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진 1세대 황규태, "나는 만들지 않고, 픽셀들을 선택할 뿐."
현대사진 1세대 황규태, "나는 만들지 않고, 픽셀들을 선택할 뿐."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9.03.12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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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황규태(81) 작가는 데뷔 이래 실험 사진의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다. 60년대에는 필름 태우기, 차용과 합성, 아날로그 몽타주, 이중 노출 등을 시도해 문제적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삼청은 3월 7일부터 4월 21일까지 한국 아방가르드 사진의 선구자이자 예외적 작가 황규태의 개인전 ‘픽셀 Pixel’을 개최한다.

'pixel the rite of bit'. 280x670. (사진=아라리오갤러리)
'pixel the rite of bit'. 280x670.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이후 80년대부터 시작된 디지털이미지에 대한 관심은 디지털 몽타주, 꼴라주, 합성 등의 다양한 실험으로 이어졌다.

그 긴 여정의 끝에서 이미지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네모 모양의 작은 점들을 일컫는 ‘픽셀’을 디지털 이미지들 속에서 발견했고, 기하학적 이미지들의 무한한 가능성과 시각적 유희에 매몰됐다. 그렇게 ‘픽셀’시리즈가 시작됐다.

황규태 작가의 ‘픽셀’시리즈에는 사진의 기본인 ‘촬영’과정이 기본적으로 부재하거나 현저히 부족하다. 대신 ‘선택’과 ‘확대’가 존재한다.

그의 작품은 여느 사진 작품처럼 대상을 카메라로 촬영해 그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하는 과정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나 모니터 등을 자유 자재로 선택하고 확대할 때 발현되는 다양한 형태와 색상의 픽셀을 집요하게 발견하고 기록, 그리고 여러 방식으로 시각화, 물질화 하는 것이 기본 골자다.

'pixel'. 50x50-3. (사진=아라리오갤러리)
'pixel'. 50x50-3. (사진=아라리오갤러리)

그 과정에서 전통 사진의 주요 쟁점인 ‘지표성’의 가치는 희소해지고, ‘선택’과 ‘확대’라는 방법의 특성상 원본 이미지에서 파생되는 결과물들은 무한해진다.

이 모든 과정을 사진으로 보느냐 마느냐는 문제의 핵심이 되지 않는다. “나는 만들지 않았고, 픽셀들을 선택할 뿐”이라고 말하는 그의 전방위적 작품들은 ‘예술’의 전통적인 범주나 양식사적 접근으로 축소해서 볼 게 아니라, ‘이미지’ 연구의 관점에서 조금 더 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흥미롭게 살펴볼 지점은 작가가 주장하는 ‘픽셀’시리즈와 러시아 미술가 ‘카시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작품과의 연결고리다. 

자신이 찾아낸 전자 이미지들 속에서 말레비치가 손수 그린 극한의 미니멀한 하드엣지 작품과의 유사성을 발견함으로써, 100년의 간극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서의 절대주의 조형성의 철학을 다시 논한다. 

'pixel'. 50x50-3. (사진=아라리오갤러리)
'pixel'. 50x50-3. (사진=아라리오갤러리)

구상적 재현의 흔적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사각형, 원 등의 기본적인 형태와 색채만의 순수한 구성에 도달한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처럼, 원본 이미지에서 확대에 확대를 거듭해 도달한 픽셀들의 미니멀한 추상 색면의 세계는 디지털 시대에 가능한 이미지의 무한 시공간을 현시하고 순수 추상을 탐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포스트 하드엣지’라 일컫는다. 작가가 ‘픽셀’시리즈를 시작한 지 약 2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간의 치열했던 고민과 연구가 응축된 지난 2년간의 작품을 선별한 본 전시가 동시대 디지털 문명에서의 이미지 정체성과 그 방향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황규태 작가 '픽셀'전 설치 모습.(사진=아라리오갤러리)
황규태 작가 '픽셀'전 설치 모습.(사진=아라리오갤러리)

이번 전시는 작업 초기인 60년대부터 주류나 유행에 타협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실험과 혁신을 추구하며 사진 영역을 확장해온 원로 작가가, 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진행중인 ‘픽셀’ 시리즈의 최근 결과물들을 보여준다.

황규태 작가는 193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경향신문사 사진기자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년대 말부터 독자적으로 사진을 연구하고 사진가로 활동하던 그는 1973년 서울 프레스 센터 개인전을 시작으로 금호미술관, 아트선재센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그리고 일본, 미국 등지에서 총 17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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