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부터 문방사우’....일상이 된 19세기 미술품
‘추사부터 문방사우’....일상이 된 19세기 미술품
  • 왕진오
  • 승인 2017.10.3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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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왕진오 기자] 19세기 조선은 구미열강, 일본, 청나라 등이 조선에서 각축을 벌이며 서서히 위협해 왔고, 내부적으로는 기독교 박해, 쇄국정책, 정치권의 분열 등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이하응, '석란도'.1887.(사진=호림박물관)
이하응, '석란도'.1887.(사진=호림박물관)

이로 인해 영·정조연간(1724∼1800)을 화려한 문예부흥기로 인식하는 것과 달리 19세기 조선은 어지럽고 암울함으로 점철된 시대로 기억되곤 한다. 하지만 이 시기를 단순히 조선시대의 미술 전개의 마지막 쇠퇴기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대내외에서 벌어진 혼란 속에서도 문인화가 지속적으로 유행하는 가운데 그 향유계층은 사대부 본위에서 중인계층으로 오히려 확대됐으며, 민화와 같은 서민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회화장르가 함께 유행했기 때문이다.

간송과 함께 우리 전통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호림박물관이 10월 24일부터 '19세기 미술, 일상이 되다' 특별전을 시작한다. 19세기에 제작된 미술품을 엄선해 소개하는 전시에는 회화, 서예, 도자기, 목공예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총망라된다.

김정희, '서간 - 헌종을 그리워하며'. 1849년 9월 1일.(사진=호림박물관)
김정희, '서간 - 헌종을 그리워하며'. 1849년 9월 1일.(사진=호림박물관)

서예 분야에서는 추사 김정희(1786∼1856)가 한국 및 중국 역대 명필가들의 개성적인 조형성과 각기 다른 서체의 특징을 모두 종합해 가슴으로 녹여 쓴 ‘추사체’를 완성하는 등 한국서예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조선 예원(藝苑)의 마지막 거장인 김정희의 서화는 ‘추사일파(秋史一派)’라 불리는 많은 제자들에 의해 고고하게 전해졌다. 제1전시실에서는 김정희의 작품을 중심으로 19세기에 활동했던 ‘추사서파(秋史書派)’의 고전에 법을 두고 개성 넘치는 글씨로 써내려간 서예·사군자를 관람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김정희가 말한 것처럼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19세기 상공업의 발달과 농업 생산력의 증가는 양반계층의 증가와 중인층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신흥부유층의 등장으로 종래의 신분질서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사회·경제적 성장은 다양한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다.

청계천에 위치한 광통교(廣通橋) 일대에는 미술품을 사고파는 유통이 이루어지는 미술시장이 활성화되어 누구나 글씨나 그림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일상생활에서 애용됐던 공예품에는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장생(長生), 수복자(壽福字), 쌍학천도(雙鶴天桃) 등의 문양이 주로 장식됐다.

'백자청채동채양각장생문병'. 19세기.(사진=호림박물관)
'백자청채동채양각장생문병'. 19세기.(사진=호림박물관)

더불어 중국, 일본과 활발하게 전개된 교역으로 인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장식기법 등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제2전시실에서는 화려함이 깃든 미술품이 삶의 일부로 스며들어 어지러웠던 정치상황과 다르게 활기 넘쳤던 당시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예로부터 글공부를 하는 선비들의 문방(文房)에는 그들이 애지중지하였던 네 명의 벗이 늘 함께 했다.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 불린 이 물건들은 종이, 붓, 벼루, 먹으로 선비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다. 조선시대는 문방사우와 관련된 물건들이 주로 백자로 제작됐다.

문방구(文房具)에는 붓을 꽂아 두거나 걸쳐 놓는 필통(筆筒)과 필가(筆架), 붓을 씻는 물을 담아 두는 필세(筆洗), 종이를 꽂아 두는 지통(紙筒), 먹을 가는 벼루와 벼루에 물을 따르는 데 사용한 연적(硯滴), 먹을 담아 두는 묵호(墨壺) 등이 있다.

'백자무릎연적'. 19세기.(사진=호림박물관)
'백자무릎연적'. 19세기.(사진=호림박물관)

이 가운데에서도 연적과 필통은 주류를 이루었으며 다양한 형태와 다채로운 장식으로 만들어졌다. 연적은 18세기 이전에는 보주형(寶珠形)과 원형(圓形)과 같이 단조로운 형태가 유행하다가 19세기부터는 사각과 팔각 등을 비롯해 무릎·또아리·복숭아·잉어·개구리·두꺼비·용·해태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됐다.

장식은 청화(靑畵)와 철화(鐵畵) 이외에도 동화(銅畵)·투각(透刻)·조각(彫刻)·첩화(貼花) 등 다양한 기법을 시도해 화려함을 더했다.

이와 같이 19세기는 신분 질서의 동요와 함께 부유층이 증가해 도자기로 제작한 문방구의 수요가 증가했고, 형태나 장식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경향이 유행하면서 도자미(陶磁美)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대였다. 전시는 2018년 3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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