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7, '남지형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7, '남지형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9.01.0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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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H] '순환하는 시간의 세계를 조각으로 보여주는 남지형 작가의 낙화 이야기'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얻을 수 없다." (心中無彩畵, 彩畵中無心, 然不離於心, 有彩畵可得, 화엄경, 야마천궁보살설게품)

'전시 작품과 함께한 남지형 작가'.(사진=artinfo)
'전시 작품과 함께한 남지형 작가'.(사진=artinfo)

오랜만에 불교 경전을 읽다가 발견한 문장이다. 박물관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를 십오 년 하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벽에 걸린 그림이 먼저 눈을 사로잡고, 책을 읽어도 그림이란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직업병인 듯싶다. 위문장은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에 차별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남지형 작가의 작품은 불교철학과 어울린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윤회와 인연이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불교를 공부했지만, 친한 친구들이 대부분 크리스천이라서, 가급적 불교철학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조심스럽다.

신기하게도 요즘 가끔 되새김하는 문장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예수님 말씀이다. 기독교와 불교의 다름을 찾기보다는 같음을 추구하는 종교철학자가 되고자 한다. 

​불교에서 무시무종(無始無終)이란 단어는 불교의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어이다. 없음에서 일자(一者)가 자생하여, 일자로부터 우주 만물이 시작되었다는 성경이나 우파니샤드와 달리, 불교에서 우주 만물은 인연이라는 동력으로 움직이는 세계이다. 인연으로 왔다가 인연 따라가는 이 세계는 시작도 끝도 없다는 이론이다. 뫼비우스의 띠나 출발점과 끝점이 붙어있는 동그란 원으로 비유할 수 있다.  

남지형 작가와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겨울, 성신여대 학부 졸업 전시회였다. 김성복 교수가 재미있는 작품 하나를 자랑하듯이 구경하러 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단풍나무처럼 보이는 커다란 나무 작품이 한 점 서있었다. 나뭇가지는 무수한 성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적은 비용을 들여 만든 아이디어가 통통 튀는 작품이었다. 학부 졸업생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남지형, '낙화'전 전시 모습.
남지형, '낙화'전 전시 모습.

시간이 흘러 2017년 5월, 일호 갤러리에서 성신여대 조각가들의 그룹전이 있었다. 안국역 단골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중, 우리 큐레이터가 연락이 두절된 채 사라져버린 것이다. 온갖 걱정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큐레이터가 술이 약한데도, 작가들이 권하는 술을 거절 못하고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여자 화장실에서 힘들어하는 것을 발견한 남지형 작가가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작은 선행을 베풀어준 작가에게 보답을 하는 차원에서 2018년 12월 중순 석사 청구전을 초대전으로 해주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지은 전시 제목은 낙화(落花)다. 떨어지는 꽃잎에 짧은 인생을 비유한다. 하지만 이 꽃잎이 다시 새로운 꽃을 피운다는 순환론적 사고를 보여주려는 시도이다.

낙화생화(落花生花)로 전시 제목을 바꾸면 좋을 듯하다. 떨어진 꽃들이 거름이 되어, 다시 새로운 꽃을 피운다는 의미로,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작가의 착한 마음씨가 다른 누군가로부터 결실을 맺었으니 말이다.

​이번 초대전에서 작가의 작품은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한 부류는 불을 통해서 얻어진 개체들의 군집으로 형성된 작품이고, 다른 부류는 관람자가 직접 손으로 돌리면서 감상하는 설치 작품이다.

​첫 번째 부류는 1000도의 온도로 가열된 철과 동을 녹여서 무질서하게 떨어지는 작은 조각들을 질서 정연하게 배열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한다.

이러한 기법은 자칫 피부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작업이다. 아름다운 탄생을 위해서, 한 덩어리의 철이 스스로의 몸을 불사르는 것이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뜨거운 불길을 참아내는 고통이 담겨 있는 듯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산고의 고통을 겪는 모든 엄마들의 인내가 오버랩 되기도 한다. 작품의 이미지는 얼굴이나 여성 나신의 일부, 또는 한국의 미를 담은 도자기의 절반을 뒤집어 놓은 형태들이다.

​작품의 제목은 모두 축적하다를 뜻하는 영어 동사인 어큐뮤레이트(accumulate​)다. 인생이란 살아가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 여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경험, 독서와 사색을 통해 쌓인 지혜 등의 축적물일 것이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축적물을 예술 작품으로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두 번째 부류인 설치 작품은 외형이 기다란 원통 모양으로 되어있고, 원통의 안쪽은 낚싯줄로 만든 모래시계 형태이다. 낚싯줄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불규칙한 보석들로 꿰어져 있다. 손잡이를 돌려 원통을 회전시키면, 작은 보석들이 맑은 소리를 내면서 중간지점까지 흘러내린다.

​손잡이를 반복적으로 돌리면, 위와 아래가 서로의 위치를 끊임없이 바꾸면서, 돌고 돈다는 순환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매년 돌아오는 봄은 같지 않지만, 봄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무수히 반복되고 순환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남지형, 서큘레이션 설치 작품.
남지형, 서큘레이션 설치 작품.

작가의 대학 졸업 작품이었던 버드나무 작품에 이어, 두 번째 아이디어 작품을 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티베트 불교도들이 옴마니파드메훔이라는 밀교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단어가 쓰인 동그란 도구를 돌리는 것처럼, 작가의 작품을 계속 돌리고 있노라면, 잡념이 사라지는 듯하다.

​현대의 컬렉터들의 경향은 야구로 비유하자면, 묵직하게 들어오는 직구보다는 가볍게 날아오지만 다양하게 변화하는 변화구를 선호하는 듯 보인다.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베어브릭이나 카우스 작품도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하나의 예이다. 바꾸어 말하면, 예술적 깊이감을 추구하던 시대가 아이디어로 무장한 작품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트와 아트 토이의 경계도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작가는 나이가 어려서 심오한 철학이나 메시지를 작품에 의도적으로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고난 예술적 감각과 아이디어가 있는 듯하다.

표현의 방식은 아직 서툴지만, 표현하려고 하는 의도는 제대로 전달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작가의 내적 축적물을 각자의 방식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남지형 작가의 세 번째 아이디어 작품은 언제쯤 나올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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