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형, "10만개 머리카락으로 우리 이웃의 역사를 증거" ...가나아트 '십만 개의 머리카락'
황재형, "10만개 머리카락으로 우리 이웃의 역사를 증거" ...가나아트 '십만 개의 머리카락'
  • 왕진오
  • 승인 2017.12.1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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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왕진오 기자] "내가 아닌 운명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연서다. 우리 속에 들어있는 순수함을 찾고 싶었다."

'십만 개의 머리카락' 작업의 모티브가 된 액자를 들고 설명하고 있는 황재형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십만 개의 머리카락' 작업의 모티브가 된 액자를 들고 설명하고 있는 황재형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광부 화가로 불리는 황재형(65)이 7년여간 탄광촌 광부와 그 가족들의 고단한 삶의 여정을 담은 작품을 들고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놀라운 것은 석탄과 황토, 백토 등을 개서 발라 삶의 현장성을 살렸던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미용실에서 직접 모은 머리카락을 활용해 붓과 색채를 이용한 작업보다 더욱 생생한 표현력과 힘을 드러낸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황재형, '기다리는 사람들 II'. 캔버스에 머리카락, 97x162.2cm, 2016.(사진=가나아트)
황재형, '기다리는 사람들 II'. 캔버스에 머리카락, 97x162.2cm, 2016.(사진=가나아트)

'십만 개의 머리카락'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12월 14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개인전에는 지하 막장에서 헌신해온 탄광촌 광부들의 참된 삶을 온전히 담을 수 없었다는 작가의 미안한 감정이 머리카락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황 작가는 "제가 마음대로 하려면 물감을 쓰는 것이 편하다. 머리카락을 사용하면 3배나 힘이 더들어간다. 인간이 살아온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이 머리카락이라고 알게 됐다"며 "인간의 역사, 고통, 슬픔도 함께하며, 우리 이웃의 역사를 증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머리카락에 집중하게 된 것은 생명과 에너지를 가진 머리카락에 개개인이 가진 삶의 이야기와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황재형, '드러난 얼굴'. 캔버스에 머리카락, 162.2x130.3cm, 2017년 1월.(사진=가나아트)
황재형, '드러난 얼굴'. 캔버스에 머리카락, 162.2x130.3cm, 2017년 1월.(사진=가나아트)

황 작가는 "태백에 들어오면서 물감을 쓰기 싫어졌다. 머리카락이라는 것이 '최초이자 최후의 인간의 옷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몇 년 전 광부들의 미망인들이 다수인 선탄부들이 목욕하는 장소를 발견하고 나서 판자와 판자 사이의 틈으로 그들의 알몸을 봐야겠다는 호기심에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하지만 석탄 먼지에 시커먼 얼굴이 물줄기에 의해 씻겨 내려가며 보았던 인간의 피부가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 동안 눈길을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황재형, '둔덕고개'. 캔버스에 머리카락, 128x259cm, 2017년 9월.(사진=가나아트)
황재형, '둔덕고개'. 캔버스에 머리카락, 128x259cm, 2017년 9월.(사진=가나아트)

"내가 이런 현장을 그리지 않아도 직관력이 있다면 화가로 살 것이고, 여성의 알몸을 드러내면서까지 인간의 진실을 그린다는 것은 화가로서의 재질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 순간 도시 예술가로서의 퇴폐성에 자책의 눈물이 났다."

황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시간까지도 당시의 부끄러움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타인의 불행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지 않았는지 반문하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그것들을 삭혀주고 지워주는 것이 예술가로서, 아니 우리 모두가 운명으로 사는 것이 세상에 연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고 전한다.

황재형, '아직도 가야할 땅이 남아있는지(좌,우)'. 캔버스에 머리카락, 162.2x130.3cm, 2017년 1월.(사진=가나아트)
황재형, '아직도 가야할 땅이 남아있는지(좌,우)'. 캔버스에 머리카락, 162.2x130.3cm, 2017년 1월.(사진=가나아트)

한편, 7년여 만에 갖는 개인전 '십만 개의 머리카락'에는 흑연으로 그린 회화 작품들도 볼 수 있다. 문지를수록 더욱 빛이 나는 흑연 고유의 특성을 이용해 자연의 장엄함과 신비로움을 담았다.

민족의 시원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바이칼 호수를 만난 작가는 2500만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바이칼 호수를 보면서 우리 민족의 뿌리를 생각했다.

황재형, '眞如(진여)'. 캔버스에 흑연, 162.1x227.3cm, 2017년 9월.(사진=가나아트)
황재형, '眞如(진여)'. 캔버스에 흑연, 162.1x227.3cm, 2017년 9월.(사진=가나아트)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바이칼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차가우며, 가장 깊은 담수호다. 작가는 이 호수를 '거대한 침묵' 속에 한민족의 뿌리가 담긴, 호수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흑연을 통해 영롱하게 표현했다. 전시는 2018년 1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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