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심심하게 쓴 아트 토크 3'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심심하게 쓴 아트 토크 3'
  • 권도균
  • 승인 2017.11.25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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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집에 가기 위해 갤러리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버스를 갈아타려고, 대학로 동성 고등학교 앞 정류장에서 내린다. 버스를 내리면 정류장 바로 앞에, 벤치 역할을 하는 자그마한 조형물이 눈에 띈다.

'부산비엔날레 출품 조각'.(사진=왕진오 기자)
'부산비엔날레 출품 조각'.(사진=왕진오 기자)

브론즈로 제작된 벤치 작품인데, 벤치 양옆에는 넥타이를 휘날리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두 남자가 벤치를 붙들고 있는 형상이다. 어떤 조각가 작품인지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다. 요즘 조형물의 특징 중 하나는 실용성, 즉 의자나 조명 기능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처음 이 조형물을 보았을 때, 인물 형상 조각으로 유명한 친한 여자 조각가 김경민의 작품인 줄 알았다. 물론 컬러플한 채색이 특징인 김경민 조각과는 달리, 브론즈 색 그대로 표현한 차이가 있지만.

대학로 방향으로 조금 걷다 보면, KFC 건물 앞에서 오채현 조각가가 돌로 만든 귀여운 호랑이 조각도 만나게 된다. 이렇듯 서울 도심 길거리를 걷다 보면 다양한 공공 조형물과 조우하게 된다.​

간혹 시선을 사로잡는 멋진 조형물은 기분을 좋게 만들기도 하고, 아는 작가 작품을 만나면 반갑기도 하다. 하지만 비바람에 색칠이 벗겨지고 낡아져서, 보수나 폐기가 필요한 흉물이 된 작품들은 눈을 거스르게 만들기도 한다.

지하철 한성대역에서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생태하천을 걷다 보면 다양한 조각 작품들을 보게 된다. 작품들은 대학이나 대학원생들이 적은 예산으로 만든 것이라고 짐작되는 작품들이다.​

처음 설치했을 때는 나름 괜찮았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작품들의 모습이 변해버린 듯하다. 특히 저렴한 재료를 쓰다 보니,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 같다.

이러한 조각 작품들은 정비 내지는 폐기하는 것이 도시 미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외부에 설치되는 공공 조형물은 몇 십 년 앞을 내다보고, 신중히 결정하고 설치해야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이야기다. 미술계 절친인 조각가 김성복 교수와 제자들과 함께 성곽 길 산책을 한 적이 있었다. 김 교수 덕분에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조각가들은 대부분 만나보았다. 특히 갤러리 가나 소속이면서, 한국조각가 협회장인 한진섭 조각가는 우연하게도 고등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이셨다.

김 교수 일행과 함께 삼청공원에서 출발하여 부암동을 거쳐서 청와대 앞길을 걷게 되었다. 청와대 앞 분수대 조형물을 본 김 교수가 한 제자에게 말을 건넨다. 저기 보이는 조형물 수리 복원하려면 얼마의 돈이 들어갈까? 교수님, 최소 몇 억은 들 듯하네요.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서, 수리 복원에 시간과 돈이 좀 들 듯합니다.​

미국 백악관처럼 청와대 앞을 개방한 이후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청와대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칠이 벗겨지고 낡아버린 청와대 앞 조형물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저며온다. 멀쩡한 도로나 파헤치지 말고, 저렇게 외면받고 있는 조형물 수리에 종로구나 서울시의 재정을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공 조형물 일을 몇 번 관여해본 입장에서 이 분야에 대해서 조금은 아는 지식이 있다. 하지만 공공 조형물 규정이 갖고 있는 장단점을 여기서 논하는 것이 조각가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다만 단점을 보안해서, 조각가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는 1984년 예술 조형물 설치를 규정한 법인, 문예진흥법 건축미술장식 조항을 제정했다. 1만㎡이상의 건축물에 건축비의 1퍼센트를 예술 작품 구입에 사용해야 한다는 권고사항은 1995년 7월부터는 의무사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1퍼센트의 비율은 2000년부터 0.5~0.7 퍼센트로 하향 조정되었다.​

예술 발전에 도움을 주려고 만들어진 이 법에 따르면, 설치 작품이 조각뿐 아니라 회화나 사진 또는 벽화도 가능하다. 하지만 건축주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분실의 위험이 적고, 관리가 수월한 조각 작품을 선호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소외받는 조각 분야가 그나마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북촌 갤러리 시절 전시 공간이 넓어서, 1층 전시에 지게차를 동원해서 대형 조각 작품을 몇 번 설치해본 적도 있을 만큼, 조각가들의 전시 지원을 많이 했었다. 회화 분야와는 달리, 조각 작품은 상대적으로 수요가 많지 않다. 갤러리 전시나 아트 페어에서 조각 작품을 팔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의 조각가들은 공공 조형물 쪽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조각가의 작업실에 가보면, 많은 수의 다양한 크기의 조각 작품들이 보관되어 있는 수장고를 보게 된다. 조각가는 회화 작가들과는 달리, 작품 재료비 구입에 지출되는 돈이 엄청나다. 전시가 끝나고, 안 팔린 작품을 보관할 장소도 커야 한다.​

조각 작업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먼지 탓에, 조각가들의 작업실은 서울 외곽 경기도 쪽으로 자꾸 내몰린다. 늘 수술을 해야 하는 외과의사 지망생들 숫자가 줄어들 듯이, 힘든 막노동을 방불케 하는 조각가 지망생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조각가들의 삶 역시 다른 예술가들 못지않게, 어쩌면 더 힘들고 고단하다.​

결론적으로 공공 조형물 설치법은 반드시 필요하고,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바란다. 다만, 이 법을 운용하는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너무 짧은 기간 안에 졸속 공고를 내고 심사와 심의해서 설치하는 것은 요식행위 같아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좋은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서 시간적 여유와 다각적인 심사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소수의 특정 조각가나 조각 설치 업자들의 독점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국 조각 발전을 위해서 조각가들과 관계 공무원들 그리고 미대 교수들이 힘을 모아 자신의 이익보다는 한국 예술 발전을 위한 제대로 된 길을 모색해야 할 때는 아닌지 생각해본다. 멋진 조각 작품들이 서울시와 전국 도시를 아름답게 만든다면, 내일의 한국 미술은 기대해 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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