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조각 1세대 엄태정 "작품은 치유에 대한 염원과 통합"
추상 조각 1세대 엄태정 "작품은 치유에 대한 염원과 통합"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9.01.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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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엄태정(81)의 개인전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 타이틀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과 천안에서 동시 개최한다.

엄태정, '고요한 벽체와 나'. aluminum, steel, 300x300x200(h)cm, 2018.(사진=아라리오갤러리)
엄태정, '고요한 벽체와 나'. aluminum, steel, 300x300x200(h)cm, 2018.(사진=아라리오갤러리)

이번 개인전에서는 엄 작가의 2017~2018년 제작된 대규모 알루미늄 신작들과 지난 50여 년간 추상 조각가로서 작가가 천착해 온 다양한 금속 조각, 그리고 평면까지 40여 점을 선별해 소개한다.

엄태정 작가는 서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대 초반 철의 물질성에 매료된 이후 지금까지도 금속 조각을 고수하며 재료와 물질을 탐구해오고 있다. 

그가 미술계에 주목 받기 시작한 시기는 1967년 대표적 철 조각 ‘절규’로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다. 한편, 1970년대에는 재료 내외부의 상반된 색과 질감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구리 조각들을 발표했다. 

1980~90년대에는 ‘천지인’ 연작과 같이 수직 구조가 강화된 구리 조각들의 추상적 형태 안에 하늘, 땅, 인간과 같은 동양 사상을, 1990년대 ‘청동-기-시대’ 연작에는 우리나라 전통 목가구나 대들보 등의 형상들을 반영했다. 

'2000년 9월 성곡미술관 전시 중 작품과 함께한 엄태정 작가'.(사진=artinfo DB.)
'2000년 9월 성곡미술관 전시 중 작품과 함께한 엄태정 작가'.(사진=artinfo DB.)

2000년대부터 작가는 알루미늄 판과 철 프레임을 주재료로 조형성에 더욱 집중한 작품들을 발표했는데, 수직과 수평, 면과 선의 조형성과 은빛, 검정의 색채 조화를 통해 음과 양, 시간과 공간 등 서로 다른 요소들 간의 공존과 어울림을 이야기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50여 년을 아우르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하기 위해 천안에 조각 작품들을, 서울 삼청에 평면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나누어 배치하고, 이들간의 긴밀한 관계성을 조명하고자 했다. 

천안 4층 전시장에서는 ‘기-69-1’(1969), ‘청동-기-시대’(1997) 연작과 같이 철과 구리 등을 이용해 1969년부터 2010년 사이 제작된 주요 작품들이 전시되며, 3층 전시장에서는 작가가 2000년대 이후 천착해온, 알루미늄 대형 신작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알루미늄은 중성적인 재료이자 물질로서, 작가가 작업을 통해 다다르고자 하는 통합의 세계, 즉 만다라(Mandala)에 맞닿아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4계절을 나타내는 이 네 개의 작품들은 전시장을 모든 계절을 품은 하나의 조각 정원으로 변모시킨다. 

엄태정, '기-69-1'. steel, 105x200x135(h)cm, 1969.
엄태정, '기-69-1'. steel, 105x200x135(h)cm, 1969.

‘타자(낯선 자)로서의 벽체와 나’와의 관계를 상정하고 있는 ‘고요한 벽체와 나’(2018)는 정갈하게 연마된 알루미늄 패널의 은빛 면, 사각 철 기둥의 검정색 선, 즉 서로 다른 것들이 결합된 구조를 통해 타자와 내가 공존하는 시공간을 이야기한다. 

신작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2018)는 서 있는 두 장의 대칭된 알루미늄 패널을 검은 선형 철 파이프가 붙들고 있는 작품으로, 이 역시 소외된 낯선 자를 포용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을 보여준다.

그 외 ‘어느 평화로운 공간’(2018), ‘엄숙한 장소’(2018)까지, 주변과 소통하는 엄태정의 조각들은 관람객들을 작가가 마련해놓은 시공간 속으로 끌어들이며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다. 

서울 삼청에서는 잉크 페인팅 ‘틈’(2000-2002) 연작은 문자나 사람의 손짓과 몸짓을 연상시키는 유쾌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흰 종이 위에 잉크 펜을 이용해 무수히 선을 수행적으로 반복해 그려 완성된 것이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천·지·인’(2018), ‘무한주-만다라’(2018), ‘하늘도 둥글고, 땅도 둥글고, 사람도 둥글고’(2018)와 같은 색 띠 평면 작업을 만날 수 있다.

드로잉들과 마찬가지로 무수한 잉크 선들을 겹겹이 쌓고, 1cm간격으로 색 띠들을 교차시키고, 덧칠하는 방식은, 그의 조각이 지닌 조형성뿐 아니라 금속을 두드리고 용접하고 연마하는 제작 기법과도 닮아있다. 

엄태정,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  aluminum, steel, 92x168x240(h)cm, 2018.(사진=아라리오갤러리)
엄태정,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 aluminum, steel, 92x168x240(h)cm, 2018.(사진=아라리오갤러리)

이와 관련해 작가는 “내게 작품을 하는 일은 곧 치유의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상호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여러 작품들을 바라보며, 관람객들은 재료의 물성과 조형적 질서 너머 작가가 부단히 추구했던, 자신의 치유에 대한 염원과 통합에 대한 이상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엄태정 작가는 193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세인트 마틴스에서 수학했고,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연구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를 역임했다.

1967년 국전 국무총리상, 1971년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상, 2012년 이미륵 상 등을 수상했고, 광주 상공회의소 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상파울로 비엔날레, 런던 우드스탁 갤러리, 베를린 게오르그 콜베 뮤지엄, 서울 성곡미술관 개인전 외 다수의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2013년부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전시는 서울 삼청점은 2월 24일까지, 천안점은 5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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