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전시장 가는 길 5 '이아영 작가'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전시장 가는 길 5 '이아영 작가'
  • 권도균
  • 승인 2018.09.11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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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H] '금빛으로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이아영 작가의 사랑 이야기'

​"태생부터 가지고 태어난 성정을 통한 말과 행위 등과 같이 살아가는 형태들이 모여, 작은 것들이 쌓이고, 하나의 존재를 이룬다. 결이 모여 겹이 되고, 겹이 쌓여 내 전부를 대신하리라." (작가 노트 중에서)

'전시 작품과 함께한 이아영 작가'.(사진=artinfo DB.)
'전시 작품과 함께한 이아영 작가'.(사진=artinfo DB.)

우리는 이 세계에 잠시 머물다가 어딘가로 떠날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일까? 인연(因緣)이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 인(因)이고, 간접적 원인이 연(緣)이라고 한다. 씨앗이 인이고, 물이나 비료가 연이다. 내가 인이고, 네가 연이다. 나와 너의 만남이 인연이 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전생의 인연에 의해서 만난다고 한다.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의 관계에 대한 결과로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인연이 다음 생에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아영 작가는 어떤 존재가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생각, 말, 행동이 축적되면서, 사람과의 관계에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고 말한다. 나는 떠나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 흔적을 남긴다. 흔적의 깊이가 깊을수록, 헤어짐의 슬픔도 무거울 것이다.

​이아영 작가는 우리 갤러리 큐레이터이면서, 대학원을 다니는 회화 작가다. 큐레이터 전시 글을 쓰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작가와의 인연이 시작된 지 어느덧 1년 반이 지났다.

이아영, '애(愛)03', 27.3x34.8cm(5호), mixed media(순금), 2018.
이아영, '애(愛)03', 27.3x34.8cm(5호), mixed media(순금), 2018.

2017년 3월 화랑미술제 시작을 앞둔 시기에 큐레이터가 개인 사정으로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시점이었다. 동덕여대 윤종구 교수님께 도움을 청해서, 갓 대학을 졸업해 큐레이터 경험이 전무한 이아영 작가와 화랑미술제를 참가하게 되었다.

​이아영 작가가 큐레이터란 직업에 만족할 줄 알았었다. 작년 여름이었다. 아시아프에 참가했으니, 작품 좀 봐달라고 해서, 특별한 기대 없이 문화부 기자와 동대문 DDP 전시장을 방문했다. 수많은 작품 중에 작가의 작품이 가장 눈에 띄었다. 예상대로 작품들이 모두 팔려나갔다. 그리고 큐레이터 일을 하면서, 올해 3월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번 전시는 이아영 작가의 생애 첫 개인전이다. 지난 일 년간 갤러리 일이 끝나자마자, 학교 실기실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밤새 그려 완성한 작품들이다.

작가의 노력의 흔적이자, 땀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인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을 닮았다. 인물의 표정은 그리는 순간의 감정의 표현이다. 발그레해진 볼과 코는 작품의 특징이다. 사랑으로 가득 차 붉게 물들여진 얼굴이란다.

​작가가 꿈꾸는 진정한 사랑은 연인에 대한 사랑을 넘어선, 모든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이다. 헤어짐을 안고 살아가는 유한한 사람들과의 짧디짧은 인연에 대한 애잔한 감정의 표현이다.

이아영, '애(愛)04', 53x33.4cm(10호), mixed media(순금), 2018.
이아영, '애(愛)04', 53x33.4cm(10호), mixed media(순금), 2018.

작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감정을 얼굴 표정에 담는다.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작가의 여러 가지 감정이 그림 속에 담겨 있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작품은 작가의 일기장이자, 삶의 기록물이다.

어린 시절 유복했지만, 작가 아버지에게 발생한 하나의 사건 때문에 온 가족이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하는 작가의 현실이 작품 속에 은연 중에 배어나 있는 듯하다. 작품에서 묻어나는 작가의 고뇌와 힘든 현실이 관람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부유하게 살다가 힘들게 살고 있는 나의 운명과 흡사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편이 무척 아려온다.

작가는 사랑하는 누군가에 대한 따뜻한 감정을 금빛으로 담는다. 금빛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붉은 볼은 쑥스러운 마음이고, 빠알간 코는 그리움의 표현이며, 붉은 입술은 사랑을 상징한다.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동자는 절제하는 감정이 담긴 듯 보인다.

​작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다. 앞으로도 먼 길을 지금처럼 꾸준히 가야 한다. 이아영 작품의 특징은 예쁘게 그리려는 마음보다는 그냥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이아영, '흐트러지다', 33.4x45.5cm(8호), mixed media, 2018.
이아영, '흐트러지다', 33.4x45.5cm(8호), mixed media, 2018.

작품 속에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어떤 매력이 있다. 그래서 계속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관람객의 마음을 애절하게 두드리는 작품 속 인물이 다음 전시에서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작가는 말한다. 태어나 존재하게 되고, 무엇으로 생을 살아내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흔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 무엇이라 함은 사랑(愛)이며, 사랑과 함께 수반하는 울음(哀)을 담아내려 합니다. 사랑으로 가득 차 울음으로 붉게 물들여진 얼굴. 울음에 기반을 두어, 사랑에 수반하는 많은 감정을 앞으로 계속 담아 가려 합니다. 물이 젖어 마르고도 그 자리에 얼룩을 남기듯, 이 울음이 당신의 마음을 적시고, 고요히 하나의 얼룩으로 남겨지기를. 그렇게 깊이 고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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