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태석, '초록 나무 숲으로의 초대'
주태석, '초록 나무 숲으로의 초대'
  • 진오성
  • 승인 2017.11.2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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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진오성 기자] 주태석의 작품은 솜사탕 처럼 달콤하고 5월의 장미 처럼 향기를 자아내는 살아 있는 꽃의 형상과도 같이 우리에게 자연의 푸르름을 음미하듯이 은근한 색채로 유혹한다.

'주태석 작가'.
'주태석 작가'.

그의 작품은 자연의 풍경을, 다시 말해서  깊은 산속에 무성하게 자라나는 나무를 사실주의  기법에 의거하여 묘출하고 있다. 그가 표현하는 나무 들은 일상 따분하고 지루한 미술 교과서의 지루한 고전주의 사실주의 기법을 현대에 재현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현실 감각에 따라 재 창조된 그 만의 사실주의를 펼쳐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 제작의 과정은 특정 부분의 확대와 축소, 실존감 과 일루전 사이의 대조와 대상을 기계 공학적을 처리한 것 같은 이미지 묘사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연의 이미지를 자연 그대로 담아내는 주태석의 작품은 자연과의 교감을 강조함으로써 현대 사회 속에서 자칫 몰수 되어 지는 인간의 감수성을 깊은 산 속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계곡에서 떨어지는 이슬의 방울과도 같이 그 의미를 담아 내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리얼리즘 회화의 새로운 변주

70년대의 모노크롬 회화에 가려진 극사실주의 회화는 일부 진보적인 젊은 작가들만의 언어로 통용되었으며, 80년대 이념 갈등이 극에 이르렀을 때에는 침묵의 화면으로 그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하는 시기 였다. 90년대에 들어서서야 다원주의적인 분위기가 고조되고, 그 동안 확보한 대중성을 발판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됐다.

이러한 한국의  극사실주의 회화를 선도해온 작가들 가운데 주태석이라는 이름은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이름이었다. 일찍부터 기차 레일의 정밀하고 집요한 묘사를 통해 구축된 엄정 한 중성적 화면은 우리 극사실주의의 한 전형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그가 80년대 말부터는 새로운 변신은 시도하여 비로소 자기 양식을 일구어내게 된 것이다.

주태석, '자연, 이미지'. 65x130cm, 2008.
주태석, '자연, 이미지'. 65x130cm, 2008.

이제는 극사실 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무색할 정도의 변모에 접해 있어, 우리는 그의 새로운 모습을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일찍이 추상주의의 마법을 이겨내고 아울러 경험주의에 입각한 리얼리즘 회화의 기계적 재현이라는 맹목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의 인식은 마땅히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극사실주의는 미국과 비교하였을 때 몇 가지 공통점과 상이한 점을 지닌 채 뿌리를 내리게 됐다.

우리 의 경우는 감각이나 관념을 상당량 용해 시키고 있으며, 미국 극사실주의 방법을 보다 언어 적으로 가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확연한 차이를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고영훈, 김강용, 이석주, 주태석, 지석철 등으로 대표되는 이 화풍은 그 원조라 일컬을 만 한 척 클로즈나 필립 펄스타인, 맬콤 몰리, 에스테스 등의 것들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의 극사실주의는 어떠한 배경을 지니고 있었던가. 우리의 교육환경이 대체로 데생 중심의 묘사력을 강조한 것임을 감안했을 때, 그것의 확산력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즉 구상(具象) 전통이 체질화된 많은 우리 작가들에게 극사실주 의는 그것의 이념보다는 양식 혹은 방법 자체가 더 커다란 흡인력을 가지게 된다.주태석이 자신의 형상성 선택에 대한 해명을 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 근접해 있다.

자연의 느낌을 포괄적으로 형상화

"그림은 체질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체질을 찾고 그 체질에 맞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기보다는 주위에 너무 민감해 쉽사리 '자기 찾기'를 잊어버리고…우리는 본질을 외면하고 너무나 형식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그 스스로 발견한 자신의 체질은 형상성에 있음을 확인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는 70년대 후반부터 '사실과 현실전展' 동인으로 활약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언급은 자신의 그림이 극사실주의 이념 자체보다는 보다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요인들에 기인하고 있음을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체질이 무엇일지 대충은 짐작이 간다. 즉 그가 오래 전부터 형상을 통한 언어에 아주 익숙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태석, '자연.이미지. 50x100cm,acrylic on canvas, 2007.
주태석, '자연.이미지. 50x100cm,acrylic on canvas, 2007.

앵포르멜이니 미니멀이니 하는 사조들이 화단의 영향력을 장악하고 있는 때, 숱한 갈등을 겪으면서도 그 언어를 버릴 수 없었던 이 유는 자명하다. 대상에 대한 육안의 접근과 경험, 그리고 조응의 결과가 곧 형상인 것이다. 그렇다고 작가 입장에서 그것을 기계적인 자연주의적 혹은 사실주의적 방식에만 교조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변화된 현실 속에서의 대상이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상황에 서 그것에 맞서 있는 주체의 감수력도 고정적일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새로운 감각의 재현적 언어를 모색하게 되는바, 당시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던 극사실주의와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이 그의 '기차길' 연작으로 나타나게 된다. 8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추구 된 이 작업은 평범하면서도 우리 화단에서의 극사실적 화풍의 한 전형으로까지 부상했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우연적인 장면들을 포착해 그려낸 것으로, 작가의 정감이나 주관적 정 서를 삼투 시키고 있는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일견 우리 시대의 풍경을 향한 문명 비판 적인 모티브를 지닌 듯도 보이며, 일견 현대 회화의 이지적이고 관념적인 측면을 노출 시키 고 있어 보이기도 한다. 또한 철저한 일상성으로 회화의 경험적 하중을 한결 줄이고, 극명한 구체성 속에서 예기치 못한 또 다른 아우라를 역설적으로 발견케 하는 면이 있다.

즉 대부분의 극사실주의 회화가 그렇듯 구상의 극단에서 추상으로 비쳐지는 분위기가 나타나곤 한다는 형식 탐닉의 증후군과 현실 참여의 외침이 서로 엉킨 모진 80년대를 넘긴 그의 작업은 89년을 전후해 큰 변화를 일으킨다.

자연_이미지, 작가의 내면의 변화를 통한 자연 회귀

최근 전념하고 있는 '자연 - 이미지' 연작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단순한 방법과 대상의 변화만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가 자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 심장 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자연은 인류의 그림들에 무수한 영감이 원천이 되어왔으며 주된 표현의 대상이 되어왔으나, 오늘날 우리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전과 사뭇 다른 성질을 띠고 있어 보인다.

이제는 돌아갈 본향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보호되고 양생 되어야 할 자연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종결을 고하면서부터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작가가 인공 환경으로부터 자연으로 눈을 돌린 시점도 이와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머무는 자연은 '기차길' 시리즈에서 그랬듯이 피안의 것이 아니다. 그저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가 주목하고 있는 자연은 이미 과거의 자연주의에서 관심을 가진 일루진으로 환원되는 것만도 아니며, 또한 모더니즘 회화에서 추구했던 평면성으로 나타나는 것만도 아니다. 여기서 그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인 '자연'과 회화에서의 재현된 - 그래서 이미 부자연스러운 - 자연 간의 괴리 때문에 심각한 망설임을 한다.

주태석, '자연-이미지'.
주태석, '자연-이미지'.

대중문화 시대에 있어 대중들의 예술참여를 그들의 언어로 번안하여 인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리의 극사실주의를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비판하기도 한다. 

현대미술의 국제주의 연장선상에서 수용되고 있다거나, 혹은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미학적 맥락을 놓친 채 모방으로만 일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종래의 일루전이 어떻게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로서 실천되는가에 있다. 이런 점에서 주태석의 작업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초기 '기차길'에서는 형상의 언어를 집요하게 추구함으로써 추상주의 미학으로만 경도되어 있는 화단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80년 대말 '자연 - 이미지'로의 변신은 쉬운 그림을 통한 접근 속에서 감각의 청량함과 세련된 미의식을 대중에게 공급한 것이다. 이제 작가는 보다 새로운 미의식과 감수성의 대중을 향해 자연의 빛과 향기를 전하고 있다.

이미 그는 극사실주의의 끝 - 이미 극사실주의가 아닌 - 에 서서 진공상태의 우리 미술 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준비해오고 있는 터이다. 70년대에도 어떤 이름으로 불러주어도 개의치 않았듯이 앞으로도 이름이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형상의 언어, 그것이 그의 체질이며, 그것의 언어적 가능성 그것만이 가장 중요한 탐구 과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연 이미지를 표현하는 작가 주태석은 홍익대학교미술대학 회화과 졸업과 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 했다. 1983년부터 2008년 까지 서울,부산 대구,동경,나고야 파리에서 개인전 34회를 전개 했으며, Korean Drawing Now (부룩클린 박물관, 뉴욕), Seoul Art Fair (서울) ,사실과 환영-극사실 회화의 세계 (호암갤러리, 서울), 북경 아트 페어 (북경, 중국), 상하이 아트 페어 (상하이, 중국), 토론토 아트페어 (토론토,캐나다)등 국내외 기획 그룹전과 아트페어에 참여를 통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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