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 자기부상 모듈을 사용한 ‘EIN STEIN, 생각의 생각' 展 개최
류정민, 자기부상 모듈을 사용한 ‘EIN STEIN, 생각의 생각' 展 개최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8.09.1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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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갤러리 압생트에서 9월 7일부터 10월 5일까지 류정민(39) 작가의 개인전 ‘EIN STEIN  생각의 생각’이 열린다.

류정민, 'EIN STEIN F02-기웃거리는 상상, 머뭇거리는상상'. 스티로폼, 자석, 문, 철, 피그먼트 프린트, 입체 포토 콜라주,가변설치, 2016.
류정민, 'EIN STEIN F02-기웃거리는 상상, 머뭇거리는상상'. 스티로폼, 자석, 문, 철, 피그먼트 프린트, 입체 포토 콜라주,가변설치, 2016.

육중한 기차가 바퀴로 철로 위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면에서 뜬 채 고속으로 달리는 자기부상열차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으므로 중력에 대항하여 안정된 위치 내에 물리적인 접촉점이나 다른 지지대 없이 자기장만으로 물체를 띄우는 공중부양(levitation)이 결코 낯선 것은 아니다. 

류정민 작가는 이 원리를 착안해 자기부상 모듈을 사용해 돌을 공중에 띄워 회전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허공에서 돌고 있는 이 물체는 자연에 실재하는 돌이 아니라 만들어진 돌, 즉 위장된(camouflaged) 돌이자 모조된(simulated) 돌이다.  

류정민이 스티로폼으로 돌의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돌을 촬영한 사진을 오려 붙이는 집요하게 지독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진짜 같은 가짜’, 즉 실재의 그림자(simulacrum)이다. 

사진 작업으로 출발한 작가는 수십 장, 수천 장에 이르는 사진을 합성해 낯설면서도 아름다운 공간을 창출한 바 있다. 반복적인 병렬, 합성한 사진은 현실 너머에 있는 풍경일 뿐만 아니라 작가의 심리에 의해 그려진 지형도이기도 하다.

류정민, 'EIN STEIN 생각의 생각 P21'.스티로폼, 자석, 피그먼트 프린트, 철판에 아크릴 페인트, 입체 포토 콜라주, 27×27cm.
류정민, 'EIN STEIN 생각의 생각 P21'.스티로폼, 자석, 피그먼트 프린트, 철판에 아크릴 페인트, 입체 포토 콜라주, 27×27cm.

류 작가는 우리의 지각을 교란하며 사진의 평면 공간 속에 기이하면서 몽환적인 세계를 담던 그는 5년간의 실험을 거쳐 2016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코리아 투모로우’에서 처음으로 사진 조각을 발표했다. 

‘EIN STEIN-기웃거리는 상상, 머뭇거리는 상상’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일련의 설치 작업은 스치로폼으로 만든 돌이 벽이나 문, 혹은 천장에 매달려 있거나 사각뿔 위에 위태롭게 놓아둔 것이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과 돌의 기이한 만남은 작가가 걸어놓은 마술과도 같은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그는 왜 돌에 주목했을까. 독일에서 유학했던 작가는 상대성이론으로 잘 알려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이름이 독일어로 하나의(eins) 돌(stein)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무거운 돌이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 자유롭게 공간을 점유하는 작품을 착안했다고 한다. 

또한 하나의 돌은 하나의 생각을 상징한다. 각각의 돌들이 지닌 형태, 색깔, 크기는 생각의 차이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생각의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한편, 스티로폼으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돌을 촬영한 사진을 잘라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섬세하게 붙이는 노동의 과정은 현상학자인 후설(Edmund Husserl)이 자연적인 태도를 괄호 안에 넣어 멈추도록 함으로써 순수한 체험, 순수한 의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 판단중지(epoché)와도 같은 몰입의 과정이자 또한 순수한 유희의 과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비정형이면서도 부드러운 형태의 자갈은 서로 다르지만 닿고 부딪치면서 형성된 것이란 점에서 우리의 생각 또한 마모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듬어진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돌은 생각을 시각화한 것이자 생각의 자유로움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장애물에 부딪치면 방향을 바꾸는 강아지의 놀이기구나 자동청소기에서 착안해 돌이 서로 겹쳐진 의자 사이를 굴러다니도록 만든 작업 또한 생각의 자유로운 운동을 떠올리게만들며, 자석을 이용해 쌓은 돌탑은 게놈(genome)의 염기서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류정민, 'EIN STEIN 생각의 생각 P16'. 스티로폼, 자석, 피그먼트 프린트, 철판에 아크릴 페인트, 입체 포토 콜라주, 27×27cm.
류정민, 'EIN STEIN 생각의 생각 P16'. 스티로폼, 자석, 피그먼트 프린트, 철판에 아크릴 페인트, 입체 포토 콜라주, 27×27cm.

그는 현대사회에서 미디어가 마치 융단폭격처럼 제공하는 엄청난 양의 정치, 경제, 사회문제 등의 정보홍수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보다 가볍게, 그럼으로써 자유롭게 시각화하기 위해 돌로 표상된 생각을 공중에 매달거나 벽면에 부착했다. 

중력의 위반, 그것은 생각의 자유로움이 시공을 뛰어넘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 중심에 아인슈타인이 있었고, 그가 했던 ‘사고실험’이 류정민의 작품에서는 공간 속으로 확장된 생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돌을 공중에 띄우거나 벽면에 부착한다는 발상은 자유로운 생각이 작동할 때 가능하다. 류작가의 작업은 그 발상의 자유로움이 제공하는 시각적 즐거움이 지각을 확장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자의 돌(lapis philosophorum)’ 은 전설이나 연금술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르게 생각하기, 그것이야말로 현자의 돌을 현실에 존재하게 만드는 가능성이자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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