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예술가 탐험기 9 '권순익 작가'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예술가 탐험기 9 '권순익 작가'
  • 권도균
  • 승인 2019.05.0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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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찰나의 순간을 그리는 권순익 작가의 사유의 틈'

예술이 철학자에게 지고한 의미를 갖는 것은 예술이야말로 가장 신성한 것을 철학자에게 열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가장 신성한 것에서는 자연과 역사로 분리되어 있던 것이 영원하고 근원적인 화합을 이루어 하나의 불꽃처럼 타오른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권순익 작'.
'권순익 작'.

틈이라는 단어는 공간적으로 벌어져 사이가 생긴 자리이고, 시간적으로 겨를이다. 틈은 공간과 시간의 존재성을 드러낸다. 틈은 공간과 공간, 시간과 시간,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구상과 추상, 사유와 사유의 경계선이다.

정신 세계는 말이나 글로 전하기 힘든 인식론의 세계다. 작가에게 틈은 인식이 전환되는 찰나의 순간이다. 작가는 틈이라는 화두를 캔버스에 풀어낸다. 찰나의 순간에 작가가 체험한 신비하고 황홀한 느낌을 틈이라는 형상을 통해서 관람자에게 이심전심을 유도한다.

권순익 작가는 세상을 보는 자신의 생각을 미니멀 추상화로 풀어내는 화가이다. 무아(無我)라는 화두에 천착하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불교의 무아는 시공의 세계에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자아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작가에게 무아는 몰아(沒我)다. 캔버스와 내가 하나가 되어서, 작업에 몰입하여 나를 잊어버린 상태다. 

'권순익 작'.
'권순익 작'.

어린 시절 문경 탄광촌에서 우연히 만났던 흑연이라는 재료는 황홀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흑연이라는 재료는 눈에는 검은색으로 보이지만, 빛을 만나면 반짝이는 속성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흑연이 갖는 검은색은 어둠이 아니라, 빛을 머금은 어둠이다. 이 빛을 통해 진리로 나아갈 수 있는 틈을 발견한다.

​작가는 작업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몰아의 상태에 도달한다. 몰아의 상태가 지속되면서, 시간과 시간 사이의 찰나의 순간에 망아(忘我)라는 희열의 경험을 하게 된다. 망아는 신비적인 내적 체험이다.

신 플라톤주의자인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는 망아(ecstasy)란 신성한 암흑이라는 초물체적인 빛에의 승화라고 말한다. 어쩌면 빛을 머금은 흑연과도 일치한다.

​작가는 틈이라는 화두를 태극권을 통해서 몸으로 부딪히고, 붓질을 통해서 마음으로 부딪힌다. 작업에 몰입하면서, 마음이라는 거울을 닦는다.

'권순익 작'.
'권순익 작'.

자신을 잊어버리는 행위를 통해서, 욕망과 번뇌의 때가 묻은 거울이 깨끗해지고 맑아지면, 세상과 자신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비추어지는 것이다. 작가에게 틈은 몰아 속에서 망아로 들어오는 찰나의 순간이다. 몰아와 망아의 경계선이 틈이다.

​흑연들의 작은 뭉침을 점들로 표현한 무아-그림자와 무아-신기루라고 이름 붙인 작품들이 미술 애호가들을 위한 묵직한 직구라면, 적연(積硏)-틈이라는 작품은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대중들을 위한 세련된 변화구다. 무아 작품에서 흑연이 주연이라면, 틈 작품에서 흑연은 조연으로서 재료의 일부일 뿐이다.

​작업의 방식은 적연(積硏)이라는 한자 제목처럼, 재료를 쌓고 갈고닦는 작업이다. 작업의 순서는 굵은 모래 성분 메디움 재료로 층층이 겹을 쌓고, 그 위에 고운 성분의 아크릴 재료를  입힌 후, 흑연으로  갈고닦아서 완성한다.

파스텔톤 색감은 따뜻함과 안정감을 준다. 시간을 정지시키는 정적인 느낌도 갖게 한다. 틈의 이미지는 조형적으로 세련된 감각을 보여준다. 작가에게 작업이란 마음을 갈고닦는 수행의 방편이다.

'권순익 작'.
'권순익 작'.

유영국 작가가 자연을 모티브로 하는 추상화를 그렸다면, 권순익 작가는 자신이 체험한 내면세계를 추상화로 표현한다. 추상은 형이상학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권순익 작가에게 추상화는 세상을 보는 작가 인식의 영역을 표현하는 것이다.

​한국 추상화의 새로운 진화 형태인 틈 작품은 서양 미니멀리즘의 한국적 해석인지도 모른다. 단순하고 간결한 미니멀리즘은 덜어내고 비우는 마음 수양의 요체일 수도 있고, 버림을 통해서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는 요즘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찰나의 형상인 틈은 순간의 깨달음인 돈오(頓悟) 일 수도 있다. 깨달음의 세계는 문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듯이, 틈이라는 형상을 보여줌으로써 깨달음의 세계는 구상 언어로 보여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작가의 인식의 깊이가 어떻게 진화하는지는 작품을 통해서 증명될 것이다. 작가는 아타락시아(ataraxia)의 세계를 캔버스에 표현하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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