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이야기] '심심하게 쓴 아트 토크 6'
[권도균의 이야기] '심심하게 쓴 아트 토크 6'
  • 권도균
  • 승인 2017.12.13 11: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아트스페이스 H] 역사는 아직 짧지만, 규모가 제법 큰 사립미술관이 있다. 설립자는 말단 사원에서 시작해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고, 취미로 시작한 예술 작품 수집은 30년 동안 지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미술관 관장이 됐다.

'서울미술관 '불후의 명작' 전시 전경'.(사진=왕진오 기자)
'서울미술관 '불후의 명작' 전시 전경'.(사진=왕진오 기자)

최근에 미술관 설립자이자 관장님이 모 문화부 기자랑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 기사 내용 중 두 개의 문구가 페이스북에서 컬렉터 페친들 사이에서 토론의 주제가 됐다.

미술관 운영비에 대한 이야기와 3백여 점이 넘는 작품 소각 이야기였다. 미술관을 경영해서 돈을 많이 벌기는 쉽지 않다. 대림 미술관 같은 경우는 관람객이 넘쳐나지만, 대부분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운영 자체가 쉽지 않다. 과거에 존재했던 부친의 박물관에서 익히 경험해보았다.​

미술관 설립자의 마음은 돈을 벌 목적보다는 기본적인 운영비가 충당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미술관이 자체 수입만으로 미래에도 존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관 운영이 그동안의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로 돌아섰다는 이야기는 축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3백여 점 작품 소각 이야기는 무척 궁금했었다. 굳이 소각할 필요성이 있었을까? 지방의 공공미술관이나 작은 사립미술관에 기증할 수준도 안되는 작품들이었을까? 기사를 읽으면서 다양한 상상과 생각을 해보았다. 누구에게 선물로 주기 민망한 작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쨌든 이유가 궁금해서, 인터뷰한 기자를 인터뷰해보았다. 여기서 자세한 내용을 쓸 수는 없지만, 설립자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주변의 부자 친구들의 경우를 보면, 수 천만 원짜리 맘에 드는 작품을 살 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평소에는 몇 백원의 돈도 헛되이 쓰지 않는다. 설립자도 30년간 월급을 아껴서 구입했던 작품들을 돈이 많다고 태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몇 년 전 일본에서 시작된 미니멀라이프 영향으로, 우리나라 사람들도 필요 없는 물건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아내도 이사하면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지만,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버리거나 재활용했다. 나의 경우에는 박사 논문을 하면서 모았던 소중한 자료들의 상당량을 눈물을 머금고 정리했다. 교수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버리지 않았을 전문자료들을 말이다.​

미술품 소각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미술품에 대한 고정 관념 탓일 것이다. 모든 미술품은 가치가 있고, 값비싼 물건이라는 관념 말이다. 초보 갤러리스트 시절 어머니께서 갤러리스트 지인분으로부터 그림 십여 점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초보인 내 눈에도 답답한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친척이 하는 음식점 인테리어용으로 전부 걸어드렸다.​

십몇 년 전 초보 컬렉터 시절 구입했거나 선물로 받았던 판화들은 거의 대부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었다. 윤병락, 마리킴, 이왈종, 김점선 등등. 원화를 취급하는 갤러리스트가 되고 나서부터는 판화의 매력이 약화돼서 일 것이다.​

우리의 편견은 시각언어인 예술품의 가치는 인정하면서, 문자언어로 표현된 책은 읽다가 재미없으면 쉽게 재활용한다. 시각언어와 문자언어의 차별인 것인가? 물론 문자언어인 책이 수 천 또는 수만 권 복사본의 개념이라 하더라도, 글 쓴 저자는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책을 만든 것이다. 예술가나 글쟁이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만든 창작물이라는 관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몇 달전 50대와 40대 두 명의 회화 작가들과 갤러리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작가 사후에 팔리지 않고 남겨진 작품들의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어쩌면 서글픈 주제였다.

그리고 예술가들 사후에, 조각과 회화 중 어떤 장르가 유리할까라는 주제도 있었다. 결론은 조각품들은 비교적 기증이 쉽지만, 회화는 의외로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화를 주도했던 화가는 먼 훗날 좋은 작품 몇 개만 남기고 소각할 것이라고 결론을 맺고 자리를 떴다.​

결론적으로 미술관 설립자의 작품 소각이 최선은 아니었겠지만, 부득이한 차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예술 작품을 누군가에게 줄 경우에 브랜드가 있는 작품이 아니거나, 받는 사람 맘에 쏙 들지 않는다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술을 보는 눈이 상대적으로 낮은 시절 구입한 작품들을 미술관에서 소장품이라고 해서 기획 전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수장고 공간을 잠식하면서까지 보관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생각을 단순히 글만을 통해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상대의 생각을 나의 잣대로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살아가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그 사람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을까를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해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