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에디터 나하나의 월드리포트] 佛 '롱샹 성당'을 통해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를 보다
[아트에디터 나하나의 월드리포트] 佛 '롱샹 성당'을 통해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를 보다
  • 나하나 기자
  • 승인 2018.09.15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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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에디터 나하나] 프랑스와 스위스의 경계지역인 꽁떼 지방에 롱샹(Ronchamp)이라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 있다.

'롱샹 성당 전경'.(사진=나하나 에디터)
'롱샹 성당 전경'.(사진=나하나 에디터)

그곳에 가면,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이자 바로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엄청난 건축물을 만날 수 있는데, 이가 바로 롱샹 성당(Notre Dame Du Haut, Ronchamp)이다.
 
롱샹 성당(Notre Dame Du Haut, Ronchamp)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대담한 구성을 보여주며, 전 세계의 건축가들에게 충격을 준 현대 건축의 걸작이다.

로마네스크 풍의 엄청난 두께의 벽(1m~3m)은 사다리꼴의 형태를 곡선화 한 느낌이며, 속을 비운 채 철근과 콘크리트를 이용해 만들었으며, 지붕은 완전한 곡면 형태로 마치 거대한 배의 아랫 부분을 건축된 벽 위에 살포시 얹은 느낌이다.

형태는 두 개의 쉘(Shell) 모양인데, 실제로 르코르뷔지에가 조개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뒤쪽부터 시작해 앞쪽으로 모이는 뾰족한 끝부분이 그 정점이라 할 수 있겠다.

'롱샹 성당'.(사진=나하나 에디터)
'롱샹 성당'.(사진=나하나 에디터)

또, 성당의 뒷부분에 수직적인 형태의 세 개의 탑이 있는데, 이 탑들은 내부에서 각자의 독립된 기도실의 역할을 하며, 이는 건축을 함에 있어 외부와 내부의 형태를 정확히 일치시켰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또 지붕과 벽이 지니는 곡선의 형태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데, 밖에서 느끼는 곡선의 느낌과 안에서 느끼는 느낌이 연결되어 정확하게 일치한다.
 
기능면에서는 내부의 예배 공간은 200명의 인원을 수용하는데 비해, 대신 야외 예배당을 따로 만들어 수천 명의 순례자들을 수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해마다 두 번씩 순례자들의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종교 공간으로써의 독립성과 행사 공간으로써의 실용성까지 두루 갖춘 건축물이라는 데에서 경이로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롱샹 성당(Notre Dame Du Haut, Ronchamp)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빛’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당 내부에는 촛불 이외의 어떤 조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전 세계 수많은 순례자들을 유혹할 만큼의 깊이 있는 은은함과 절대적인 숭고함이 존재한다.

'롱샹 성당 내부'.(사진=나하나 에디터)
'롱샹 성당 내부'.(사진=나하나 에디터)

이는 철저하게 자연광을 이용한 덕분인데, 벽과 지붕이 맞닿는 부분을 살짝 띄워 수평으로 가느다란 빛이 들어오게 설계 되었으며, 두꺼운 남쪽 벽면에는 아주 작은 사다리꼴의 스테인드글래스 창을 많이 만들어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내부로 확산되어 전체적으로 빛으로 신비감과 충만함이 가득한 공간으로 연출되는 것이다.

“나는 건축물의 다른 부분들의 스케일을 짐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아주 작은 크기의 창부터 압도적으로 거대한 크기의 지붕 등 의도적인 연출을 통해 롱샹성당을 통해 긴장감을 선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축물은 또 완벽하리만큼 자연스럽다. 이는 바로 그가 인체의 스케일과 황금비율에도 적용되는 모듈러 이론을 기초하였기 때문인데, 바로 이 건축물이 정확하게 구성된 비례를 갖게 된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완성물 뒤에는 어려움이 존재하듯 이 완벽한 건축물에도 어려움은 있었다. 세상을 떠나기 10년 전에 완공된 롱샹 성당(Notre Dame Du Haut, Ronchamp)은 현재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철학이 녹아든 세기의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으나, 당시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롱샹 성당 외경'.(사진=나하나 에디터)
'롱샹 성당 외경'.(사진=나하나 에디터)

낮은 언덕위에 평면적이고 도시적인 입체물이라니,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일이었음이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건축가들 역시 혹평과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결국 롱샹성당은 무려 3년의 반대라는 우여곡절 끝에 1953년에 건설이 시작됐다.

물론 건설이 시작된 이후에도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라거나, 교회의 차고라는 등의 모욕적인 비난들은 계속 되었으며, 이 혁신적인 건축물이 들어서던 해인 1955년, 전 세계의 건축가들을 큰 충격에 빠지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건설 당시, 그들의 눈으로는 롱샹 성당(Notre Dame Du Haut, Ronchamp)에서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선도해 왔던 이념들은 찾아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능주의와는 상관없는 비이성적인 건축물처럼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롱샹 성당 외경'.(사진=나하나 에디터)
'롱샹 성당 외경'.(사진=나하나 에디터)

그러나 롱샹 성당(Notre Dame Du Haut, Ronchamp)은 현대종교건축양식에 새로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종교 건축물의 본질을 제대로 살려냈다. 또, 기능성과 건축디자인의 미적인 부분까지 완벽하게 살려낸 위대한 건축물인 것이다.

지금도 전 세계의 건축학도들과 순례자들은 롱샹성당을 보기 위해, 매년 수천만 명씩 이 마을에 모여들며, 이 건축물은 시대와 세기를 뛰어넘은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1965년 77세라는 나이에 심장발작으로 사망했으나, 프랑스에서는 그의 장례를 루브르궁의 안마당에서 치러줬으며, 실제로 그의 죽음은 프랑스 문화와 정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롱샹 성당 외경'.(사진=나하나 에디터)
'롱샹 성당 외경'.(사진=나하나 에디터)

또 그가 사망한 두 달 뒤인 1965년 10월, 프랑스에서는 롱샹성당을 보호 건물로 지정했다고 하니 그가 전 세계에 미친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능히 짐작이 된다.

신앙도 없었고, 신자도 아닌 이상주의적 건축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였기에, 성직자의 상식을 뛰어넘어 자유로운 상상과 예술, 디자인의 미적 유희까지 허용하였고, 현대종교건축양식의 선구자라 불러도 무방하리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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