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고뇌, 100년 후 세상을 변화시키다" 키스 해링 특별전 개최
"10년의 고뇌, 100년 후 세상을 변화시키다" 키스 해링 특별전 개최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8.11.27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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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Art is Life. LiFe is Art.” “예술은 삶, 삶은 곧 예술.”

키스 해링 (Keith Haring, 1958~1990)은 미국의 그래피티(graffiti) 아티스트로 하위문화의 낙서화 된 형식을 빌려 새로운 회화 양식을 창조한 예술가이다.

'DDP에서 열리고 있는 키스 해링 특별전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DDP에서 열리고 있는 키스 해링 특별전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그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레딩에서 태어나, 쿠츠타운(Kutztown)에서 성장했다.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만화 그리는 법을 배우고, ’닥터 수스’와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를 즐겨 보며 그림 그리기에 흥미를 가졌다. 

해링은 15세가 되던 해부터 술과 마약에 빠져 문제아로 전향했다. 하지만 만화에 심취했던 그는 보다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피츠버그에 있는 아트스쿨에 입학한다. 그 이후 해링은 피츠버그 미술공예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펼친후, 1978년 뉴욕으로 이주해 뉴욕 시각예술학교(SVA)에 다녔다.

'DDP에 설치된 키스해링 작품'.(사진=이예진 기자)
'DDP에 설치된 키스해링 작품'.(사진=이예진 기자)

그는 '동물, 텔레비젼, 아기, 천사, 피라미드와 사람' 등을 모두 단순한 선으로 표현했다. 해링의 캔버스는 공공장소였다. 한눈에 봐도 독특하고 간결한 형태의 이미지들 속에는 그가 전달하고자 한 다양한 메세지들이 담겨있다. 어느 누가 봐도 척 알아볼 수 있게 대상을 그려내면서 ‘해링 코드’란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대중들에게 재빠르게 알려졌다.

1980년 '그들만의 예술', 이를 부수는 첫 걸음이 바로 뉴욕 지하철역 빈 검정 광고판 위에 분필로 그린 ‘지하철 드로잉’ 시리즈였다. 경찰과 역무원의 눈을 피해 간결한 선으로 그려낸 ‘빛나는 아기’는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선언하는 ‘모든 이를 위한 예술’의 시작이었다. 매일 약 40점에 달한 작품들을 그려나갔다. 

'DDP에서 열리고 있는 키스 해링 특별전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DDP에서 열리고 있는 키스 해링 특별전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그 당시 유명한 갤러리 딜러 ’토니 샤프라지’는 그의 작업에 매료되어 1982년, 자신이 운영하는 소호 갤러리에서 키스해링의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의 전시회에는 앤디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 솔 르윗 등 그 시대의 거장들도 참석했다. 그가 24살이 되던 이듬해 그의 인기가 일본까지 알려져 전시회에 초청됐다.

해링은 유명세를 타면서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더욱 밀어붙였다. 지하철 역의 드로잉에서 벗어나, 포스터, 음악 앨범의 커버 디자인 등을 통해 대중들로 하여금 더욱 쉽게 자신의 예술을 접하도록 만들었다. 클럽을 통한 다양한 프로젝트도 이때 등장한다. 

앤디 워홀과의 만남은 또 다른 해링 예술의 전환기였다. 두꺼운 선, 만화적인 도상 등 팝아트의 세례를 받았지만, 팝아트와는 또 다른 해링의 작업 세계가 서로 섞이는 기폭제가 됐다. 해링은 새로운 예술생태계를 만들고자 했다. 바로 뉴욕과 도쿄의 ‘팝 숍’이었다. 

그의 첫 조각품은 1985년에 완성됐다. 조각의 형태는 받침대 없이 서 있는 사람 형상으로, 매끈하게 잘 깎인 철 조각에 밝은 색으로 라커 칠을 했다. 시리즈로 제작해 공공장소, 놀이터, 공원 등에 놓아 아이들이 실제로 올라가고 놀 수 있는 놀이터 역활을 했다.

'DDP 키스 해링 특별전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DDP 키스 해링 특별전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1988년, 키스 해링은 병원으로부터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음을 통보 받았다. 이는 그에게 멈춤이 아닌 또다른 시작이었다. 그는 과거의 작업 세계에서 좀 더 확장된 자신의 예술관을 펼치기 시작했다.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새로운 예술, 세상을 향한 보편적 예술을 위한 열정으로 변모했다. ‘탄생, 인생, 죽음’ 등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어린이를 위한 ’파랑과 빨강의 이야기’, 병마와 싸우며 비트 세대의 거장 윌리엄 버로스와 함께 작업한 ‘종말’ 시리즈 등은 해링이 생각하는 우리의 삶과 그 속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전하는 마지막 열정이었다. 

타계하기 이틀 전까지 해링은 붓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그린 그림은 바로 ‘빛나는 아기’였다. 그에게 아기는 불멸, 영생의 아이콘이었다.

“그림 속 아기는 우주로부터 받은 힘으로 수많은 빛 줄기를 뿜어내고, 무한한 에너지를 갖는다. 그래서 모든 위험들을 헤쳐나가며 쉼 없이 온 세상을 기어 다닌다. 해링이 세상을 떠난 이후, 1990년대부터 혼돈의 오늘날까지 빛을 발하는 아기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기쁨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해링은 아기의 모습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려냈던 것이다.”

'DDP 키스 해링 특별전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DDP 키스 해링 특별전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키스 해링'展은 10년간 불꽃처럼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홀연히 세상을 떠난 한 젊은 작가의 연대기다. 19세기 말, 10년의 기간 동안 정신병과 싸우며 자신의 감정과 색채로 예술혼을 불살랐던 빈센트 반 고흐처럼, 키스 해링은 100년 뒤인 20세기 말, 1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에이즈라는 병마와 싸우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퍼뜨렸다.

서울디자인재단(대표이사 최경란)은 11월 24일부터 2019년 3월 17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지하2층 디자인전시관에서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디자인재단과 지엔씨미디어(대표 홍성일)가 공동주최로 진행하며, 키스 해링 재단, 나카무라 키스 해링 컬렉션에서 키스해링 탄생 60주년을 기념한 기획 전시이다.

키스해링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주요 작품 175점을 선별해 8개의 섹션으로 ‘표출의 시작’, ‘모든 이를 위한 스토리텔링’, ‘예술적 환각을 통한 초월’, ‘메시지, 음악을 통한 발언’, ‘해링 코드’, 심볼과 아이콘’, ‘종말’이라는 디스토피아’, ‘원시 에너지와의 조화’, ‘시작의 끝, 그리고 끝의 시작’이라는 부제로 나누어 구성했다.

전시는 그의 작업 초기부터 타계할 때까지의 시간적 흐름과 다양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고,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키스 해링이라는 작가의 인생과 작업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키스 해링, 'Retrospect'.(사진=DDP)
키스 해링, 'Retrospect'.(사진=DDP)

본 전시를 통해 주로 팝아트 작가로만 알려진 키스 해링이 사실은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심오한 예술 세계를 보여주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계 평화를 꿈꾸었고 어린이를 사랑했으며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예술을 설파했다. 

또한 그의 예술을 통해 생명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삶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사랑을 일깨워준다는 점이다. '예술이 삶이었고, 삶이 곧 예술'이었던 키스 해링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라고 할 것이다. 

지난 23일 키스해링전 기자간담회에서 나카무라 키스 해링 미술관 카즈오 나카무라 대표가 컬렉션 과정을 설명했고, 전시 총괄큐레이터 카오루 야나세가 전시장에서 키스 해링의 작품세계에 관해 설명했다.

'11월 23일 DDP에서 열린 키스해링 전 간담회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11월 23일 DDP에서 열린 키스해링 전 간담회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나카무라 대표는 “키스 해링의 작품을 보게 되면 처음엔 웃음 짓게 만들고, 에너지를 느끼게 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도전하게 만든다” 라며 “그의 작품은 스트리트 아트로부터 시작되어 '아트는 모두의 것'이고, 그 아트가 가지고 있는 힘은 무한하고 방대하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최경란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는 “이번 ‘키스 해링'展과 같은 대규모 전시가 DDP에서 개최되어 의미가 깊다”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DDP를 찾는 많은 시민들이 폭넓은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시민의 라이프스타일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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