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8 '박찬걸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8 '박찬걸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9.02.0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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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형상을 해체하고, 조립하여, 재해석하는 조각가 박찬걸의 결의 미학'

"나는 망치로 철학을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이다. 그 후의 철학은 플라톤 철학을 계승 발전시킨 플라톤 철학의 상속자들과 플라톤 철학을 극복하려는 플라톤 철학의 파괴자들이다.

'박찬걸 작가 작업'.
'박찬걸 작가 작업'.

주관적 견해로 서양철학사는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니체는 플라톤 철학을 넘어서려고 시도한 철학자라고 보인다.

니체의 말을 박찬걸 작가의 예술세계에 대입시킨다면, 나는 머리로 조각을 한다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천재 예술가가 보여준 완벽한 조각의 전형이다. 박찬걸 작가는 미켈란젤로의 숭배자였지만, 잠재의식 속에는 그의 작품을 뛰어넘고 싶은 욕망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머릿속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해체시키고, 작가만의 방식으로 조립시킨다.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형태의 새로운 다비드상이 눈앞에 완성된다.

미켈란젤로가 망치와 정으로 대리석을 조각했다면, 작가는 첨단 컴퓨터 기술과 그라인더 기계의 힘으로 재단한 스테인리스 스틸 유닛을 결합하여 조각한다.

​플라톤에게 예술은 모방의 재현이라면, 작가에게 예술은 재현된 대상의 해체와 조립을 통한 재현의 재현인 것이다. 작가는 다비드상이나 비너스상과 같은 유명한 조각상을 재해석해서 열린 조각으로 구현한다. 작품은 구상, 해체, 설계, 조립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구성은 점, 선, 면, 입체의 원리가 사용된다.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구상하여, 조각할 형상이 결정되면, 컴퓨터 3D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형상을 해체, 설계하고, 여러 개의 단면으로 재단한다.

재단하는 작업은 정교함과 세밀함을 요구한다. 재단된 형상 곳곳에 점을 찍는다. 한의원에 가면 인체에 혈자리를 그려놓은 인체도처럼, 컴퓨터 속 이미지에 여러 개의 점을 찍는다.

작품의 구조적 안정성을 고려하여, 건축사의 도면처럼 완성한다. 건축설계와 건축공학의 기법을 조각에 응용한 것처럼 여겨진다. 도면대로 스테인리스 스틸을 가로 단면으로 자르기 시작하여, 유닛들을 만든다.

작가는 7이라는 숫자를 좋아해서, 작품을 이루는 단면의 숫자는 대부분 7의 배수란다. 여러 개의 구멍들로 이루어진 수많은 스테인리스 스틸 단면들을 스테인리스 스틸 봉들로 용접하여 결합시킨다. 점, 선, 면을 조립하면, 하나의 입체 작품이 완성된다.

구상조각은 채움의 미학이다. 조각가는 인체나 동물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또는 작가의 관점에서 조각한다. 돌을 쪼아서 만드는 돌조각이나 쇠붙이를 녹여 거푸집에 부어서 만드는 주물 조각이나 모두 형상이 채워져 있다.

'박찬걸 작가의 작업'.
'박찬걸 작가의 작업'.

박찬걸 조각의 특징은 의도적으로 형상에 빈 공간을 보여주는 열림의 조각이다. 여백의 미를 조각에 실현한 것이라고도 해석해볼 수 있다. 작품은 서양의 과학기술과 동양예술을 결합시킨 융복합의 조각이고, 공간과 여백의 미학이다.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낯익은 대상에 대한 낯설게 보임이다. 일반적인 조각상은 곡선이던 직선이던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로 선의 미학이라면, 박찬걸 조각상은 가로선 또는 가로로 중첩된 단면들이 뿜어내는 결의 미학이다.

작품을 가까이서 접하면, 시각적인 낯섦 또는 생경함이 생길지도 모른다. 작품은 분명 조각이지만, 작은 건축물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왜일까?

​작가는 조각의 형상은 채워져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해체한다. 탈 형식주의를 추구하고, 구조주의 관점에서 단면들 간의 관계성을 예술로 보여준다. 선의 조각미를 결의 조각미로 변화시킨다. 안과 밖의 경계와 구분을 넘어선다.

작가에게 조각이란 열린 공간의 드러냄이다. 현악기를 보면 악기의 중심부 공간이 동그랗게 뚫려 있다. 소리의 울림을 만들기 위한 울림통이다, 현악기가 소리의 울림이라면, 박찬걸 작품의 빈 공간은 시각적 울림이 아닐까?

박찬걸 작품은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후기 구조주의 예술의 한국적 표현방식이라고 생각된다. 작가는 지난 15년 동안 열린 공간을 보여주는 조각에 천착했다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열린 공간의 일정 부분을 닫는 작업을 실험 중이라고 한다.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는 작가의 미래 조각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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