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미술에서 새롭게 전개된 미니멀 경향 조명, 서울대학교미술관 '미니멀 변주'展
동시대 미술에서 새롭게 전개된 미니멀 경향 조명, 서울대학교미술관 '미니멀 변주'展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8.11.0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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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서울대학교 미술관(관장 윤동천)은 올해로 네 번째 기획전인 ‘미니멀 변주(Minimal Variation)'를 개최한다. 

이정섭, '탑'. 520 x 40 x 90cm, 콘크리트, 철근, 2018. (사진=서울대학교 미술관)
이정섭, '탑'. 520 x 40 x 90cm, 콘크리트, 철근, 2018. (사진=서울대학교 미술관)

'미니멀 변주'는 200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 중 조형요소를 최소화해 단순하고 절제된 표현을 특성으로 하는 작업들을 조명한 전시로, 간결하고 엄정한 형식이 특징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는 ‘순수 조형성의 추구’라는 미술의 오래된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 미술과 현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하고자 한다. 또한, 동시대 미술에서 새롭게 전개된 미니멀 경향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의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장에는 이정섭, 장재철, 정은주, 편대식, 오완석, 김이수, 최고은, 박남사, 최은혜, 이은우, 장준석 작가 등 총 11명의 작품을 통해 미니멀리즘의 풍부한 예술적 유산으로부터 현재의 다양성이 어떤 방식으로 생겨났는지, 오늘날의 작업이 보여주는 미술 형식의 새로운 가능성과 현재의 사회상은 무엇인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정섭(47)작가는 한옥 집짓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사개맞춤’(못을 사용하지 않고 기둥과 보를 유격 없이 정확하게 맞물리도록 결합하는 기법)을 적용한 이정섭의 가구들은 마치 한옥의 뼈대만을 남긴 듯 보인다.

또한 단면의 거친 질감과 장단(長短)의 강조를 통한 비례의 강조는 가구를 본다기보다는 가구의 재료인 원목을 마주하는 것 갈은 느낌을 선사한다. 이러한 이정섭 가구의 특징은 전통가구 제작에 대한 작가의 미니멀한 접근법을 유추하게 만든다. 

이은우, ‘덩어리 연작’. MDF, 우레탄 페인트, 크기, 2015.
이은우, ‘덩어리 연작’. MDF, 우레탄 페인트, 크기, 2015.

작가 장재철(45)의 작업은 미니멀리즘의 인간적 필치가 제거된 조형성과 연결되는 지점을 가지고 있지만, 반면에 작가의 손을 거쳐 완성되는 장인적 제작과정을 따르고 있다.

장재철의 작업 프로세스는 수공예적인 방법을 통한 인공적 조형미의 추구, 혹은 일정한 단위(module)의 기계적 반복을 통해 환기되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이라는 역설적인 감상을 불러일으키며, 창작자의 열정이 모더니즘 형식의 대립과 화해를 통해 변증법적 미의식을 탐색하는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정은주(54)작가의 입체는 회화와 조각의 모호한 경계 영역 어딘가에 있다. 비스듬한 상자 2개가 서로 견고하게 결합되어 단일한 오브제의 형태로 귀결된 그의 작업은 수평, 수직의 직각선과 45도 사선을 조형성 표현을 위한 필수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정작가의 치밀한 계산과 인고의 마감 작업을 통해 서로 결합되어 부조의 방식으로 깔끔하게 벽에 설치된다.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재현하고자 하는 태도를 배제한 채,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를 기반에 둔 미니멀리즘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 

장준석, '투명한 숲(세부)'. 캔버스에 폴리에틸렌, 116x86cm, 2017.
장준석, '투명한 숲(세부)'. 캔버스에 폴리에틸렌, 116x86cm, 2017.

작가 편대식(34)은 주로 여러 번 배접된 한지 위에 연필로 기하학적 문양을 남기는 작업을 해왔다. 마치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82)의 작업을 연상시키지만, 스텔라가 환영을 없애기 위해 대상을 기하학적 문양으로 바꾸어 버린 것과 다르게 편대식의 작업 안에는 무수한 환영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완벽하게 칠해지지 못한 겹쳐진 연필선 사이에서 보이는 희끗한 점들은 작가의 행위를 드러나게 하고 있다. 

오완석(35)작가의 ’중요한 생각을 하는 네모’는 전시장 바닥에 네모 모양의 선으로 공간을 만들어 그 성격을 규정짓고 관람객이 공간의 의미를 구성하도록 했다. 

이것은 결국 관람객이 마주한 전시장 바닥에 그어진 선 외에는 어떠한 시각적 단서가 없는 텅 빈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그가 제시한 공간에 내포된 0은 새로운 가능성의 모태로서 자리하게 된다. 

이은우, '빨간 책장'. 나무, 우레탄 페인트, 186x30.5x206cm, 2016.
이은우, '빨간 책장'. 나무, 우레탄 페인트, 186x30.5x206cm, 2016.

작가 김이수(44)의 작품은 탈회화적 추상을 떠올리게 한다. 물감(테이프)의 중첩은 모더니즘 작가들이 추구했던 환영이 소거된 회화처럼 화면 속 색상과 물성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과 강박적 반복 표현으로 인해 드러나는 현상이다.

색면의 긴 단위가 겹쳐져 만들어진 김이수의 회화는 색면 사이의 분명한 경계선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보았을 때 뭉개지고 흐릿한 하나의 화면으로 보인다. 재현된 이미지는 사라지고 매끈한 표면의 물질감만 두드러진다. 

박남사(51)작가는 1m 남짓한 사각 액자 안에 자리한 검은 '사각형', 혹은 '원' 이미지는 불필요한 장식이 배제된 깔끔한 조형의 전형이다. 작가는 기하 추상미술을 대표한다고 할 만한 이러한 미니멀 이미지를 2010년대에 사진 작업으로 선보인다.

따라서 '말레비치'가 절대주의 회화를 발표한 지 한 세기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한 때 혁신적이었던 미니멀 형식의 내적 논리뿐만 아니라 이러한 형식에 부여되어 온 의미와 사회적 반응에 돌아보도록 이끈다. 

박남사, '46개국의 하늘'. 잉크젯 프린트, 200x216cm, 2016.
박남사, '46개국의 하늘'. 잉크젯 프린트, 200x216cm, 2016.

작가 최고은(33)의 전시 작품 ‘화이트 홈 월’은 폐기된 에어컨 측면을 모아 전시장 천장에 매단 채로 일종의 가벽처럼 제시된다. 성인 남성의 키 높이로 띄워져 있는 벽면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전시 공간과 작업을 낯설게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한편, 에어컨 옆면이 가지는 태생적 일률성은 복제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베네치안 화이트’, ‘스노우 화이트’, ‘옥스퍼드 화이트’ 등과 같이 당시 소비자의 기호가 반영된 이름으로 불렸을 색으로 칠해진 외피는 화이트 큐브의 흰색 벽과 미묘한 변주를 만들어낸다. 

어스름히 어두운 공간에 설치된 최은혜(35)작가의 라이팅 작업은 정방(正方)의 입체, 즉 정육면체 상자를 기본 모듈(module)로 하고 있다. 그의 작업 결과물들은 간결한 형태와 절제된 본질을 추구하고자 했던 미니멀리즘 영역으로 분류되는 작품들과 어찌 보면 외견상 그다지 상이해 보이지 않는다.

최은혜는 과거의 그들이 모든 것을 덜어내고 물성 그 자체로 나아가고자 했던 의식과는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명확함과 단순함, 그리고 산업적 재료를 사용해 물질적인 측면을 배제하는 방식은 작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언어를 담아내기 위해 선택된 일종의 재료 혹은 방법일 뿐이다. 

최은혜, 'Light Box'. 플랙시글라스, 시트지, LED, 15x15x15cm, 25x25x25cm, 30x30x30cm, 40x40x40cm, 2012.
최은혜, 'Light Box'. 플랙시글라스, 시트지, LED, 15x15x15cm, 25x25x25cm, 30x30x30cm, 40x40x40cm, 2012.

이은우(36)작가는 작품제작 과정에서 합판의 한 쪽 면만을 가공, 도색하거나, 재료의 매끈한 이음새 부분을 의도적으로 나사못으로 노출하고, 완성 후에도 후속조치로 가구 밑면에 걸레받이용 라인을 덧칠하는 등, 자신의 작품에 대한 ‘위악적인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이는 예술과 실용제품의 경계(실제로 몇몇 작품들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일상용품으로 사용되고 있다)를 탐험하며, 그 경계가 무화되는 지점을 의식적으로 만들어내고, 이를 관람객에게 노출함으로써 예술의 의미에 대해 재고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작가 장준석(48)의 작품은 언뜻 보았을 때 단색의 미니멀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품이 캔버스 위에 작은 플라스틱 조각으로 '숲'이라는 낱말을 무수히 덮어놓은 일종의 부조임을 파악하게 된다.

전시전경, 좌측 이은우, 우측 장준석.(사진=권오열)
전시전경, 좌측 이은우, 우측 장준석.(사진=권오열)

미니멀 회화가 가장 기본적인 조형언어를 사용하여 추상적이고 단순한 미적 결과물을 도출한다면, 장준석은 간결한 ‘문자’를 작품의 '최소의 조형' 요소로 삼아 시각적으로 기존의 미니멀 아트와 동일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전시는 서울대학교 미술관 전관에서 11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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