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흔적이 담긴 풍경에서 도심 속 삶의 모습 풀어내...민정기 展
인간의 흔적이 담긴 풍경에서 도심 속 삶의 모습 풀어내...민정기 展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9.01.3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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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작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장소였던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념촬영을 한 배경에 걸린 ‘북한산’(2007)작품으로 큰 이슈가 됐던 민정기 화백의 개인전이 삼청동 국제갤러리 2관, 3관(K2,K3)에서 1월 29일부터 개최된다.

'29일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에 설치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민정기 작가'.(사진=이예진 기자)
'29일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에 설치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민정기 작가'.(사진=이예진 기자)

민정기(70) 작가는 40여 년간 회화의 영역에서 풍경을 소재로  다양한 관점들을 다뤄 온 민중미술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에는 조선시대 이후 수도였던 서울 시내에 산재한 건축물이나 터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재구성하는 작품들을 새롭게 선보인다. 신작에서는 종로구에 위치한 청계천, 사직단, 세검정, 백사실계곡 등의 장소가 주로 다루어진다.

특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현실적이면서도 인문적인 성찰의 결과로 재해석하는 작업 스타일을 구축해왔다. 그간 산세, 물세 같은 지형적 요소와 그 안에 어우러진 인간의 흔적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던것에 반해, 최근작에서는 자연에서 도심으로 옮겨갔다. 

그는 1980년대 초 ‘이발소 그림’이라 지칭하는 작품들로 국내 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국전을 중심으로 추대되던 순수미술 또는 추상미술에 대한 반(反)미학적인 공격에 근간을 두었다.

'국제갤러리 2관(K2)에 설치된 민정기 작가의 작품'.(사진=이예진 기자)
'국제갤러리 2관(K2)에 설치된 민정기 작가의 작품'.(사진=이예진 기자)

이발소에 걸려 있던 상투적이며 키치(kitsch)에 가까운 그림들을 가져다가 고급 재료로 여겨지는 유화 물감으로 정성스럽게 모사한 작품도 있었다. 이 ‘정성스러운 모사’에는 작가의 분명한 의도가 깃들여 있었다. 

미술이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힘든 ‘심미적 대상이기보다 일상의 언어처럼 대중이 공감하는 정서나 진실을 소통하기 위한 도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이런 이유로 민정기 작품에서는 개별성에서 진화한 ‘독립성’과 풍경화가로서 담보한 ‘장소성’이 중요한 특징들로 꼽힌다. 그가 작품에서 구현한 독립성은 대상의 단순한 재현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도구 역할을 함으로써 얻어졌다. 

민정기 화백의 작품에 등장하는 전통 동양화나 고지도를 차용하는 고유한 화풍도 이러한 소통의 강조를 전제한다. 이는 “예전 것들을 통해서 오늘날의 모습을 그린다”는 의도를 반영하며, 따라서 과거를 향한 회고나 노스탤지어(nostalgia)와는 거리가 멀다.

한편 ‘장소성’은 해당 장소의 지형적, 지리적, 인문학적 지식이나 역사성에 주목하여 그 장소만의 독자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작가의 방식에서 비롯됐다. 

민정기, '묵안리장수대'. 2007.(사진=국제갤러리)
민정기, '묵안리장수대'. 2007.(사진=국제갤러리)

민정기에게 작업은 스스로 ‘인연’이라 칭하는 작품과 본인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필연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도시의 구석구석을 답사 한 후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콜라주(collage)하여 화폭에 담는다. 때론 그곳의 풍경을 찍어온 사진을 참고하거나  나의 상상으로 추상적인 표현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유 몽유도원’(2016)은 조선 초기 안견의 몽유도원도 이미지 위에 현재의 부암동 풍경을 병치시킴으로써 부암동의 태곳적 지세와 변모된 현실풍경을 극명하게 대비해 보여준다.

신작인 '청풍계 1~2'(2019)는 대한제국의 관료였던 윤덕영이라는 인물이 일제강점기에 인왕산 자락에 지은 600평 규모의 프랑스식 건물을 예전의 지형을 바꾸고 가파르게 들어선 다세대 주택들과 병치해 보여준다.

민정기, '청풍계1'. 2019.(사진=국제갤러리)
민정기, '청풍계1'. 2019.(사진=국제갤러리)

민 작가는 “윤덕영은 그 집에 입주도 못한 채 운명했으며, 그 이후 건물은 여러 쓰임새로 사용되다가 화재로 소실돼 1970년대에 철거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화면엔 이 건물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표현되고 있다. 그는 “관련 사료 연구와 답사, 그리고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과거의 시간을 현재에 복구해 보여주는 화면들로 재구성했다”고 말했다.

민정기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지난 1987년 서울에서 경기도 양평으로 이주한 후 본격적으로 산을 중심으로 한 우리 삶의 터전과 역사를 다루기 시작했다. 

'국제갤러리 2관(K2) 2층에 설치된 민정기 작가의 석판화 설치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국제갤러리 2관(K2) 2층에 설치된 민정기 작가의 석판화 설치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민정기는 다른 서울대학교 출신 작가들처럼 국가가 지원하는 국전에 참여하는 대신 1980년부터 ‘현실과 발언’ 동인의 창립 멤버로 활동하면서, 소위 고급예술이나 순수미술을 거부하고 현대미술에 ‘상투성’을 부여함으로써 전통과 모더니즘의 간극을 해소하고자 시도했다.

1983년 서울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문예진흥원 마로니에 미술관(2004), 조선일보미술관(2007), 금호미술관(2016) 등 국내 주요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제갤러리 3관(K3)에 설치된 신작과 함께한 민정기 작가'.(사진=이예진 기자)
'국제갤러리 3관(K3)에 설치된 신작과 함께한 민정기 작가'.(사진=이예진 기자)

주요 단체전으로는 일민미술관(1999), 서울역사박물관(2013), 제8회 SeMA 비엔날레(2014), 경기도미술관(2016), 인사아트센터(2016) 등이 있다. 지난 2006년에는 제18회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전시는 3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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