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미학의 대명사, 장욱진 화백의 '화가의 집' 展 개막
간결한 미학의 대명사, 장욱진 화백의 '화가의 집' 展 개막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9.05.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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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나는 심플하다. 말은 내가 항상 되풀이해서 내세우고 있는 나의 단골말 가운데 한마디이지만 말을 큰소리로 외쳐 보고 싶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노라.”

나무, 캔버스에 유채, 33.5 x 24. (사진=롯데갤러리)
나무, 캔버스에 유채, 33.5 x 24. (사진=롯데갤러리)

한국근현대미술를 대표하는 화가 장욱진(1917~1990)의 ‘화가의 집’을 주제로 한 특별전을 롯데갤러리에서 선보인다. 한국적 정서를 서양 유화에 오롯이 담아냄으로써 전통의 현대화를 이룬 장욱진은 나무와 집, 아이들, 새 등 일상의 소박한 소재를 동화적이고 간결한 선과 구도, 독특한 색감으로 표현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장욱진은 집과 가족을 주제로 한 그림을 가장 많이 남긴 작가이다. 특히 작가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생전에 직접 자신이 설계하고 지었을 정도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작품의 주요 소재이자 삶과 예술철학이 담겨있는 장소였다.

그에게 ‘집’은 가족들의 화목은 물론 평안한 안식을 의미하는 곳이자,  중요한 창작 공간이기도 했다. 장욱진이 작품 속에서 그려내는 ‘집’은 ‘나는 심플하다’는 그의 말을 반영하듯 모두 단순하고 간결하다. 

‘집’을 중심으로 화면의 좌우 대칭과 균형 있는 화면분할, 형태의 단순미와 색의 절제미와 함께 친밀감 있게 표현한 인물과 동물들, 자연, 집이라는 공간이 서로 어우러져 소박하게 담겨 있다. 장욱진의 작품은 작은 그림이지만, 큰 그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유의 몰입도를 전달한다. 

가족도_캔버스에유채,7.5 x 14cm. (사진=롯데갤러리)
가족도_캔버스에유채,7.5 x 14cm. (사진=롯데갤러리)

한편, 전시는 이주 시기별 장욱진의 작품을 살펴보는 구성으로 마련된다. 덕소시대(1963∼1974), 명륜동시대(1975∼1979), 수안보시대(1980∼1985), 용인 마북리(신갈)시대(1986∼1990)로 나누어진다.

초기(1937~1962)에는 독특한 형태와 색채의 향토성은 50년대 들어 정돈된 형태와 경쾌한 색채를 띤다. 한국전쟁기에 그려진 ‘자화상’(1951) 등은 매우 서정적이며 평화로운 해학성을 나타내며, 60년대 초반의 ‘야조’(1961)는 본격적인 비대상적 추상의 전조가 된다.

덕소시기(1963~1975) : 정체성의 모색기이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독자적 스타일을 구축한 시기로, 초기에는 두꺼운 질감과 강한 붓터치의 추상 화면들이 처음 시도된다. 윤곽선으로만 표현된 ‘진진묘(1970)’, 단순화의 전조인 ‘손자(1972)’가 탄생하며, 후반기에는 수묵화적 유화가 나타난다.

명륜동시기(1975~1979) : 전통회화로의 경향성이 돋보인다. 또한 수묵화 기법과 도가적 소재를 통해 전통회화를 단순화시킨 시기이다. 덕소화실을 청산하고 다시 가족들과 살게 되면서 가족 초상화가 빈번하게 그려진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부인의 영향으로 절을 유람하면서 종교적 성향이 짙게 나타나며, 부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1976)’가 제작된다.

수안보시기(1980~1985) : 수묵화적 경향의 절정기이다. 산수화적 경향과 수묵화적 유화의 기량이 절정에 이르며, 실경 위주의 산수화가 제작되는 시기이다. 실제적 화면은 후기로 갈수록 점점 관념화 된다.

장욱진, 동물가족, 회벽에 유채, 209x130cm, 1964(원화제작년도).(사진=롯데갤러리)
장욱진, 동물가족, 회벽에 유채, 209x130cm, 1964(원화제작년도).(사진=롯데갤러리)

용인시기(1986~1990) : 종합화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먹그림풍 유화와 풍경이 줄어들고 점차 환상적이며 관념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며 파격적인 구도와 자유로운 표현이 최고조에 달한다.

특히 1990년도에는 늘 이야기하던 ‘삶이란 소모하는 것, 나는 내게 주어진 것을 다 쓰고 가야겠다’는 화두에 걸맞게 초탈한 경지의 작품을 남기고 간다.

1917년 11월 26일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장욱진 화백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그때 전국 규모의 소학생 미술전에서 대상을 받고 고등학교 때도 최고상을 받는다. 일제 시대 때 동경의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다. 

해방 직후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잠시 근무한 후,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봉직한 외에는 줄곧 한적한 시골인 덕소, 수안보, 용인 등지에 화실을 마련해 오로지 그림에만 전념했다.

그는 그림과 주도(酒道) 사이를 오가는 자유로운 무애의 삶을 살며 신명 하나로 그림을 그리는 장인으로 살기를 고집하는 그를 세상의 눈은 기인으로 여긴다. 앙가주망, 2.9동인전 외 주로 개인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장욱진, '화가의 집' 포스터.
장욱진, '화가의 집' 포스터.

그의 작품은 작은 캔버스 안에 간결한 대상의 처리와 조형성으로 밀도 높은 균형감을 느끼게 한다. 주로 주변 풍경, 가축, 가족을 소재로 다루었으며 그 안에서 유희적인 감정과 풍류적인 심성을 표출한다. 

기법면에 있어서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장벽을 넘나들며 우리의 전통을 현대에 접목시켜 조형적인 가능성과 독창성을 구현했다. 전업인 유화 외에 먹그림, 도화, 판화 등을 시도한 것은 자신의 실체를 끊임없이 새롭게 하려는 지극한 작가 정신의 발로이다.

작가가 남긴 그림 외에도 여러 권의 화집과 수필집‘, 강가의 아틀리에’가 있으며 유작전 및 회고전이 열렸다. 화가 장욱진은 평생을 자연 속에서 "나는 심플하다"를 외치며 심플한 삶을 통해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그림에 표현했다. 1990년에 작고한다.

본 전시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개관 5주년 기념 ‘SIMPLE2019:집’展과의 협력으로 준비됐다. 화가 장욱진은 “나는 누구보다도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그림을 통해 서로 이해된다는 사실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이다”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즉, 그의 그림은 ‘사랑의 언어’로, 그에게 ‘집’은 가족과 주변의 가까운 지인과 제자들과 함께 하는 자신의 삶을 위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곧 삶이자 작품이고 자신이었다.

전시는 4월 30일부터 6월 27일까지(본점 에비뉴엘), 5월 1일부터 5월 26까지(롯데갤러리 영등포점), 5월 30일부터 6월 30까지(롯데갤러리 청량리점)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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