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심심하게 쓴 아트 토크 2'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심심하게 쓴 아트 토크 2'
  • 권도균
  • 승인 2017.11.2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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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H] 살바토르 문디의 낙찰자는 어떤 사람일까? 1억 달러에 시작한 경매는 19분 만에 4억 달러로 호가를 단번에 높인 익명의 전화 응찰자에게 돌아갔다.

알렉스 카츠, '무제'. Oil on board, 40.6×30.5cm, 2008.(사진=서울옥션)
알렉스 카츠, '무제'. Oil on board, 40.6×30.5cm, 2008.(사진=서울옥션)

예술에 대한 애정보다는 부의 힘을 보여주는 과시의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낙찰자는 진정으로 예술적 가치 추구만을 위해 구입했던 것이었을까?​

1억 2천7백만 달러에 작품을 구입해서 4년간 소장했던 러시아 컬렉터가 경매 시작가 1억 달러를 수락했으니, 본전이라도 건지겠다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엄청난 투자 가격에 비견할 만큼, 작품이 행복을 주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크리스티 쪽은 판매자와 구매자에게서 받는 엄청난 경매 수수료의 액수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고 한다.​

심리적 관점에서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개인이 15호 사이즈(45.4㎝×65.6㎝)에 불과한 그림 한 점에 5천억을 쓸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작년 한 해 한국 미술 시장의 거래 규모가 5천억 원이라니, 우리나라의 미술 시장 규모와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교수님의 재산이 5조라고 가정한다면, 재산의 10퍼센트인 5천억을 작품 하나 구입에 쓸 수 있을까요? 난 쓸 수 있을 것도 같은데. 100억 원짜리 작품 50개를 산다면 모를까, 단 하나의 작품에 5천억 원을 쓸 배짱 있는 사람 찾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낙찰자의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요?​

세계 부자 1위를 알아봤다. 2017년 11월 19일 기준, 1위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조스 105조 5천억 원, 2위 빌 게이츠 97조 원, 3위 워런 버핏 86조 원, 4위 의류 브랜드 자라 설립자 82조 원, 5위 마크 저커버그 81조 원이다.

5위안에 드는 부자 정도 되면, 작품을 구입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24조 4천억 원으로 37위에 오른 이건희 회장이 이 작품을 샀다면, 삼성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해외에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 환수에 돈을 쓰라고 말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돈을 모아 투자한 것은 아닐까? 개인이 아닌 다수의 결정이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5천억 원으로 작품값을 키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작품값이 너무 비싸져버려서 미래에 리세일 할 경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미술을 전혀 공부하지 않은 사람 관점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얼마나 대단한 화가인지는 몰라도 수많은 예술가들과의 작품값 격차가 너무 커져버렸다. 예술 작품 한 점이 5천억 원이라는 것은 자본주의가 예술을 지배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 같다.

작품이 예상 밖 고가로 팔린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문화유산으로서의 유물 가치에 대한 존경심이라기보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브랜드 때문일 것이다.

다빈치라는 브랜드를 빼고, 작품이 주는 순수 예술적 가치만을 따진다면 액수가 너무 과한 것 같다. 어쨌든 서양 문화 강대국들과 부자들이 서양 미술의 문화적 우월성을 경제력으로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서양의 미술 시장의 규모에 비해서 너무도 초라한 한국의 미술 시장을 보면서, 서양 미술 관계자들에게 한국 예술가들은 미술계 변방의 문화 약소국 작가들이라는 평가와 대우를 받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슬퍼졌다.

대구 신세계 백화점 중앙 로비에 가면,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의 1996년 제작된 길이 8미터, 높이 3미터의 브론즈 작품 거미가 설치되어 있다.

비슷한 크기의 작품이 2015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가가 2816만 5천 달러라니, 현 달러 환율로 310억이 넘는 금액이다. 정확한 구입가는 모르겠지만, 무척 고가일 것이다. 이러한 고가의 예술품을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공개하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 고가의 브론즈 조각품을 하루 종일 지켜보고 감독하는 직원이 한 명 있다. 오래전에 유명한 조각가 친구가 말한 적이 있다. 조각품은 그림과 달리 살짝 만져봐도 된다고. 만져도 작품에 별로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고가의 작품에 손대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일생 동안 조각품 한 점을 지키는 일만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다양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돈이 주는 힘을 실감한다.

​대구 아트 페어 기간에 친한 미술 관계자를 페어 현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서울 옥션 대구 신세계 미술품 경매를 보러 온 김에 들렸다고 했다. 늘 자신감 넘치는 그녀를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그녀의 관심사는 추후에 5000만 원에 낙찰된 알렉스 카츠의 6호 작품을 살지 말지였다. 한국 작가도 제대로 잘 모르고 한국 작품 파는 것도 힘에 부쳐서, 외국 작가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래서 솔직히 알렉스 카츠를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도록을 펼친 후 작품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첫눈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낌이 좋았다. 단순하고 간결하며, 색감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외국 유명 작가라는 선입견이 작용한 것일까? 옆에 있던 큐레이터한테 물었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이렇게 그릴 실력이 왜 안되냐고? 유명 작가라는 선입견을 갖고 작품을 보니, 확실히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1927년생 알렉스 카츠의 인물화 작품을 얼핏 보면, 소재 자체는 무척 진부하다. 한국 미대 학부나 대학원 졸업전에 가보면 가끔 만날 수 있는 그림의 소재다. 하지만 한국 작가들과의 미묘한 느낌의 차이를 배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세계 기능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많이 따는 우리나라의 사람들의 손재주를 인정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아직도 정형화된 교과서식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아닐까? 그리고 독창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술계도 화랑들이나 컬렉터들의 천편일률적 정형화된 작품 선호 때문에,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예술가들의 차가운 현실인지도 모른다. 과연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이러한 문제점들을 제대로 바꾸어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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