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3' 오누리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3' 오누리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8.10.19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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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불안 심리를 예술로 치유하려는 오누리 작가의 진실과 거짓 사이"

​불안은 위험 상황에 대한 반응이며, 자아가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또는 그 상황으로부터 물러나기 위해 어떤 일을 함으로써 미연에 방지된다. 불안이 생겨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증상이 형성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오누리 작가 성신조각회 올해의 작사 전시 모습'.(사진=artinfo DB.)
'오누리 작가 성신조각회 올해의 작사 전시 모습'.(사진=artinfo DB.)

인간은 자유 의지를 방해하는 불행이라는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전시장에는 몸의 대부분을 천으로 뒤집어쓴 동일한 형태의 인체 조각상들이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 관람자를 위해 도열해 있는 모습이 군인들의 열병식처럼 보인다. 진실과 거짓 사이라는 제목이 붙은 오누리 작가의 조각 군상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세워진 판초 우의를 입고 있는 조각상들과도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쟁에 참가 한 병사들의 심리 또한 공포감과 불안감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라와 몸을 관통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불안, 걱정, 근심, 고통으로 가득 찬 파도 위를 혼자서 항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새삼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장애물이 일차적 원인이라면, 불안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이차적 부산물이다.

​2017년 4월, 석사 청구전 전시를 관람하고, 오누리 작가의 혹 이야기라는 짤막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자신이 실제로 겪은 육체적 경험과 거기서 파생된 불안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았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마다 생겼다 사라지는 혹에 대한 트라우마를 작업으로 치유하고,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작가에게 혹의 의미는 인간의 내적인 욕망의 외적인 분출이다.

​석사 졸업 후,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2018년 7월 전시에서는 작품이 한층 세련되게 업그레이드되었다. 일 년 전 전시에서는 감추고 싶은 인체에 붙은 혹을 과감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보여주었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피하고 싶은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함으로서, 긴장감 내지는 불편함을 유도한 것이다. 자신의 불안을 작품화 함으로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스스로 치유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을 조형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맞지만, 일반인들이 예술 작품을 통해서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진실의 마주 함보다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만남인 것이다. 이것이 진실과 거짓 사이라는 전시 제목의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일 년 전 전시가 오로지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졌다면, 이번 전시는 감추어진 인간 욕망의 은유적 표현이자, 타인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라는 상반된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 보인다.

​작가는 동일한 형태의 인체 조각을 수십 개 만들었다. 모든 인체는 머리부터 무릎까지 천의 형태를 두르고 있는 모습니다. 천에는 각기 다른 내용의 단어나 문구들이 쓰여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한글 대신 영어, 글자 대신 이모티콘이나 그림, 동일한 백색 대신 각기 다른 컬러였다면 어떠했을까 상상해본다. 예술 작품은 만국 공용어이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는 혹의 형태가 추론되지 않지만, 작가는 혹을 천으로 가렸다고 말한다. 천의 안쪽 면에 혹이 존재한다는 것은 진실이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함으로서, 우리의 눈을 속이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한 것은 어쩌면 거짓인 것이다.

'오누리 작가 성신조각회 올해의 작가 전시 모습'.(사진=artinfo DB.)
'오누리 작가 성신조각회 올해의 작가 전시 모습'.(사진=artinfo DB.)

작품에 쓰인 글귀들은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매일 기다려요, 많이 웃을게요, 같이 걸어가요, 잊어버려요,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 네 꿈을 따라가, 무너지지 마, 안아줄게,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수고했어 오늘도" 등등. 작가가 자신에게 다짐하는 문구일 수도 있고, 불안이나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해주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전통적 가족 공동체 문화는 어느새 혼밥과 혼술로 대변되는 개인주의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결혼과 육아에 관한 관념도 사라져 가고 있다. 사회구조가 혼자서 살아가도록 강요하고 있는 듯 보인다. 군중 속에 고독을 느낀다. 외로움과 고독은 불안을 가중시킨다.

​군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시각적으로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한다. 얼굴을 천에 가린 모습은 관람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FRP 재료로 만든 천의 형태도 작품과 일체 되어 있지만, 천을 들어 올려 보고 싶은 궁금증을 묘하게 자극한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것 같다.

​작가에게 예술이란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나 편견을 잊게 하고, 예술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술 작품을 통해서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관람자 스스로 작품 해석을 하도록 한 점이다. 메시지의 드러냄이 일차원적 예술이라면, 메시지의 감춤이 이차원적 예술인 것이다.

​작가에게 묻는다. 작품이 한층 세련되어지고, 추한 것들이 안 보이는데, 이제 더 이상 혹이라는 주제는 버린 것인가? 작가는 답한다. 천 안에 혹은 그대로 있답니다. 우리 눈에 안 보일 따름입니다. 작가의 설명 없이, 어떤 관람자도 혹의 존재 유무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의 메시지가 올곧게 전달되지 않더라도, 관람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면, 작가 의도와 상관없이 좋은 예술 작품인 것은 아닐까? 작품은 작가가 만들지만, 해석은 관람자의 몫인 것이다. 오누리 작가의 예술적 진화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미래가 무척 기대되는 작가다. 쉼 없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작가에게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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