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포=진오성 기자] 이민하의 작업은 자연의 신비로운 생명의 순환에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대입하여 섬세한 동양적 질료로 그린 회화이다.

한지를 겹겹이 붙인 표면 위에 열매,씨앗, 나뭇잎 등 자연의 부분적 요소를 수묵 채색의 스며듦과 번짐 기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빛을 찾아 그려낸 것으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작은 자연의 요로에 자신을 대입하면서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간 본래의 존재론적 비밀을 풀어낸 작업을 2009년 7월15일부터 인사 아트센터에서 펼쳐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주로 꽈리를 소재로 한 작품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나뭇 가지에 매달려 있는 줄기와 표면이 말라가면서 만들어낸 그물 모양의 열매 그리고 그 안의 씨앗의 형태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형태를 표현해 내고 있다.
시간의 순환이 압축된 생명의 순간
꽈리는 본래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채 줄기와 껍질의 결만 남기고 말라 있고, 들어 있는 씨앗으로 생명의 순간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의 순환이 압축되어 보이는 회화는 그 시간만큼을 짐작하게 하는 수공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녀는 부드러운 자연의 색채를 물들인 한지를 겹겹이 붙여 표현하는데 때로는 껍질의 망을 하나하나 오려서 붙임으로 마티에르를 만들고 그 속의 열매를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이 시리즈 작업은 화면의 배경과 함께 꽈리와 나뭇가지와의 관계 전체를 보여주는 것과 꽈리를 클로즈업 시켜 화면전체가 그물 망이 되어 그 속에 들어 있는 열매가 주인공이 되는 것들로 나뉘어져 있다.
이민하는 종이, 먹, 붓이라는 동양적 질료를 콜라주와 채색의 적절한 서구적 표현방식을 혼합해 탐구하면서 한국화를 자신만의 표현 법으로 새롭게 실험하고 있다.
계절을 짐작할 수 있는 자연의 색채가 밑에서부터 배어나오는 화면의 배경과 실핏줄 조직을 가진 그물 망 안에서 보여주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는 열매의 껍질은 말랐지만 그 속의 씨에서 외부세계로부터 신비한 기운을 받아들여 새로운 생명으로 잉태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화면에서 열매의 얇은 막 안에 들어 있는 내부 핵은 아직 덜 성숙되어 붉은 비 결정된 원 형태를 보이지만 에너지를 담고 있어 미세한 불꽃처럼 아름답다.
이것은 빛과 함께 표현되는데 배경의 투영된 밝은 색은 빛으로 변화되어 줄기와 내부의 핵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빛은 생명 태동의 박동을 울리며 환희와 기쁨을 가져다 준다.

화면의 배경은 하늘이 되며 영감과 영적인 에너지를 제공하고 열매 껍질은 땅이 되어 잉태의 영양분을 공급한다. 껍질은 신경섬유나 실핏줄처럼 얽혀있는 형태로 땅과 하늘의 에너지를 내부의 핵에 전달하는 관처럼 보인다.
생명의 물성과 정신성의 탐구
이민하는 장자의 지해지심(知解之心)처럼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주체와 객체가 하나 됨을 파악한 사물의 본질에 대한 섬세한 경험적 관찰을 통해 그림을 그린다.
그것은 화면전체에 넓게 퍼진 그물망으로 자아 타자 모두 물아양망(物我兩忘)의 상태로 곧장 들어가게 한다. 마치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온몸이 머리가 되고 구분이 되지 않은 상태다. 여기에서는 본질인 핵에 시선이 집중되면서 작가의 생명과 예술 정신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 작가는 중층적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마티에르, 일획의 간결함, 세밀한 묘사의 필법 등을 다양하게 사용함으로 동서양의 회화적 방법론을 혼재해 한국화를 실험하고 있다.

이민하는 환경과 삶의 경험을 깊게 사고하면서 관찰해 나온 직감적인 감각과 생명에 관한 철학적 사고를 가지며 정신과 행위 모두를 일치시키는 진지한 작가로 앞으로의 작업이 기대된다. 작가 이민하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 졸업과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박사과정 에 재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