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2017 대구 이야기 3'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2017 대구 이야기 3'
  • 권도균
  • 승인 2017.11.14 17: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아트스페이스H] 천천히 움직인다고 방심했던 시곗바늘이 서울로 향하는 KTX를 타라고 한다. 어느새 5박 6일의 대구 아트 페어가 끝나버린 것이다.

'2017 대구아트페어에 참가한 아트스페이스H 부스'.(사진=왕진오 기자)
'2017 대구아트페어에 참가한 아트스페이스H 부스'.(사진=왕진오 기자)

수 년째 여러 번의 아트 페어를 참가해서 이젠 익숙해질 만한데도, 아직도 마지막 날 철수를 하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을 많이 팔았던 아트 페어에서조차도 허무감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작품을 설치하고 느끼는 아트 페어 첫날의 행복감은 철수를 위해 탑차에 작품을 싣는 마지막 날이 되면 늘 아쉬움으로 바뀐다. 아마도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벗어나 작가와 갤러리스트를 위한 즐거운 축제를 즐기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아트 페어의 장점은 그동안 못 만났던 작가들, 갤러리스트들, 컬렉터들, 심지어는 운송업체 분들까지도 한 공간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예술 작품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컬렉터들은 대부분 마음이 따뜻해서, 한번 인간관계를 맺으면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아트 페어에서 만나면 무척 반갑다.

난생 처음 키아프 아트 페어에 참가했었던 때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작품을 파는 것을 염두에 두고 참가했던 것이 아니어서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아트 페어라는 축제를 마음껏 즐겼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아트 페어에서 수많은 관람객들을 만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었다.​

아트 페어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하고, 마음이 무척 조급하고 초조해진 적도 있었다.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하는 느낌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아트 페어에서 느끼는 기다림과 인내심 그리고 표정 관리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점점 베테랑이 되어가는 것인지는 몰라도 작품이 안 팔려도 마음이 크게 출렁거리지 않는다. 이번 대구 아트 페어에서는 마음 변화가 거의 없었던 점이 값진 수확이다.​

미술계의 재밌는 특징 하나는 작가의 성공이나 작품의 판매가 마치 동전 뒤집기 같은 느낌이라는 것이다. 하루아침 또는 한순간에 동전의 뒷면이 앞면으로 뒤집히는 것 말이다. 행운이라기보다는 인내와 노력이라는 행위의 결실로 동전이 뒤집힌 것임을 당연히 알고 있지만.​

무명이었던 작가가 하루아침에 성공하기도 하고, 마지막 철수 한 시간 전에 대형 작품이 팔려서 수익을 낼 수도 있다. 야구 9회 말 투아웃 풀 카운트에서 나오는 역전 홈런이나, 축구에서 후반 인저리 타임에서 나오는 극적인 골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중하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동양 사상에서 말하는 마음 수양이라고 자위한다.

아트 페어 기간 내내 작품값 문의는 무척 많았지만, 마지막 날 아침까지 작품이 실제로 하나도 팔리지는 않았다. 아주 작은 소품을 사주기로 한 친구 부인의 친척인 의사 선생님 부부가 실제 결제를 아직 안 했기 때문이었다. 대구가 처음이라 아는 컬렉터는 전혀 없었다.​

마침내 약속했던 아침 11시쯤 의사선생님 부부가 오셨다. 엽서 이미지만 보고 사기로 한 소품에는 관심이 없고, 정면 벽에 걸린 녹색 숲 작품 하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하이경 작가의 양재천이라는 작품이었다. 북촌 갤러리 시절 신진 작가 공모전을 통해 알게 되었던 작가다. 그동안 서로 연락을 안 하다가 내년 초대전을 계기로 다시 인연을 맺게 되어서, 겸사겸사 아트 페어도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여자 의사선생님은 작품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입가에는 커다란 미소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다만 구입하기로 한 소품보다 다섯 배나 비싼 작품값 때문에 망설이는 눈치였다. 작품을 보고 행복하시다면, 그 작품을 사시는 것이 좋습니다.

나에게 행복을 주는 작품이 진정으로 좋은 작품이 아닐까요? 이렇게 값비싼 작품을 사는 것이 처음이라 무척 망설여지네요. 다른 부스를 좀 둘러보면서 살지 말지를 고민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예술 작품값은 싸다면 싸고, 비싸다면 비싼 것이다. 자동차나 티브이 같은 공산품은 가격을 예측하고, 어떤 제품을 살까를 고민한다. 하지만, 예술 작품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라서, 어림 짐작은 할 수 있어도, 정확한 가격을 비교해볼 대상이 없다.

그래서 싸다고 생각할 수도,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삼십여 분쯤 시간이 흐르자, 여자 의사 선생님 혼자 오셨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없이 작품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