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포=왕진오 기자] 문익환 목사의 평양 연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소떼 방북 등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들로 기억되는 장면들이다.
불과 수십 년 전 사건과 함께 세월호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노란색 리본과 대한민국의 밤을 수놓았던 광화문 광장의 백만 촛불의 모습들은 일반인은 물론이거니와 예술가에게는 시대정신을 이야기할 때 우선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오브제들일 것이다.
서양화가 윤동천(60)이 자신의 거주공간인 광화문과 미디어를 통해서 듣고 보고 그리고 작업실 등에서 흔히 접했던 친숙한 오브제를 작품으로 꾸린 전시회 '일상_의'전을 12일부터 서울 삼청로 금호미술관 전관에 펼쳐놓았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사진에 망점으로 표현한 '위대한 퍼포먼스' 연작은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에 신문과 인터넷 등 대중 매체를 통해 보도된 주요 사건들이 액자에 걸렸다.
또한 광화문 광장의 촛불시위를 떠올리는 검은 바탕에 호주 원주민풍(Aborigine) 점묘화로 표현된 작업은 일상이 되었던 국민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아티스트의 기록으로 강인한 인상을 준다.
윤 작가는 정형화된 미술양식을 차용해 일상의 모습들을 재현한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사실주의, 표현주의, 모노크롬 추상 등을 연상시키는 6점의 회화와 39점의 드로잉으로 채웠다.
액자에 걸린 작품들은 고급 미술의 전형을 드러내지만, 그 소재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보도블록이나, 바닥에 눌어붙은 껌자국 등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소재들이다.
3층 전시장에 놓인 사물들은 관객들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일상용품들이다. 헤어롤, 밧줄, 짱돌, 변기의 물막이 볼 을 각각 또는 서로 엉켜놓았지만 작품 제목을 통해 현실에 대해 신랄하게 꼬집는 작가의 의도를 나타낸다.
특히, 최근 국정농단 최순실 사건과 관련해 유명해진 '염병하네'란 단어를 3개의 캔버스에 타이포 형식으로 설치해 눈길을 모은다. 또한 바로 옆 전시장 전체를 노란색으로 칠해놓는 공간에는 세월호를 상징하는 2미터짜리 대형 리본과 티베트 여행에서 들고 온 커다란 종을 통해 잊지 말아야 할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전시는 일상 속 정치·문화적 상황에 대한 언어적 유희와 신랄한 풍자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일상이 지닌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신작들이 다수 선보인다.
예술의 역사에서 '아름다움'은 정(正)의 형태이든 반(反)의 형태이든 오랜 시간 동안 다뤄져 온 주제이다. 윤 작가는 예술의 특권처럼 취급되어 왔던 이 아름다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를 통해 윤 작가는 예술과 일상의 통합이라는 기치 아래 아름다움과 동시에 전복의 가능성을 지닌 새로운 '일상'을 제시한다. 전시는 5월 1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