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심심하게 쓴 아트 토크 4'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심심하게 쓴 아트 토크 4'
  • 권도균
  • 승인 2017.11.27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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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영국에 유학할 때, 처음 몇 년간은 우리나라의 연립주택이나 빌라와 비슷한, 방 두 개가 있는 3층 건물 플랫(flat) 2층에 살았다. 보통의 영국인이라면 잔디밭이 있는 주택을 선호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처드 해밀턴 전시장 모습.(사진=왕진오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리처드 해밀턴 전시장 모습.(사진=왕진오 기자)

하지만 주택에 살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은 돈을 모을 때까지 플랫에 산다. 플랫에 살면 유일한 단점이 층간 소음 정도일 뿐 커다란 불편은 없다. 2층 옆집에는 전형적인 영국인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의 직업은 화가였다.​

미술계에서 일을 할 줄 알았다면, 영국 미술계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하였을 것이다.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영국 예술가들은 경제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가장 먼저 질문했을 것이다. 옆집 할아버지는 그림이 잘 팔리지 않는 지역 작가임에도, 좋아하는 그림을 평생 그리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처럼, 사회보장제도를 처음 도입한 영국에서는 분명히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법과 제도를 통해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 작품을 즐겨 구입하는 영국에서 예술가로서의 삶은 우리나라만큼 힘들지 않을 것이다.​

예술가는 왜 가난할까? 가난해야만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가난해야만 진정한 예술가가 되는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집안이 부유한 경우가 아니라면, 예술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같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동갑내기 공대생과 미대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공대생은 삼성전자나 엘지전자에 취직을 한다. 미대생은 예술가의 길을 추구한다.

공대생은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을 한다. 공대생은 열심히 일한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이 돈으로 삶을 나름 만족하며 살아간다. 공대생은 사회에서 인정받는 어엿한 직장인이 된 것이다.​

미대생은 밤새도록 죽기 살기로 그림만 그린다. 그림값은 10호 사이즈 50만 원 정도이다. 갤러리 커미션 없이 작가가 직접 판다고 가정해보자. 최소한 6개를 팔면 300만 원이다.

이 돈으로 미술 도구와 재료도 구입하고, 작업실 임대료도 납부하면 빠듯한 생활이 된다. 이 정도라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매달 6개씩 꾸준히 작품을 파는 게 무척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림을 팔아본 사람이라면 금세 알 수 있다. 결국 미대생은 백수가 되는 길을 스스로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예술 작품이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또한 집에 걸어놓은 작품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욱이 컬렉터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어린 작가의 아직 미성숙한 작품을 싼값에 살바에는, 돈을 더 보태서 프로 작가의 좋은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예술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쉽게 도출된다.​

부모의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린 예술가들은 현실적 생계를 위해서 미술 관련 아르바이트 일을 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 수밖에 없게 된다. 능력에 따라서 금세 유명해지는 젊은 작가들도 있고, 성공한 뒤에 돈을 많이 버는 부유한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논점은 상위 10퍼센트 작가가 아닌 나머지 90퍼센트 작가들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다.​

가난함 속에서 진정한 예술이 꽃 피는 것일까?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은 작가를 작업에 매진하게 만들기도 하고, 현실과 타협해서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학 졸업 후, 최소한 20년쯤 반복되는 붓질이나 망치질을 해야만, 비로소 실력을 갖추게 되고 본격적으로 예술가로서 프로다운 작품이 탄생된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까지 버틸 수 있는 정신력과 인내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가난과 싸우면서 버티는 20년은 참으로 험난한 여정이다.​

가난함 자체가 예술을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가난함과 싸우고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이루어낸 예술 작품 속에서, 한 사람의 일생의 삶과 진정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치 겨울을 이겨내고 눈 속에서 활짝 피어난 매화처럼. 지난 십 년간 힘든 작가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한마디 한다면,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조차도 예술가들에게는 커다란 힘이 된다는 점이다.​

국가 공무원이나 회사 직원을 채용할 때, 미대생 우대를 해줄 수 없을까? 도시를 예술적으로 꾸미려면 예술적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도 예술적 재능을 가진 직원은 다양하게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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