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화승이 그린 보물 제1260호 '공주 마곡사' 괘불 공개
여섯 화승이 그린 보물 제1260호 '공주 마곡사' 괘불 공개
  • 강옥선
  • 승인 2019.04.19 14: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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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강옥선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2019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 상설전시관 2층 불교회화실에서 보물 제1260호 공주 마곡사 괘불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2006년 5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여 온 한국의 괘불전 중 열네 번째이다.

'마곡사 괘불 세부, 보관을 쓰고 장엄한 석가모니불'.(사진=국립중앙박물관)
'마곡사 괘불 세부, 보관을 쓰고 장엄한 석가모니불'.(사진=국립중앙박물관)

충청남도 공주시 태화산 자락에 자리한 마곡사는 봄날의 경치와 유서 깊은 역사로 유명하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지만 특히 봄 경치가 수려해서‘춘(春)마곡’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산수를 겸비한 승지(勝地)로 꼽혔고, 조선시대 세조(世祖)는 마곡사를 조망하며 ‘만세(萬歲)동안 없어지지 않을 땅’이라 감탄했다.

마곡사는 신라시대 승려 자장(慈藏, 590~658)이 선덕여왕의 후원을 받아 643년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중에는 충청도 의병의 집결지였고, 조선 후기에는 왕실과 충청도 감영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조선 굴지의 사찰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마곡사는 불교신앙공동체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온 사찰로서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에'산사, 한국의 산지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태화산을 병풍으로 두르고 있는 마곡사는 승려와 신도들의 수행·신앙·생활이 종합된 공간으로, 다사다난했던 한국 역사 속에서 사회 통합의 역할을 수행하고 전통을 보존해왔다.

5층석탑(보물 제799호)을 비롯해 영산전(보물 제800호),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등 마곡사의 주요 전각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태화산 자락에 자리한 공주 마곡사 전경'. 유리건판 사진, 1928년 촬영.(사진=국립중앙박물관)
'태화산 자락에 자리한 공주 마곡사 전경'. 유리건판 사진, 1928년 촬영.(사진=국립중앙박물관)

마곡사에 전하는 보물 제1260호 '마곡사석가모니불괘불탱'은 1687년 5월, 120여 명이 넘는 대인원이 참여해 조성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피폐해진 마곡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대규모 중창이 이루어졌고, 중창 불사(佛事)가 이어지는 중에 '마곡사 괘불'이 조성됐다.

마곡사 승려와 신도 60여 명은 바탕천, 금, 아교, 먹 등 괘불 제작에 필요한 다양한 물목을 시주했다. 불화는 1670년 마곡사 대웅보전 단청공사에 참여했던 능학(能學)을 비롯해 계호(戒湖), 유순(唯順), 처묵(處黙), 인행(印行), 정인(精印) 총 여섯 화승(畫僧)이 그렸다.

6명의 화승이 모여 그린 전체 높이 11m, 너비 7m, 무게 174kg의 괘불은 300년 전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광배를 장식한 꽃, 보관에서 자유롭게 나는 봉황, 영롱하게 반짝이는 구슬과 다채로운 문양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괘불 화면 상단에는 13개의 붉은 원을 그리고 안에 고대 인도의 문자인 범자(梵字)를 적었다.

주변은 용과 꽃으로 장식했다. 상 안에 복장물(腹藏物)을 납입하는 불복장 의식이나 불보살의 눈을 그려 상을 완성하는 점안(點眼) 의식처럼, 부처의 심오한 가르침이 담긴 범자나 진언(眞言)을 그려서 11미터 화면에 생명력을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곡사 괘불'의 주인공은 보관과 장식으로 장엄한 석가모니불이다. 거대한 화면에는 연꽃을 든 석가모니불과,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청중으로 가득 차 있다.

'공주마곡사괘불'.(사진=국립중앙박물관)
'공주마곡사괘불'.(사진=국립중앙박물관)

석가모니불이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은 제자 가섭과 마음이 통해 가르침을 전해줬다는 염화시중(拈花示衆)에서 유래했다. 석가모니불이 설법을 하던 중 대중에게 연꽃을 들어보였고, 다른 이들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지만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지었다고 한다.

이에 부처는 가섭에게 자신이 깨달은 바른 진리와 진리에 도달한 마음, 글자로는 온전히 진리가 표현되거나 전해질 수 없다는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이 이야기는 문자가 아닌 참선수행으로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것을 강조하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마곡사 괘불처럼 화려한 보관을 쓰고 연꽃을 든 부처를 그린 괘불은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충청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확인되며, 비슷한 도상임에도 ‘노사나불’,‘미륵불’등 여러 존상으로 지칭된다.

'마곡사 괘불'은 본존 두광(頭光) 안에 구획된 붉은 방제(旁題) 안에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이란 존명이 적혀 있어 본존이 석가모니불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본존뿐 아니라 각 인물 옆에도 존명을 적은 방제(傍題)가 있다. 괘불에 그려진 35명이 누구인지에 방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 유사한 도상을 해석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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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민 2019-04-21 10:11:18
그림속에서 역사를 느끼고 좋은 정보 가지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