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5' 송민선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5' 송민선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8.12.0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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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어른들의 일상을 아이의 형상으로 조각하는 송민선 작가의 어른들의 데칼코마니 이야기'

자아는 거울 단계에서 거울상과 동일시함으로써 생겨난 구조이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Jacques Lacan, 1901-1981)

송민선, '기다림'. 120 x 85 x 140cm, FRP, 우레탄페인트, 철, 방부목, 2016.
송민선, '기다림'. 120 x 85 x 140cm, FRP, 우레탄페인트, 철, 방부목, 2016.

2018년 10월 1일부터 JTBC에서 방영하는 뷰티 인사이드라는 드라마가 있다. 여자 주인공은 한 달에 한 번 일주일 동안 마법에 걸려, 매번 다른 남녀노소의 외모로 바뀌어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상상하는 다양한 자아의 모습일 것이다. 거울을 보면서 느끼는 자아, 의식 속에 존재하는 자아, 타인의 시각에서 보이는 자아의 모습들이 모두 다를 것이다. 어느 것이 과연 진정한 자아의 모습일까? 

거울 단계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라깡이 1936년 세계정신분석학회에서 처음으로 제기한 개념이다. 거울 단계는 생후 6개월 내지 18개월 된 유아가 거울에 비친 자기 이미지를 보고 반응하는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유래되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거울과 마주하게 된 어린아이는 거울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자아와 동일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울이라는 타자를 통해서 구성된 자아다. 라깡은 이 단계를 상상계라고 한다. 상상 속 자아인 것이다. 무의식이나 나르시시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음 단계는 언어와 문화로 이루어진 상징계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언어의 질서는 아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언어를 통해 매개되는 다양한 가치 판단들의 체제 속에 갇히게 된다.

​아이는 언어와 문화의 질서에 의해 자신의 삶과 욕망이 조정된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 되는 것이라고 라깡은 주장한다. 언어가 만들어내는 관념을 통해서 인간은 사유하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언어의 질서와 관념이라는 그물 속에 자연스럽게 걸리게 되는 것이다. 

송민선, '여유 한잔1'.
송민선, '여유 한잔1'.

모든 것을 의심해보았지만,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나 자신만큼은 절대적으로 확신했던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철학적 명제를 발표한다. 하지만 라깡은 데카르트의 문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라깡의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된 자아는 타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만들어진 상상적인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아라고 판단하는 것이 실재하지 않는 거울 속 이미지와 같다는 의미가 아닐까?

​거울 단계를 통해서, 자아의 왜곡된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상징 단계에서 언어를 통한 기존의 질서가 주입되어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왜곡되고 주입된 관념을 자신의 자아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릴 적 식습관이 평생을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릴 적 식탁의 반찬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매일 담그는 신선하고 다양한 김치들, 연탄불에 구운 꽁치, 집에서 직접 숙성시킨 청국으로 만든 청국장 그리고 별식으로 김치만두였다.

그래서 지금도 고기나 회보다는 맛있는 김치, 청국장 그리고 만두를 좋아한다. 나의 식습관의 형성 또한 어른들의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식습관 이외에도 어릴 적 형성된 성격이나 습관이 평생 가는 것처럼 생각된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확 달라질 줄 알았다. 외모는 바뀌어 가고 늙어가지만, 마음은 어쩌면 아직도 어린아이인지 모른다. 나라는 자아의 존재는 과연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와의 끝없는 대화를 통해서 나라는 존재를 다듬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송민선 작가의 작품 소재는 어린아이다. 작가가 만든 아이의 모습에서 어른의 얼굴과 모습이 느껴진다. 작가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은 데칼코마니다.

어른들의 데칼코마니 전은 어른들의 세상을 아이의 형상으로 구현하는 것이 작업의 목적이다. 작가 자신은 스스로의 상태를 어른과 아이의 중간이라고 간주한다. 마치 라깡의 철학서를 읽은 것처럼, 작품의 의도가 라깡의 사상과 일견 유사해 보인다.

​술잔을 들고 서있는 두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술 취한 나의 모습이 연상되면서, 실제로 아이들이 흉내 냈다면 마음이 몹시 불편했을 것 같다. 송민선 작가는 세라믹을 재료로 선택한다.

도자 공예가에게 도자는 실용성에 심미성을 결합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조각가에 도자는 여러 가지 재료 중 하나일 뿐이다. 모든 조각은 흙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도자 조각이 전혀 어색한 것은 아니다.

송민선, '생각하는 사람'. 32 x 20 x 37cm, FRP, 우레탄도색, 마천석, 2015.
송민선, '생각하는 사람'. 32 x 20 x 37cm, FRP, 우레탄도색, 마천석, 2015.

일반적으로 조각가들이 인체 조각을 만들 때는 인체에 집중한다. 자코메티 작가처럼 고뇌하는 인간을 빼빼 마른 형태로 표현하기도 하고, 전뢰진 작가처럼 한국인의 따뜻한 얼굴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하지만 송민선 조각의 특징은 인체에 집중했다기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한다. 어른들의 일상적 행위가 주제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표현된 어른들의 일상이다.   

​작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어른의 모습이 느껴지는 아이를 만들게 된다고 한다. 작품으로 표현된 아이는 어린아이에 머물고 싶어 하는 어른의 이야기,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작가 자신의 자아의 모습이기도 하다.

작품의 소재로 아이를 택한 이유는 3세 이하의 유아기를 기억하지 못 하는 것에서 착안하였다고 한다. 성(Gender)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아기는 무성(無性) 또는 중성으로 성별을 표현하지 않았다.

무거워 보일 수 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연극적인 재현을 바탕으로 하여, 아기 형상의 귀여움과 천진난만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이 모습에는 개인을 압박하는 사회적 구조의 힘을 떨쳐내고 행복한 꿈에 젖어있는 유년기의 환상도 내포되어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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