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화가 윤종구의 숲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화가 윤종구의 숲 이야기'
  • 왕진오
  • 승인 2017.11.04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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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블로그에 전시 작품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작품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삶과 철학을 후세에게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고전 철학과 미술을 연구하면서, 책이나 작품을 접할 때면, 작가는 어떠한 삶을 살았을지가 무척 궁금했었다.

세종갤러리 윤종구 '숲' 전시 모습.(사진=왕진오 기자)
세종갤러리 윤종구 '숲' 전시 모습.(사진=왕진오 기자)

미술 비평가는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서 작품 관련 내용만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만, 갤러리스트는 어떠한 내용이라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글로서 기록해도 무방한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인 윤종구 작가를 알게 된지는 몇 년전이었다. 작가와의 첫 만남은 북촌 갤러리 시절 다른 작가 뒤풀이 장소에서였다. 영화배우 남궁원을 연상시키는 서구적인 멋진 외모를 가진 작가다. 굵직한 목소리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본격적으로 가까워지게 된 것은 페이스북에 미술과 일상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던 2017년 올 2월부터였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통해서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친해지게 되었다.

작가도 매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숲길 산책의 느낌을 요약해서, 순간의 사진과 함께 페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숲이라는 주제로 매일매일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무척 놀랍고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어제는 작가의 전시가 있는 명동 세종호텔 내 세종갤러리에서 여름부터 무척 기다렸던 작품들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보고 싶었던 작품을 볼 때의 설렘과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전시장에서의 첫인상은 인공적인 벽으로 둘러싸인 네모나고 딱딱한 전시 공간이 자연의 녹색으로 물든 숲 속으로 바꾸어졌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는 점이다. ​

녹음이 우거진 숲 속에 들어와서 신선한 공기를 맡고 있는 느낌이었다. 녹색의 숲은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면서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작품에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녹색만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붉은색도 회색도 조금씩 뒤섞여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

이야기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는 대략 3년 전쯤 북한산 자락으로 이사 와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북한산 숲길을 걸었다고 한다.

이사 올 당시에 작업실도 없애고, 기존에 그리던 모든 작품들을 불태웠다고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전율이 몸에 감돌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배수진을 치고 도전하는 작가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작가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충주의 한 시골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작가의 가난했던 삶은 예술가로 진로를 정하는데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 교수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신 어머니께서 시골에서 혼자 육 남매를 키우셨는데, 어떻게 교수님을 선화예고까지 보내셨어요? 집이 가난해서 장학금을 받고,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서 선화예고를 다녔지요. 그리고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어머니께서 무척 자랑스러우셨을 듯합니다. 부유하게 자랐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짐을 느꼈다.​

가난한 시골에서 성장해서 대학 교수가 된 후의 안정적인 삶은 예술가로서 오히려 잠시나마 독이 되었나 보다. 그래서 작가는 기존의 작품들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각오로 무작정 숲 속을 걸었던 듯싶다. 가난했던 예술가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진정한 예술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게 작가의 욕망이었다.​

작가는 매일 규칙적인 숲길 산책에서 자연스럽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숲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숲 속의 변화를 예리한 예술가의 눈으로 관찰하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몰라도 산책하면서, 사유하기 시작한다. 숲과의 대화가 시작된 것일까?

숲은 말이 없다. 숲은 화가의 그림처럼 보여줄 뿐이었다. 숲과의 대화는 작가 자신과 내면의 자아가 숲을 배경으로 대화한 것이다. 또한 숲과 내가 객체와 주체의 구분이 사라지고, 물아일체가 되었을 것이다.

숲을 바라보는 마음 변화의 미세한 움직임이 그림으로 표현된 것이다. 숲을 산책하면서 자연 속에 살고 있는 곤충들이나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도 만나게 되었다. 숲을 알게 되면서, 육식을 멀리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주로 녹색으로 우거진 무더운 여름날의 숲의 모습만을 담았다. 전시 작품 중 일부는 유화가 아닌 볼펜으로 그린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볼펜들로 그린 비구상적인 작품들 중에 유일하게 연꽃의 모습을 가진 작품을 발견하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연꽃을 그린 건 아니라고 한다. 불규칙적으로 그어진 볼펜 작품들을 접하면서, 혼란스럽게 고민했던 과거의 마음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유화 작업으로의 전환은 고뇌하던 마음에서 평온한 마음의 상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마치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의 전환처럼 말이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이 반복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물감의 중첩은 숲 속에서 보냈던 천일동안 시간의 중첩이고, 숲을 거닐면서 느꼈던 느낌과 사유가 중첩된 결과물인 것이다.

녹색의 물결 속에 가끔씩 다른 색깔의 마음이 담기기도 했다. 그래서 작품 속에 다른 색깔들이 슬쩍슬쩍 눈에 보이는 이유다. 캔버스에 그려진 숲은 숲의 모습이자 작가 내면의 모습이다. 순간순간의 시간과 느낌이 모여서, 마침내 숲이라는 작품이 탄생된 것이다.

작가는 다음번 전시에서는 숲의 사계를 전부 담는 것이 목표다. 작가에게 숲은 스승이다. 숲은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과 치유의 방법을 가르쳐주었고, 숲에서 긍정의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에게 숲이란 현재태이며, 가능태라고 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숲과 함께 갈 것이라고 단언한다. 숲의 작가라고 기억되기를 소망하는 작가의 마음을 접하면서, 숲길을 걸으며 작가가 왜 숲을 찬미하게 되었는지가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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