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환, Over and Over Again...끝나지 않은 문화적 차이
노세환, Over and Over Again...끝나지 않은 문화적 차이
  • 김재현
  • 승인 2019.03.26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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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김재현 기자] “런던이라는 도시는 일반인에게 이층버스, 빅벤 쯤으로 간추려 지겠지만, 1년 여의 시간을 런던에서 보낸 나에게 런던이란 도시는 다 인종 도시라는 한마디로 요약 될 듯 하다. 수 많은 인종들이 각각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 하는 사람들이 한 도시에 모여, 다른 문화들을 오래된 역사의 도시에 녹여, 또 다른 제 3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런던이라는 도시에 처음으로 외국에서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내가 그 안에 놓여져 있다.” 

노세환, 'FUCKING CHINESE BACK IN A MINUTE'. Mono Edition,  60X120cm, 2010.
노세환, 'FUCKING CHINESE BACK IN A MINUTE'. Mono Edition, 60X120cm, 2010.

대도시에서의 삶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2006년부터 대도시의 단면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기록해 온 노세환 작가는 달리는 차창 밖 풍경을 담은 'Movingscape'를 시작으로 도로 위를 스치는 차의 흔적을 담아낸 'Busy Traces', 그리고 신호등 또는 지하철에서 서 있는 사람 들의 1초를 담은 '조금 긴 찰나' 연작을 통해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도시를 표현해 왔다.

도시와 도시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일관적인 관심은 이번 전시에서 새로이 선보이는 '크리스마스에 사과 잼 만들기' 연작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처음 시리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도시를 바라보는 시점을 점차 변화시켜 최초에 도시 사람이 본 특유의 풍경사진에서 그 다음은 도시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관찰자로서 새로운 1인칭 시점을 등장시켜 대도시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밀착해 들어간다.

작가가 다른 문화권의 도시인 런던에서 살면서 겪은 일상과 에피소드들을 통해 또 다른 시각으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평범한 일상을 매혹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한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도시의 관찰자로서 도시의 생명력을 확인하는 작업을 지나 어느덧 도시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일상과 상황을 애정 어리게 관찰, 해석하여 그저 비판적이기보다는 마치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처럼 위트 있고 사랑스럽게 보여 주고 있다.

작품 속의 채소, 계란, 자동차, 커피와 커피 컵, 섬유탈취제 등 매일 만나는 생활 속의 평범한 소재들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되고 도시인들의 삶에 대한 뜨거운 애착을 상징하는 아름답고 비범한 의미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현재 런던에서 살고 있는 작가의 일상 속 경험을 기초로 한 이번 작품들은 현대 문명의 이기를 넘어 이 시대 생활 속의 소중한 일부가 되어 버린 식료품, 커피 음료, 생활용품, 교통 수단 등에 존재감을 부여해 도시 현대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런던이라는 다른 문화. 다른 시스템에서 작가 자신이 겪은 명랑한 한 편의 희극이 그 속에 녹아있다.

노세환, '먹지마세요! 눈에게 양보하세요'. (the Canned sky) Mono Edition, 100x100cm, 2010.
노세환, '먹지마세요! 눈에게 양보하세요'. (the Canned sky) Mono Edition, 100x100cm, 2010.

작품들은 각각 작가의 짤막한 이야기를 곁들였는데 '크리스마스에 사과 잼 만들기' 작품에서는 설탕이 흰 눈처럼 뿌려진 미니 이층버스, 사과와 설탕, 식빵과 커피 컵 등으로 이루어져, 눈이 많이 내린 런던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 안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 배가 고파서 사과 쨈을 만들어 식빵에 발라 커피를 곁들였던 소박한 성탄 만찬의 기억을 보여준다.

한편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믹스 커피를 그냥 마실 순 없다' 작품은 제대로 된 원두커피를 마시기 위해 조리용 거름망에 티슈로 커피를 내리는 익살스러운 장면을 보여주어 한 잔의 평범한 커피에 세련된 수공의 노력을 들여 이에 각별한 가치를 부여하려는 현실에 아이러니와 폭소를 자아낸다.

이처럼 작가의 작품은 런던 체류 기간 동안 다른 문화권에서 경험한 특별한 일상 생활을 소재로 하면서도 메트로폴리탄적인 생활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또 다른 일상이기도 한 것이기에 기이한 공감과 더불어 잔잔한 웃음으로 다가온다.

소재의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은 진기하고도 놀랍게 매력적인 세계를 열어주는 창문 역할을 하고 있다. 'A BROKEN EGG'에서 영국에서 달걀을 사는 일은 달걀 박스에 깃털이 들어있거나 깨진 달걀이 있어서 더 없이 당혹스런 일상이 된다.

노세환, '목구멍이 포도청일지라도'. Mono Edition, 20 x 25cm, 2010.
노세환, '목구멍이 포도청일지라도'. Mono Edition, 20 x 25cm, 2010.

'FITTING ROOM'과 'FUCKING CHINESE! BACK IN A MINUTE!'에서 런던의 이층버스나 자동차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상황을 색다르게 경험하고 맞닥뜨리는 연극 무대로, 'I WON’T EAT SMELLY FOOD'에서 마늘이 들어간 음식은 런던에서는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인종을 배려하여 먹지 말아야 할 것으로 권장되는 덕목이며, 그리고 'FEBREZE'에서 섬유탈취제는 타지의 습하고 낯선 겨울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상징물로 독특하게 표현된다.

이처럼 노세환의 사진은 평범하게 여겨지던 상황들과 사물들이 다른 문화권의 도시로 이동하여 우리가 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다면, 평 범하고 수수한 일상은 좀더 다이나믹하고 풍부한 의미로 변화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상황이나 사물들이 새롭게 흥미를 돋우고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와 삶을 좀더 능동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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