 성신여대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조각가다. 젊은 작가의 장점인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색채에 대한 타고난 감각이 있어서, 개념이 담긴 팝아트 조각가로서 미래가 기대되는 작가다. 숨바꼭질이라는 작품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FRP로 만든 티거와 미키마우스가 커다란 드럼통을 뒤집어쓰고 있다.

​주인공의 얼굴을 알 수는 없어도, 색상과 다리 모양만 보고도 이미 작품 주인공을 알아맞힌다. 부지불식간에 이미 디즈니 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결과인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소비의 틀에 갇힌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미국의 물질문명과 소비문화에 종속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김리현 작가 성신조각회 올해의작가상 수상기념전시 모습.(사진=artinfo photo.)
김리현 작가 여류조각가협회 올해의작가상 수상기념전시 모습.(사진=artinfo photo.)

소비色이라고 이름 붙인 작품은 빨강, 노랑, 파랑, 녹색, 보라색으로 이루어진 다섯 가지 색을 사용한 다섯 개의 작품이다. 레진으로 만든 페인트 통이 거꾸로 공중에 떠 있고,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 채색을 한 페인트가 흘러내린다.

오원색을 조합하면, 무수히 다양한 색상을 만들 수 있지만, 사람들의 선택은 편중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획일화되어가는 우리의 무의식적 소비행위를 뒤집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재미있고, 원색의 색감이 화려하게 다가온다.

​한국인들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해보면, 개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소비를 통한 일차원적 인간이 되어버린다. 남들과 똑같은 소비와 소유를 갈망한다.

독일 출신 미국의 철학자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노동생산성이 향상되고 물질적 풍요가 커가는 것을 기초로 해서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조정과 통제가 행해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후기 자본주의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통제 메커니즘의 하나가 된다고 지적한다. 욕망을 자극해서 소비를 부추기고, 소비를 통해서 인간을 통제한다는 논리다.

​미술시장을 보면, 컬렉터들의 작품 구입 경향을 알 수 있다. 작품을 구입해야 하는데, 작가의 브랜드를 사는 것 같다. 브랜드가 알려진 작품을 주로 찾는다. 게다가 브랜드 작가의 대표작만을 선호한다.

예술 작품을 구입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만의 독점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 작품의 차별성과 다양성이 중요한 가치인데도, 획일적이고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듯하다.

​김리현 작가의 작품 중에서 재미있기도 독특하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무섭기도 한 작품이 있다. 심장 뽑기 기계 작품이다. 상업용 인형 뽑기 기계를 구입해서, 인형 대신 작가가 만든 심장 모형의 작품들로 기계를 채운다.

인간의 심장 모형에 배트맨이나 슈퍼맨의 상징 로고가 그려져 있다. 초능력자들의 강한 심장을 상징하는 것이다. 인간의 오래된 욕망은 영원한 생명을 갖는 것이었다. 인간의 장기를 새것으로 바꾸려는 의학적 과학적 시도는 진행 중이다. 신체의 장기조차도 돈으로 사고파는 소비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리현 작가의 자판기 게임기에 놓인 작품들.(사진=artinfo photo.)
김리현 작가의 자판기 게임기에 놓인 작품들.(사진=artinfo photo.)

작가가 말한 적이 있다. 편의점 인형 뽑기 인형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저가의 인형이지만, 힘들게 만든 50만 원짜리 작품을 단돈 오천 원에 실제로 뽑을까 봐 떨려서 눈뜨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심장 뽑기 기계 작품은 2018년 10월 3일부터 시작되는 키아프에서 우리 갤러리 부스에 설치될 예정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이면서 가장 보수적인 키아프에서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기대반 우려반이다. 예술 작품과 상업적인 기계를 결합한 작품에 대해서 한국화랑협회는 어떻게 반응할까?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의 생존 양상을 소유와 존재로 구분한다. 꽃을 꺾음으로써 꽃을 소유하려는 사람과 꽃을 있는 그대로 관조함으로써 꽃을 존재하도록 하는 사람. 인간은 소비를 통해서 소유를 하고, 소유하는 순간, 새로운 소유를 위한 대상을 찾아 나선다.

인간의 소유욕을 자극해서 소비를 부추긴다. 하지만 소유를 통해서 끝없는 소유욕을 충족시킬 수없기 때문에, 소유의 주체인 인간이 자신이 만든 물질에 잠식되는 결과를 낳는다.

​성북동 길상사의 주지였던 법정 스님께서 살아생전 실천으로 보여주었던 무소유를 통해서만, 진정한 인간 존재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소유가 아닌 무소유가 필요한 때다. 김리현 작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소비 풍경이 미래에는 또 다시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