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수행자, 박서보 화업 70년 여정 공개
멈추지 않는 수행자, 박서보 화업 70년 여정 공개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9.05.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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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박서보 화백의 화업 40주년을 기념한 회고전 이래 두 번째로 갖는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관에서 5월 18일부터 막을 올린다.

'5월 1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진행된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 설명회에 함께한 박서보 화백의 자신의 작품앞에 섰다'.(사진=이예진 기자)
'5월 1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진행된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 설명회에 함께한 박서보 화백의 자신의 작품앞에 섰다'.(사진=이예진 기자)

이번 전시에서는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의 미공개 작품 일부를 비롯해, 2019년 신작 2점이 최초 공개되며 1970년 전시 이후 선보인 적 없는 설치 작품 ‘허상’도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세계 무대에 한국 작가 전시를 조력한 그의 모든 면모가 총체적으로 공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개막을 앞둔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박서보 화백은 “아침에 머리에 난 두 개의 뿔을 자르고 왔다. 지금 내가 벌거벗고 서 있는 기분이다. 내가 살아온 모든것들을 다 드러냈기 때문이다. 내가 숨겨두고 싶었던 모든 세계까지 다 보여줄 수 있는 것, 그래서 이 회고전을 하게 되어 기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박서보(88)는 ‘묘법(描法)’연작을 통해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으며 평론가, 행정가, 교육자로서 평생을 한국 현대미술을 일구고 국내외에 알리는 데 힘써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설치된 작품과 함께한 박서보 화백'.(사진=이예진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설치된 작품과 함께한 박서보 화백'.(사진=이예진 기자)

박서보는 1956년 ‘반국전 선언’을 발표하며 기성 화단에 도전했고, 1957년에 발표한 작품 ‘회화 No.1’으로 국내 최초 ‘앵포르멜’ 작가로 평가받았다.

이후 물질과 추상의 관계와 의미를 고찰하며, 이른바 ‘원형질’, ‘유전질’ 시기를 거쳐 1970년대부터 ‘묘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래 한국 추상미술의 발전을 주도했으며 현재까지 그 중심에서 역할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온 박서보의 삶과 작품세계를 총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명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는 현대인의 번민과 고통을 치유하는 예술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묘법을 지속해 온 수행자와 같은 그의 70여 년 화업을 지칭한다.  

박서보 화백은 “난 남들하고 똑같은거 하기 싫어서 부단이 노력했다”며 “난 오기가 있고 집념이 있으니까”라며 그의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예술세계가 드러나는 말을 힘주어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설치된 작품 중 2019년 신작을 설명하고 있는 박서보 화백'.(사진=artinfo DB.)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설치된 작품 중 2019년 신작을 설명하고 있는 박서보 화백'.(사진=artinfo DB.)

이어 “이번 회고전이 모델이 될 것이다. 난 예술가들에게 말한다. 그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으면 무슨일을 하던 성공한다. 식을 줄 모른는 열정만 있으면 된다”며 "21세기 들어서면서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총기난사 사건들, 고시원 방화 사건 등을 지목하며, 지구 전체가 스트레스 병동화 된 것 같다. 내 그림은  흡인지가 되어야 한다. 이번 신작은 강한 컬러감은 다 뺐다”고 덧붙였다.

또한, 박 화백은 “아날로그 시대에는 작가 자신의 일방적인 생각들을 캔버스에 쏟아 냈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그림이 스트레스를 빨아들이는 ‘흡인지’가 되어야 한다. 그림을 보면 마음이 안정이 되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거는 내가 절대로 팔지 않을꺼야. 1000만 달러를 준대도 안팔아.” 

박 화백은 아직도 뇌경색을 앓고 있어 몸의 거동이 수월하지 않지만 내 스스로의 작업을 통해 치유하려고 조수도 쓰지 않고, 하루에 10시간씩 그림을 그려 신작 2점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신작 ‘묘법(描法)’에 대한 남다른 애정의 속내를 들어내며 열정적으로 작품 설명을 이어갔다.

박서보 허상 시리즈 '허의 공간'설치 모습.(사진=artinfo DB.)
박서보 허상 시리즈 '허의 공간'설치 모습.(사진=artinfo DB.)

전시는 박서보의 1950년대 초기 작품부터 2019년 신작까지 작품 및 아카이브 160여 점을 다섯 시기로 구분해 선보인다. 

▲‘원형질’시기는 상흔으로 인한 불안과 고독, 부정적인 정서를 표출한 ‘회화 No.1’(1957)부터 1961년 파리 체류 이후 발표한 한국 앵포르멜 회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원형질’ 연작을 소개한다. 

▲‘유전질’시기이다. 1960년대 후반 옵아트, 팝아트를 수용하며 기하학적 추상과 한국 전통 색감을 사용한 ‘유전질’ 연작과 1969년 달 착륙과 무중력 상태에 영감을 받은 ‘허상’연작을 소개한다. 

▲‘초기 묘법’시기이다.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해,  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하고 연필로 수없이 선긋기를 반복한 1970년대‘연필 묘법’을 소개한다. 

▲‘중기 묘법’시기이다. 1982년 닥종이를 재료로 사용하면서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해 한지를 발라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 붙이는 등 행위를 반복해 ‘지그재그 묘법’이라고도 불린다. 무채색의 연필묘법에서 쑥과 담배 등을 우려낸 색을 활용해 색을 회복한 시기이기도 하다.

▲‘후기 묘법’시기이다. ‘색채 묘법’이라고도 지칭하며, 1990년대 중반 손의 흔적을 없애고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로 일정한 간격으로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 깊고 풍성한 색감이 강조된 대표작을 볼 수 있다.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전경.(사진=국립현대미술관)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전경.(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준비한 국립현대미술관 박영란 학예연구사는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 박서보 선생님은 이번 회고전을 기획함에 있어 세부적 치밀함을 보여주셨다”며“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교육문화팀원들과 함께 연구한 장애·비장애인 모두 참여 가능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박서보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국제학술행사’(5월 31일), ‘작가와의 대화’(7월 5일 예정), ‘큐레이터 토크’(7월 19일) 등이 개최된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홈페이지를 통해 참여 신청할 수 있다. 

전시 기간 동안 박서보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작가가 추구한 ‘수행’의 태도를 느껴볼 수 있도록 관객 참여 워크숍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묘법 NO. 43-78-79-81’(1981)을 따라 관객이 직접 묘법을 표현해보는 ‘마음쓰기’, 자신만의 공기색을 찾아서 그려보는 ‘마음색·공기색’이 진행된다. 

한편 CJ프레시웨이가 운영하는 미술관 교육동 1층 푸드라운지 미식에서는 박서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박서보 특별 메뉴’를 선보인다. ‘자연에서 온 건강한 메뉴’를 콘셉트로 한 계절국수 2종과 음료, 디저트 등을 전시 기간 동안 즐길 수 있다. 

작업 중인 박서보 화백.(사진=안지섭,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작업 중인 박서보 화백.(사진=안지섭, 제공=국립현대미술관)

그는 1931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56년 김영환, 김충선, 문우식과 함께 ‘4인전’을 통해 반국전 선언을 발표, 한국미술의 전위적 흐름을 이끌며 앵포르멜, 단색화의 기수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온 미술가로 평가받는다. 

또한 ‘파리비엔날레’에 한국이 참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계기로 한국미술의 해외 무대 진출과 국내에 서구미술 동향을 알리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학장을 역임했고 미술 교육 혁신에 힘썼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1977∼1979),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고문(1980)을 지내며 한국 현대미술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국민훈장 석류장(1984), 옥관문화훈장(1994), 은관문화훈장(2011)을 수훈했다. 1994년 서보미술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은 “한국현대미술사의 살아 있는 역사의 축이신 박서보 선생님의 이번 회고전은 선생님의 모든  예술세계가 돋보이는 전시가 될 것이고, 이 울림이 전 세계로 울려퍼지길 바래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9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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