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2017 대구이야기 7'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2017 대구이야기 7'
  • 권도균
  • 승인 2017.11.19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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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만일 예술 작품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예술 작품 대신 쉽게 현금화가 가능한 주식, 펀드, 금, 외환,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예술 작품만큼은 재테크의 수단이 아닌, 그냥 행복을 주는 아름답고 가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 예술 작품을 구입하는 의도가 조금 순수해지면 좋겠다.​

'2017 대구 아트페어 현장'.(사진=아트인포)
'2017 대구 아트페어 현장'.(사진=아트인포)

예술가 팔자로 태어나, 힘들고 가난한 삶을 감내하면서도 작업을 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예술가들을 후원한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예술가들과 놀다 보니, 어느새 나도 예술가 팔자 닮아 가는 것 같아서 삶이 고단해짐을 느낀다.​

예술 작품을 보면서 행복하다가, 혹시 자연스럽게 작품값이 오르면 좋고, 아니더라도 작품을 즐겼다면 충분한 것이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고가의 외제 자동차는 순간을 즐기는 소모품에 불과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제한된 시간의 행복을 위해서 주저 없이 산다. 하지만 예술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은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다. 혹시 변한다면 작품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몇 년 전에 아내가 온라인으로 주식을 거래한 적이 있었다. 조금 하다가 싫증을 낸 아내 대신 꼬박 2년 동안 주식매매를 해본 적이 있다. 주식매매를 배운 적 없이 혼자 연구해서 해본 주식 투자였지만, 아주 적은 자본으로 시작한 투자의 최종 결과는 500만 원 정도의 수익이었다.

2년을 시간 낭비해서 고작 500만 원이라니. 시간과 노력에 대한 대가로서 너무 미미한 결과였다. 혹자는 원금을 손해 안 본 것만도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주식에 소중한 시간을 쓰는 것이 너무 아깝게 느껴져서 주식을 접었다. 예술 작품은 행복을 주지만, 주식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소자본의 개미 투자자는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예술 작품을 파는 것은 행복을 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짜 갤러리스트 시절에는 예술에 관한 무식함과 베짱이 있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작품을 잘 팔았었다.

그 이후 미술을 알면 알수록, 과연 내가 진정으로 좋은 작품을 선별해서 팔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판매에 관한 자신감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익만을 위해서 수준 낮은 예술 작품을 팔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

예술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예술성과 미술투자 그리고 작가에 대한 애정 등 다양한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작품 판매를 투자 관점으로만 바라보게 되었다. 값이 오르는 브랜드 작가의 작품을 팔면서 으쓱했던 적도 있었다. 컬렉터에게 미술 투자를 통한 이익을 얻게 해주고 싶은 욕구가 강해져버린 것이다.​

이제는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어떤 작품이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행복을 준다면, 무명작가의 작품이라도 자신 있게 사고팔아도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작품 구입을 통해서 얻어지는 투자 이익보다, 작품 그 자체가 컬렉터에게 주는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물론 다양한 예술 작품을 소개할 때, 기본적으로 작품성을 갖춘 작품을 선별해서 추천하는 것은 갤러리스트의 중요한 역할이자 의무다. 갤러리스트는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눈이 필요하다. 마치 타격하기 좋은 공을 잘 식별하는 야구 선수의 선구안처럼.

대구 아트 페어에 참여하면서,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고민했다. 아트 페어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작품성보다 작가에 대한 따뜻한 배려심이 우선시된다면, 결국 작가, 갤러리 그리고 컬렉터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는 좀 더 엄격한 기준과 잣대로 필터링 한 작품들만을 아트 페어에 선별해서 걸어야겠다. 물론 나에게는 특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대구에서 대학을 다녔던 친한 갤러리 대표가 이야기해준다. 대구라는 도시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대구에서는 의사나 법률가 같은 다양한 전문직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예술에 관심을 둔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지성인이라면 예술에 관심을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생의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행복하고 장수하는 이유 중 하나가 와인을 마시면서 예술을 논하기 때문이란다.

혹시 대구 의사분들은 예술 작품을 구입해서 병원을 갤러리처럼 꾸미는 것이 경쟁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년 대구 아트 페어에 참가하게 되면, 짬을 내서 컬렉터들의 병원을 한번 가보고 싶다. 예술 작품 구입에 관해서 보이지 않는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대구를 기점으로 한국 미술의 붐업이 시작되지 않을까?​

타인의 눈을 의식하고, 남따라 하기를 잘하는 한국인의 습성을 좋은 방향으로 바꾼다면,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문화 예술 관련 자랑하기 같은 것 말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KTX 좌석에 앉아서, 다른 도시도 대구처럼 구입한 예술 작품 자랑하기 경쟁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상상해본다. 벌써부터 내년 대구 아트 페어가 몹시 기다려진다. 씹는 맛이 있는 담백한 대구 막창이 또 먹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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