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나의 월드리포트] 뉴욕에서 만난 클림트(Gustav Klimt) ;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
[나하나의 월드리포트] 뉴욕에서 만난 클림트(Gustav Klimt) ;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
  • 나하나 기자
  • 승인 2019.02.27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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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하나 인드라망 아트컴퍼니 대표]  “2006년, 미국 소더비(Sotheby’s) 경매에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I(Adele Bloch Bauer I)’ 이 당시 회화사상 최고가인 13,500만 달러, 우리 돈 1500억 원 가까이에 낙찰 됐다.”

클림트의 작품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I(Adele Bloch Bauer I)’ 부인의 초상화.(사진=나하나)
클림트의 작품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I(Adele Bloch Bauer I)’ 부인의 초상화.(사진=나하나)

뉴욕의 센트럴 파크 뮤지엄 마일(Museum Mile) 86번가에 ‘구스타브 클림트’의 걸작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I(Adele Bloch Bauer I)’의 초상을 을 볼 수 있는 소규모의 갤러리가 있다.

이곳은 2001년에 개관한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인데, 노이에(Neue)는 독일어로 ‘뉴(New)’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에스티로더 가문이 개관했다.

노이에 갤러리는 명품 화장품의 CEO인 ‘에스티 로더 여사’의 둘째 아들인 ‘로널드 로더(Ronald S. Lauder)’를 주축으로 세계적인 아트 딜러 ‘서지 사바스키(Sergy Sabarski) 와 함께 의기투합해 컬렉션을 했으며, 긴 시간 상의를 바탕으로 완성된 갤러리다. 개관 초기. 에스티 로더 여사가 직접 관리했으며, 현재는 그 아들인 ‘로널드 로더(Ronald S. Lauder)’가 전적으로 맡아 책임을 지고 있다.

갤러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도보로 3~4분이면 도착하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며, 전형적인 아르데코 풍의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사진=나하나)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사진=나하나)

아르데코(Art-Deco)란, 1900년대 초 유행했던 건축과 인테리어로 기존의 클래식한 방식에 테크놀로지를 수용하는 기하학적 무늬와 특정 부분을 강조한 건축 양식이다. 노이에 갤러리는 클래식 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세련되고 날렵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가운데 중심을 기점으로 오른쪽으로는 로널드 로더의 동반자이자 조력자인 아트딜러의 이름을 딴 사바스키 카페(Cafe Sabarski)가 비엔나 풍의 느낌을 자아내고 있으며, 왼쪽에는 서점(Book Store)과 아트샵, 또 갤러리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다.
 
우리는 바로 이 갤러리 2층에서 클림트의 작품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I(Adele Bloch Bauer I)’ 부인의 초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미술애호가들이 오스트리아에 가는 이유를 꼽자면, 클림트의 그림을 보러 간다고 할 정도로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노이에 갤러리의 소장품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I(Adele Bloch Bauer I, 1907)’는 매우 뜻깊은 작품이다.

그 이유는 회화사상 가장 높은 작품가를 기록했다는 이슈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클림트의 ‘키스(Kiss, 1907~1908)’와 더불어 클림트의 황금기 작품이라는 점과 실제로 황금을 사용한 작품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노이에 갤러리 전시 작품'.(사진=나하나)
'노이에 갤러리 전시 작품'.(사진=나하나)

이 작품은 1907년 138cm의 정방형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당시 비엔나의 유명한 은행가의 딸이자 제당 사업가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초상화는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I(Adele Bloch Bauer I, 1907)’,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II(Adele Bloch Bauer I, 1911)’로 총 두 점이 그려졌는데, 현재 한 점은 ‘모마(MoMA)가, 나머지 한 점은 바로 이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에 있어 두 점 모두 뉴욕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림에서 초상화의 주인공은 매우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는데 그 드레스는 의상이라기보다는 거의 금빛 양탄자에 가까운 느낌이며, 그의 그림에서 표현된 작고 앙증맞은 꽃밭이나 장식적인 효과들에서 아시아의 오리엔탈적인 요소가 명확하게 느껴진다.

또한 장식적인 효과의 표현으로 실제로 금을 사용하여 작품을 완성했는데, 직접 감상할 때 느껴지는 금빛 찬란하면서도 황홀한 빛의 반사는 더욱 작품을 인상 깊고 깊이 있게 만든다.

이 작품이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I (Adele Bloch Bauer I, 1907)’의 초상 작품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이 작품에 클림트의 사랑에 대한 숨겨진 스토리가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과 함께 우리는 클림트의 또 하나의 작품인 ‘유디트 I(Udith I)’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유디트’란 구약에 나오는 인물로 이스라엘의 팜므파탈의 전형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녀는 적장의 침실에 동침해 적의 머리를 베어 조국을 구한 여인으로 클림트는 그녀의 얼굴을 이 작품에서 매우 뇌쇄적이고 황홀경에 빠진 듯 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노이에 갤러리 전경'.(사진=나하나)
'노이에 갤러리 전경'.(사진=나하나)

당시 이 작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였는데, 시간이 흘러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Adele Bloch Bauer I, 1907)’의 초상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바로 그 ‘유디트’가 했던 화려한 장식의 목걸이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목걸이가 일치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이 구스타프 클림트의 숨겨진 사랑의 흔적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림 감상의 재미를 더해준다. 또 다른 이유로는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던 당시, 나치 정권이 ‘블로흐 바우어’가 소장품 5점을 압수해 3점은 오스트리아 빈의 갤러리, 나머지 2점은 다른 곳에 팔아 버렸다고 한다.

따라서 블로흐 부인에게 상속받은 5명의 상속자들은 미국에서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소송을 했고, 결국 미국연방법원과 오스트리아 중재 법원의 도움으로 ‘반환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며, 이와 같은 과정이 있었기에 현재 이 작품을 감상하는 일 또한 가능한 것이다.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는 개인 소장품을 기본으로 한 사설 갤러리이다. 이토록 의미 있고 뜻깊은 개인의 보물을 대중이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는 것은 사실은 사회적인 환원을 하는 것이다.

'노이에 갤러리 전시 작품 모습'.(사진=나하나)
'노이에 갤러리 전시 작품 모습'.(사진=나하나)

한국 사회의 경우, 개인이 값비싼 미술작품을 구매했을 경우 비난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작품 공개는커녕 그 작품이 다시 경매에 나오기까지 기약 없는 시간동안 우리는 그 작품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국가가 작품을 구매해 대중에게 선보이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나.  그러나 그렇게 감상을 제공하기에는 작품가가 너무 높아 국민의 세금으로 이를 해결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자신의 소장품을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단순 전시뿐 아니라, 다른 면에서는 개인과 사회를 순환시키는 일이며, 결국 문화적 수혜를 입는 당사자들 또한 대중임을 생각해 볼 때, 미술작품을 구매하는 일을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도 예술에 대한 관점의 확장은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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