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적 유머와 철학이 공존하는...엘름그린 & 드라그셋 'Adaptations'
냉소적 유머와 철학이 공존하는...엘름그린 & 드라그셋 'Adaptations'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9.04.04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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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미니멀(minimal)한 도로 표지판과 기호들이 마치 고속도로를 연상시키듯 설치되어 있다. 이 작업들은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듀오 작가 엘름그린 & 드라그셋이 만든 작품들이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Adaptations'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듀오 작가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사진=이예진 기자)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Adaptations'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듀오 작가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사진=이예진 기자)

그들은 전시를 기획하기전, 국제갤러리 3관(K3)을 찾았을때 맨 처음 눈에 띤 천장의 램프와 공간(White cube)을 둘러본 순간 고속도로를 연상시켰고, 이러한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두 작가의 아이디어와 계획을 토대로 전시를 준비했다.

특히 ’Highway Paintings’(2019)연작은 현장에서 직접 쓰이는 산업 재료인 아스팔트를 직사각형의 캔버스 형태로 제작한 후 실제 도로 표식에 사용되는 페인트로 만들었다. 

이들은 전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상징인 교통표지판’의 형태로 제작했다. 하지만 특정 기호와 색, 또는 가시적인 표식을 통해 위기감과 각성의 상태를 일깨우는 일반적인 안전표시판과는 달리 '거울 표면처럼 매끄럽게 처리된 스테인리스 스틸'로도 제작했다. 

'국제갤러리 3관(K3) 엘름그린 & 드라그셋 개인전 'Adaptations' 설치전경.(사진=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3관(K3) 엘름그린 & 드라그셋 개인전 'Adaptations' 설치전경.(사진=국제갤러리)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Adaptations’(2018~2019) 시리즈는 작품 주변의 공간과 그 안에 있는 관람객의 존재를 함께 반영한다.

즉 특정한 방향성이나 규정을 제시하는 대신 작품을 둘러싼 환경에 순응해 스스로를 위장함과 동시, 환경을 작업 일부로 흡수시키고 더불어 협상의 여지와 새로운 사고를 지향하는 열린 형태의 구조물로 재탄생시켰다. 또한 교통 규정과 표지판을 ‘새로운 미학적 해석과 문맥’이 생성될 수 있는 유동적인 장으로 접근했다.   

국제갤러리 K2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반 나체의 남성이 발코니에 무심히 기댄 채 한 손엔 담배를 피우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며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엘름그린&드라그셋, 'The Observer(Kappa)'. 설치모습.(사진=이예진 기자)
엘름그린&드라그셋, 'The Observer(Kappa)'. 설치모습.(사진=이예진 기자)

이 장면은 “공과 사가 공존하는 경계의 공간인 발코니에서 홀로 사색에 잠긴 인물은 이번 전시에서 제시된 전반적인 ‘사회현상과 구조’, ‘공공성’에 대한 다양한 내러티브 이면에 근본적으로 존재하며 이 모든 양상을 ‘관찰’하는 어느 개인의 자화상을 시사한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또한 “담배는 사적인 공간에서는 언제든 필수 있다는 ‘개인의 자유로움’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문화적 프레임과 우리가 물리적 도구와 맺는 신체적 관계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 왔다.

국제갤러리에 설치된 'Multiple'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엘름그린과 드라그셋 작가.(사진=이예진 기자)
국제갤러리에 설치된 'Multiple Me'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엘름그린과 드라그셋 작가.(사진=이예진 기자)

'Multiple Me'(2019)는 직사각형의 뚫린 구조물 안에 몇 개의 원형 화장 거울이 부착되어 있는 형태다. 애초에 결코 통과할 수 없도록 의도된 이 '통로'는 거울에 맺힌 관람객의 파편화된 상을 다채로운 각도에서 반영했다.

이른바 셀카(selfie)의 열풍이 불고 있는 현대 사회의 증후군을 극단적으로 투영한 이 작품은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서의 셀카 행위를 상징해 만들었다고 한다.

전시장 한쪽 벽면엔 구멍에 손가락을 찔러 넣은 형태의 조각도 눈에 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인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가 그린 ‘의심하는 도마(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01~1602)'와 평면의 지지체를 칼로 찢어 구멍을 낸 연작으로 널리 알려진 현대미술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작품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국제갤러리에 설치된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의심하는 도마(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사진=이예진 기자)
엘렘그린 & 드라그셋, 'Doubt'설치 모습.(사진=이예진 기자)

그리스도의 몸에 난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고야 그를 믿은 제자를 묘사한 성화의 고전적 방식은 현대적 재료인 금속 소재와 대치된다. 

덴마크 출신의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 58)과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 잉가 드라그셋(Ingar Dragset, 50)으로 구성된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1995년부터 함께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들은 ‘냉소적인 유머와 철학이 공존하는 작품’을 발표하며 자신들이 대면한 세계 속 ‘고착화된 관념들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고발’하는 등 현대사회에 대한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해왔다.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엘름그린은 작가로 활동하기 전 “시인이었고 작품을 만들면서 영감을 받아 시를 쓰기도 한다”며 “그라그셋은 예전에는 연극 배우였다”고 말했다. 

출생지도 다른 두 작가들이 서로 교감하며 작업을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예술가로써 수많은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그들만의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국제갤러리 K3 설치 전경.(사진=이예진 기자)
국제갤러리 K3 설치 전경.(사진=이예진 기자)

엘름그린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매번 찾아오는 크리마스에 부모님이 집에 트리(Christmas tree)를 설치하셨는데 항상 똑같은 트리 장식을 보며 새로운, 색다른 트리를 보여달라고 부모님을 재촉하곤 했다”고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7살의 어린 꼬마는 수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해 버라이어티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부모님께 선사했다.

드라그셋과 엘름그린에게 작품을 보는 관람자에게 남기고 싶은 메세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의 작품은 ‘새로운 형태의 언어’이자,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그런 작품을 남기고 싶다”라고 말했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2000년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주최하는 휴고 보스상(Hugo Boss Prize) 최종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2년 독일 내 가장 권위 있는 미술상인 함부르크 반 호프상(Preis der Nationalgalerie, Hamburger Bahnhof, Berlin)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 후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네 번째 좌대 프로젝트(The Fourth Plinth Project)의 여덟 번째 커미션 작가로 선정되어 ‘Powerless Structures, Fig. 101’(2012)을 선보였다. 

'국제갤러리 K3에 설치된 'Highway Painting'과 함께한 엘름그린과 드라그셋 작가'.(사진=아트인포DB.)
'국제갤러리 K3에 설치된 'Highway Painting'과 함께한 엘름그린과 드라그셋 작가'.(사진=아트인포DB.)

2016년 여름에는 미국 뉴욕의 비영리 미술기구 퍼블릭 아트펀드(Public Art Fund)가 주관하는 뉴욕 록펠러 센터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Van Gogh’s Ear'(2016)를 설치해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또한, 개인전을 개최한 주요 기관으로는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2018-2019), 독일 크레펠트의 하우스 랑게 미술관(2017), 뉴욕의 플래그 아트 파운데이션(2016), 이스라엘 텔 아비브 미술관(2016), 북경 울렌스 현대미술센터(UCCA)(2016), 삼성미술관 플라토(2015), 덴마크 국립 미술관(2014), 런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미술관(2013) 등이 있다. 

한편 그들의 작품은 개인 및 공공 컬렉션뿐만 아니라, 독일 베를린에 소재한 함부르크 반호프 현대미술관, 미국 시카고 현대 미술관, 덴마크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덴마크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홍콩 K11 아트 파운데이션, 덴마크 아르켄 현대 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중국 상해 유즈 미술관, 스웨덴 스톡홀름 근대미술관, 오스트리아 빈 현대미술관, 스위스 취리히 쿤스트할레 등 전세계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시는 국제갤러리 K2, K3에서 4월 28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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