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움직임을 추적하며' 타이틀 英사우스 런던갤러리 개인전
양혜규, '움직임을 추적하며' 타이틀 英사우스 런던갤러리 개인전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9.04.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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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양혜규의 올해 첫 개인전 '양혜규: 움직임을 추적하며(Haegue Yang: Tracing Movement)'가 지난 3월 7일 영국 사우스 런던 갤러리(South London Gallery)에서 성황리에 개막했다.

'양혜규: 움직임을 추적하며'. 전시전경, 사우스 런던 갤러리, 런던, 2019.(사진=국제갤러리)
'양혜규: 움직임을 추적하며'. 전시전경, 사우스 런던 갤러리, 런던, 2019.(사진=국제갤러리)

런던 큐빗 갤러리(2008), 모던 아트 옥스퍼드(2011), 브리스톨 아놀피니(2011), 테이트 모던 내 테이트 탱크(2012) 이후 영국에서 7년 만에 개최되는 이번 개인전은 오랜 기간 지속해온 연작은 물론 장소 특정적 신작 등을 포함한 총 21점에 달하는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장에는 '의상 동차(動車, Dress Vehicle)'(2011년 이후) 연작의 3세대로 일컬어지는 '소리 나는 의상 동차(動車) – 우람 머리통(Sonic Dress Vehicle – Hulky Head)'(2018)과 '소리 나는 의상 동차(動車) – 덩치 새(Sonic Dress Vehicle – Bulky Birdy)'(2018)가 자리한다.

형형색색의 블라인드와 놋쇠/니켈 도금 방울로 장식된 동차는 작품 내부에서 핸들을 잡고 조각을 밀거나 돌릴 수 있도록 고안됐다.

작품이 이동할 때마다 전시장 바닥의 미세한 굴곡으로 인해 발생하는 독특한 마찰음과 방울 소리는 미묘한 청각적 울림을 더한다. 바퀴 달린 기하학적 ‘의상’은 추상과 구상, 이동과 정지의 경계 사이를 모호하게 진동한다.

전시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양쪽 코너에서 흘러나오는 새소리는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중 도보다리 중계 영상의 기록이다.

당시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는 도보다리 끝에 앉아 기자들이나 동반 스태프 없이 단둘이 담화를 나누었다. 비무장지대라는 상징적 장소와 정상회담이라는 구체적 시간대에서 유래한 음향은 사실 취재진의 발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를 제외하면 오직 새들의 지저귐으로 이루어져 있어, 일말의 정치적 의미나 삼엄한 경비의 흔적을 느끼기 어렵다.

현재 전시장 바닥 하부에는 영국의 예술가이자 삽화가,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윌터 크레인(Walter Crane, 1845~1915)이 1891년에 제작한 목재 패널이 숨겨져 있다.

'양혜규: 움직임을 추적하며'. 전시전경, 사우스 런던 갤러리, 런던, 2019.(사진=국제갤러리)
'양혜규: 움직임을 추적하며'. 전시전경, 사우스 런던 갤러리, 런던, 2019.(사진=국제갤러리)

양혜규는 크레인의 디자인에서 특정 선을 차용한 기하학적 디자인을 바닥 테이핑으로 표현했고, 이 모티프는 번역과 통역, 이주와 이동을 은유하듯 두 방향으로 회전하고 비스듬하게 재배치된다.

대형 기하학적 동차와 음향 요소 외에도 작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소형의 작품군을 널리 활용했다.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편지 봉투의 보안 무늬 콜라주 작업 '신용양호자들(Trustworthies)'(2010년 이후)에서 이어지고, 콜라주 제작 과정에서 무뎌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칼날은 '날붙이 악보(Blade Notations)'(2019)의 주재료가 되기도 한다.

주변 환경에서 날아든 머리카락, 먼지 및 곤충 등의 부산물이 그대로 드러난 표면 위에 특정하게 배열된 칼날은 언어, 코드, 잠재적 서사를 연상시킨다.

칼날은 또한 '도마 판화(Cutting Board Print)'(2012)로 이어진다. 싱가포르에 소재한 판화 전문기관인 STPI(Singapore Tyler Print Institute)에서 제작한 이 작품은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식재료를 종이 위에서 썰 때 생긴 칼자국 사이로 야채 즙이 스며들어 생성된 흔적이다.

또한 이런 일상의 단면은 화장실 비데, 에어백 등 현대 일상에서 사용하는 공산품의 이미지를 브로슈어에서 오려내 구성한 '건축 자재상 콜라주(Hardware Store Collage)'로 이어진다.
 
'멀미 드로잉(Carsick Drawing)'(2006/2016)은 이동의 과정과 경험을 추상적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멀미가 심해져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지속됐고, 이렇게 완성된 총 10점의 드로잉은 덜컹거리던 버스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10년 후인 2016년, 지인들과 함께 중국-베트남 국경 지역을 작은 벤을 타고 방문했을 때 작가는 '멀미 드로잉 – 후 응이와 유이관을 향하여 #1, #2(Carsick Drawing – Toward Huu Nghi and Youyiguan #1, #2)'를 작은 공책의 두 페이지에 그렸다.

(왼쪽부터) 'Blade Notations – Parallel Cuts', 'Blade Notations – Triple Downward Score', 'Blade Notations – Seed of E, E, E, E', 'Blade Notations – Discordant Step', 2019'양혜규: 움직임을 추적하며' 전시전경, 사우스 런던 갤러리, 런던, 2019.(사진=국제갤러리)
(왼쪽부터) 'Blade Notations – Parallel Cuts', 'Blade Notations – Triple Downward Score', 'Blade Notations – Seed of E, E, E, E', 'Blade Notations – Discordant Step', 2019'양혜규: 움직임을 추적하며' 전시전경, 사우스 런던 갤러리, 런던, 2019.(사진=국제갤러리)

개념적이고도 풍부한 시각 언어를 창출해온 조각가 양혜규는 독일의 예술가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 1888~1943)와 다다이스트 소피 토이버 아르프(Sophie Taeuber-Arp, 1889~1943), 소련의 신비주의자 게오르기 구르지예프(George I. Gurdjieff, 1866-1949), 한국 작곡가 윤이상(1917~1995) 등 역사적 인물들의 삶과 작품을 비롯해 유럽의 이교도적 문화, 한국의 무속 신앙 등 사회∙문화의 다양한 양상들을 다층적이고도 풍부하게 참조해왔다.

25여 년 간 독일과 한국을 중심으로 전세계를 누비는 작가에게 이동은 단순히 육체적 행위를 넘어선 정신적, 감정적, 사회적인 의미로 지각됐다.

과거와 미래의 공존을 도모하는 그의 접근 방식은 고유한 작품을 통해 시간과 역사, 개인적 서사 및 연대, 물리적 기록간의 계층 구조가 무너진 은유적 공간의 지도를 만들어낸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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