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아트스페이스 H] 이번 전시 이야기는 2016년 12월 추운 겨울 자선 전시부터 시작된다. 전시에 참여했던 친한 미대 교수님이 제자인 여자 작가 전시를 부탁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작가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작품 이미지를 보았다. 이미지 상으로만 보았을 때, 일정한 문양으로 이루어진 그림이었다.

문양류의 그림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림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전시를 하기로 결정했다. 인연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서, 전시도 인연이나 운명으로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아무래도 불교를 공부했어서 인 듯하다.
10월 하순 전시를 앞둔 몇 달 전, 작가는 갤러리에 인사를 왔다. 갤러리에서 걸어서 불과 몇 분 거리에 작업실을 얻었다 했다. 전시 제목을 물어봤다. 비욘드 만다라란다.
제목이 만다라 너머? 순간 움찔했다. 런던대 박사 논문이 인도 요가 밀교 경전인 일체여래 진실섭경이라는 경전의 분석이었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경전에는 28개의 만다라 의례가 기술되어 있다. 만다라를 지겹게 공부했어서 이제는 만다라가 싫어졌는데, 전시 주제가 만다라라는 말에 이것도 인연이구나 생각했다.
만다라는 무엇일까? 만다라의 어원적 의미는 동그란 원이다. 만다라는 힌두교와 불교에 모두 존재한다. 만다라는 눈에 보이는 우주의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만다라(maṇḑala)는 보디만다(bodhi-maṇḑa), 즉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 깨달은 장소를 지칭한다는 설도 있다.

만다라의 기본 형태는 원과 정사각형이 결합되어, 정교하고 복잡하게 그려져 있다. 삼각형 형태의 만다라나 모래에 그린 샌드 만다라처럼, 다양한 형태의 만다라가 존재한다. 불교 만다라는 깨달음의 세계와 불보살의 세계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현재는 티베트와 네팔에서 불교 만다라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밀교에서 만다라는 고도로 숙련된 화공이 경전에 의지해서 정교하고 정확하게 그려져야 한다. 선 하나의 실수도 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경전에는 쓰여있다. 만다라를 사용해서 종교의식을 진행하고, 의식이 끝나면 만다라를 불태운다.
신들의 거주지인 만다라 속에 그려진 수많은 신들 중에 선택된 한 명의 신이 나의 신이 되고, 종교의식을 통해서 신과 합일을 하여 신의 초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는 황당무계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작가한테 질문을 던졌다. 불교 신자도 아닌 아티스트가 굳이 만다라는 왜 그리냐고? 인연으로 만난 스님한테서 불화를 배워서, 사 년 동안 불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다라 그림을 접하게 되면서, 만다라에서 모티브를 차용하여, 종교 색채가 배제된 만다라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그림을 보면 공통적인 패턴이 발견된다. 작품 속에는 크고 작은 원들이 다양하게 때로는 규칙적으로, 때로는 불규칙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 다른 그림에는 작은 잎사귀 문양처럼 보이는 타원형의 도안들이 수 백 개쯤 그려져 있다. 이 문양은 무엇을 상징하나요? 이것은 빛을 상징한답니다.
작품의 시작은 정 중앙의 작은 원 또는 타원형으로부터 시작된다. 원의 내부는 비어있는 공(空)을 상징하기도, 무념무상의 상태를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다. 원들은 규칙적 불규칙적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다양한 색채들로 이루어진 무수한 원들을 보면서, 신비스럽고 광활한 우주의 세계를 만난다.
한편으로는 끝없이 작은 세계로 들어가는 인간들의 내면세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광활한 우주와 신비스러운 인간의 내면을 만다라라는 깨달음의 세계에서, 접합점을 찾게 만들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고 추측한다.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묘사하는 대상물을 벗어나, 작가는 뭔가 특별한 영적인 세계를 그림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특별한 세계가 바로 우리 내부에도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싶어 하는 듯 느껴졌다. 우주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인간에 내재하는 에너지의 파동을 느끼게 하는 것이란다.
만다라는 요가 명상의 도구이다. 만다라를 통해서 끝없는 우주가 우리 속에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규칙적이고 정형화된 만다라의 세계를 넘어서, 규칙과 불규칙, 정형과 비정형의 이분법적인 구분 자체를 초월하는 것이 이번 전시에 작가의 숨겨진 의도인 듯하다.
지친 일상으로 인하여 밤하늘의 별도 제대로 못 보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여유를 잠시나마 돌아보게 하는 것이 전시의 목적이다. 만다라의 세계가 관람자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