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의 기원,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국보 지정
고려청자의 기원,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국보 지정
  • 강옥선
  • 승인 2019.05.0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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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강옥선 기자]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우리나라 청자 제작의 시원(始原)이라 일컬어지는 보물 제237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를 국보로 지정했다.

국보 제326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사진=문화재청)
국보 제326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사진=문화재청)

국보 제326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靑磁 ‘淳化四年’銘 壺)'는 고려 태조(太祖)를 비롯한 선대 임금들의 제사를 위해 건립한 태묘(太廟)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된 왕실 제기(祭器)다.

굽 안쪽 바닥면에 돌아가며 ‘순화 4년 계사년 태묘 제1실 향기로서 장인 최길회가 만들었다(淳化四年 癸巳 太廟第一室 享器 匠崔吉會 造)’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993년(고려 성종 12년) 태묘 제1실의 향기(享器, 제기)로 쓰기 위해 장인 최길회가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는 1910년경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으나, 발굴경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으며, 일본인 소장가들을 거쳐 1957년 이화여대가 구매해 전해지고 있다.

이 항아리는 문양이 없는 긴 형태로서 입구(口緣)가 넓고 곧게 서 있으며, 몸체는 어깨 부분이 약간 넓은 유선형(流線形)이다. 표면에 미세한 거품이 있다.

비교적 치밀한 유백색의 점토를 사용해 바탕흙(태토, 胎土)의 품질이 좋다. 표면에는 은은한 광택과 함께 미세한 빙렬(氷裂)이 있고, 군데군데 긁힌 사용 흔적이 보인다.

국보 제326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바닥의 명문).(사진=문화재청)
국보 제326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바닥의 명문).(사진=문화재청)

이러한 특징은 1989년~1990년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가 황해남도 배천군 원산리 2호 가마터에서 발굴한 ‘순화3년’명 고배(’淳化三年‘銘 高杯)를 비롯해 여러 파편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역시 원산리 가마터에서 제작되어 태묘의 제기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는 현전하는 초기청자 가운데에서 드물게 크기가 큰 대형 항아리로 바탕흙(胎土)의 품질이 우수하고 형태가 비슷한 사례가 없는 유일한 작품으로서 주목된다.

굽 안쪽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제작연도, 기명의 용도와 사용처, 제작자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황해남도 원산리 가마터에서 발굴된 ‘순화’명(‘淳化’銘) 파편들과 비교해 고려 왕실 제기 생산 가마터를 비롯해 다양한 제작여건이 추가로 밝혀짐으로써, 초기청자를 대표하는 유일한 편년자료로서의 가치와 위상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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